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봤을 때 많이 감탄했다.
아이들만이 알 수 있을 것 같은, 내가 어렸을 때 느꼈다고 기억하는 그 순간의 느낌, 표정을 어찌 저리 세밀하게 포착해 낼 수 있는지.
감독이 아이가 되어 영화를 찍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른의 시각으로 본 아이들의 모습이 가끔은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져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우리들'에서 그런 느낌을 받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너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영화이기에 그릴 수밖에 없는 아이의 표정과 대사는 있어도 최대한 그런 영화적 효과를 지양하고 아이의 순수성이 드러나도록 영화가 조심스럽게 아이들을 다룬다고 느꼈다.
나는 아이들의 순수하고 악의 없는 물음을 들으면 괜스레 울컥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후반부에 많이 그랬던 것 같다. 윤가은 작품 속 아이들은 일반적 아이들을 대변하는 듯하면서도 그 특유의 분위기가 사뭇 남다르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에 그늘진 아이들은 유독 그들만이 풍기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 속 아이들이 마치 그런 분위기를 풍겨온다. 그래서 놀라우면서도 연기인 걸 알면서도 안쓰럽고 챙겨주고 싶고 그렇다.
'우리들'의 2부작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되, 우리들이 아이들만의 세계를 면밀히 다룬 작품이라면 우리집은 거기서 한층 더 나아가 아이들과 그들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에 대한 작품인 것 같다.
어릴 때 한 번쯤 느껴본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떻게 하기 힘든 그 거대한 세계를 영화는 천천히 깊이 있게 풀어낸다.
아이들의 세계 속에서 가장 큰 혼돈으로 다가올 부모님의 이혼과 반복된 이사를 두 가정의 사연으로 각각 배치해 그 두 가정 속 아이들의 유대를 보여준다. 의지할 곳 없는 그들에게 서로가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주는데 마지막은 그 버팀목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한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갈등이 가장 최고조에 달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많이 울컥했다.
하나는 아직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요리도 하고 장도 보며 집안의 일들을 자처해서 한다. 정확히는 자처하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된 것이겠지.
그들의 부모가 이해는 되면서도 원망이 많이 들었다. 아무리 서로 맞지 않아도 아이들 앞에서 자주 싸운다는 게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생각해 봤다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었을 터. 반복된 이사로 인연을 맺을만하면 다시 끊겨 또 다른 인연을 맺어야 하는 유미와 유진 자매도 역시 안타까웠다.
이 두 아이를 보면서 어릴적 하룻동안의 만남을 끝으로 한번도 본적없는 그 아이들이 떠올랐다. 하루뿐이었지만 한동안 많은 정이 들어 헤어지고 나서도 종종 생각났던 그 아이들. 하루만 같이 있어도 헤어질때 되면 아쉬운게 아이들인데 그 자매는 하물며 그동안 얼마나 아쉽고 슬펐을지.
마지막 헤어지기 전 계단에서의 장면은 이 영화에서 아이들의 그 내면연기가 가장 깊이 있게 발휘된 장면이라 느낀다. 이 영화는 내게 어릴 적의 어떤 기억을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들처럼 생생히 떠올리게 했다.
역시 우리들 때도 느꼈지만 윤가은 감독은 어린아이에 대한 시선을 어른임에도 최대한 변색하지 않고 유지해 온 참 따뜻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사 많은 것이 변했더라도 영화를 찍을 때만큼은 그때로 돌아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