친숙하고 익숙한, 그리고 울컥하게 만드는 그것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노래를 뽑으라고 한다면,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아리랑'을 선택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아리랑' 소리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소리이자, 익숙한 가락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심지어 화가 날 때도 우리의 선조들은 '아리랑'을 불러왔고, 지금의 시대까지 '아리랑'은 불려 오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리랑은 아픔과 상처, 희망과 행복 등 사람의 모든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며 치유의 음악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목소리로 '아-리랑, 아-리랑' 한 소절을 읊었을 때 이상한 울컥함이 마음을 때린다.
이런 이상하고도 신기한, 투박하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켜 소개하는 아름다운 공연이 펼쳐졌다.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아라리'는 2025년 4월 25일부터 26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올렸다. 2019년 이후로 약 6년 만의 예악당 무대를 밟은 이번 공연은 국악계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리아라리는 '정선아리랑'의 설화를 바탕으로 전통음악, 서사극, 무용, 영상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한 예술 퍼포먼스로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하나로 초연을 올렸다.
2023년, 호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작으로 참가해 연극/뮤지컬 부문에서 주간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전통 악기와 노래의 울림, 한국 무용의 움직임이 현대적인 무대 구성과의 조화로움을 현지 관객을 포함한 모든 심사위원들에게 인정받았다. 이어 2024년에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별점 5점 만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최근 2년간 국외의 예술 축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한국 공연예술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조화로움의 정석
'아리아라리'는 무엇보다 무대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레이저, 소품과 무대 영상까지 이야기가 흘러감에 있어서 과하거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특히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이나 숲에서 나무를 베는 장면, 공사 장면은 그 어떤 무대보다 조화로운 무대라고 할 만큼 모든 무대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배를 타고 한양을 향해 가는 장면의 경우, 10명이 넘는 배우들이 배를 둘러싸고 군무를 추며 마치 험한 파도에 배가 출렁이는 장면을 연출했고, 나무를 베는 장면은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숲 영상과 나무 소품, 나무꾼들의 힘찬 몸짓이 어우러지며, 에너지가 넘쳤다.
공사 장면의 경우, 소품 사용이 아주 돋보이는 무대였다. 나무의 길이를 재는 줄자가 거문고의 현이 되었고, 톱은 거문고의 활이 되었으며, 나무는 북으로 바뀌었다. 소품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하게 다루는 연출진들의 노력과 고민의 과정이 아름답게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전통 악기의 흥겨운 소리로 무대를 가득 채우며 일꾼들의 우렁찬 기합 소리와 힘찬 군무, 난타가 이어졌다. 그동안 흥겨운 무대를 많이 봤지만, 가슴을 때릴 만큼의 에너지를 경험한 것은 이번 공연이 처음이었다.
한국의 전통음악이라고 하면 흔히 판소리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공연을 보기 전에는 '아리랑'이라는 말을 듣고 판소리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나의 무지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흔히 민요라고 하면, 판소리의 그런 구성진 창법과 화려한 꾸밈보다 담백하고, 순수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민요의 시작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에 의해 시작된 장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꾸밈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이 가진 깨끗한 목소리와 가사에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배우의 독백 부분에서 민요의 창법으로 불러 배우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란 처음부터 '보여주는 것'의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순간의 힘듦을 잠시 달래기 위해 흥얼거렸고, 기쁨을 나누기 위해 소리쳤던 것, 그것이 바로 음악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흥얼거림이 씨앗이 되어, 지금 음악의 형태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음악이 가진 '치유'와 '위로'의 의미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옛날, 음악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적에 그저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힘듦을 덜어주기 위해 흥얼거렸던, 작은 배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누군가의 생각을 나눔 받고 있다.
아리랑에 담긴 한국의 정서
아리랑의 변화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이 공연 속에서도 아리랑은 참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다. 잔잔한 아리랑, 일상의 아리랑, 사랑의 아리랑, 힘찬 아리랑, 서러운 아리랑, 애절한 아리랑까지 정말 다채로운 색깔로 갈아입는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유지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한'과 '얼'이다. 대한민국의 정서는 '한'과 '얼'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온전히 녹아있는 것이 바로 아리랑이다.
삶의 고난과 아픔, 행복과 소망 등의 다채로운 정서가 녹아있다 보니, 아무리 신나는 상황이어도 가슴 한쪽이 저려오고, 아무리 슬픈 상황이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소망을 가지게 만든다.
단순히 그 상황 속에 빠져 반대의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음악, 그저 내 상황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옆에 있는 누군가, 더 나아가서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음악, 그것이 바로 아리랑이고, 대한민국의 정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