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스스로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굳이 그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그 곁에서 이 이야기를 지켜보는 주변인이 되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곤 한다. '해리포터'를 보고 호그와트 입학을 꿈꾼다든지, ‘위키드’를 보고 마법사가 되는 상상을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되면 어떨까. '시네마 천국 이머시브 특별전'은 그런 욕망의 빈자리를 가득 채워준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관찰자이자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이 전시장 안에서 나는 토토였고, 알프레도였고, 엘레나였다.
출처: IMDb, Cinema Paradiso
1990년 개봉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 토토와 알프레도의 우정을 담은 감동적인 서사와 예술적인 미장센,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이 인생작으로 꼽는 명작이다. 그런 덕분인지 나름대로 마니아층이 두터운 편인데, 그 덕분에 이렇게 전시로도 또 다른 '시네마 천국'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IMMERSIVE라는 말의 뜻대로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시네마 천국이 온몸을 에워싸며 극장의 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고, 극장 입구 같은 커튼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전시는 ‘시네마 천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테리어와 흐름으로 관람자들이 ‘시네마 천국’을 보고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다시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특히 중요한 장면 장면마다 스크린 속의 작은 마을을 그대로 빼내 온 것만 같은 재현 능력에 감탄을 자아내며 전시를 감상했다.
도입 부분에서는 ‘시네마 천국’ 속의 여러 스틸컷과 포스터를 통해 ‘시네마 천국’이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온 고전 명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토토와 알프레도 역을 맡은 두 배우가 배우 의자에 앉아 시가를 맞대는 장면은, 이 둘이 스크린 밖에서도 얼마나 깊은 우정을 다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뒤로는 토토의 유년기 시절이자 알프레도의 일터였던 작은 영사실이 구현되어 있었다. 잔뜩 늘어진 필름들과 알프레도가 벽에 마구 박아놓던 쪽지들까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 그 구석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그 공간 중에서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을 꼽는다면 단연 그 공간을 지배하는 ‘냄새’였다.
우리의 몸에서 기억을 가장 잘 저장하는 감각은 무엇일까. 시각, 청각, 미각, 다 중요하지만 단연 ‘후각’은 그저 찰나의 미세분자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사람들이 좋은 향수를 찾는 것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병을 ‘향수병’이라고 하는 것도 후각이 얼마나 우리의 경험과 기억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났던 냄새는 강렬하면서도 건조한 먼지와 쇠의 냄새였다. 굳이 일부러 연출한 부분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공간에 밴 그 냄새는 필름과 종이가 가득 쌓인 채 환기도 잘되지 않는 그곳에서 알프레도가 살았던 시간을 가늠케 했다. 또 그곳에서 피어났을 토토의 열정을 엿보게 했다. 실제로 놓인 과거의 거대한 영사기를 보자니, 어린아이에게 그게 얼마나 크고 멋있는 물건으로 보였을지 새삼 공감이 갔다.
노르스름하게 빛이 바랜 공간을 지나면 그곳에서 쏘아진 영화를 감상하던 공간인 소극장이 등장한다. 사자의 벌어진 입 사이로 쏘아지는 빛의 잔상이 사람들을 웃고 울게 했던 그 공간에 앉아 알프레도와 토토의 이야기를 보면서, 과거 극장과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감정에 이입해 보았다. 지금의 극장과는 전혀 다르게 시끌벅적하면서도 정다운 그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공간이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 감정과 상상력은 뒤로 이어지는 시칠리아의 골목에서 극대화된다. 이 전시에서는 키네틱 프로젝션 기술을 사용하여 극장 밖의 이들을 위해 알프레도가 마지막 선물을 남긴 그 순간을 굉장히 실제적으로 재현했다. 이 장면은 영화 내에서 서로에게 큰 변곡점이 되는 구간이기도 해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순식간에 타오른 화마가 많은 것을 삼키고 또 많은 것을 새롭게 탄생시킨 순간, 알프레도와 토토의 운명은 삽시간에 뒤바뀐다. 영화에서처럼 벽면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스크린을 보며 알프레도의 세심하면서도 배려 깊은 속마음을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후로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 감독의 이야기, 영화 제작에 대한 여러 부분의 비하인드가 나열되었다. 실제로 배우들이 입었던 의상과 시네마 파라디소의 네온사인이 전시되어 이해를 도왔다. 의외로 토토의 옷이 큼지막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돋보였던 구간을 꼽자면 미디어 월을 방불케 하는 회상 공간과 스크린을 통한 연출을 돋볼 수 있었던 갈대밭 구간이다. 사방이 전부 스크린으로 둘러싸여 토토와 엘레나의 과거를 짚어보는 공간은 마치 주마등을 느리게 늘어트려 놓은 듯했다. 또 ‘시네마 천국’ 안의 또 다른 단편 같기도 했다. 우리의 삶이 수많은 단편이 모여 이루어지듯이, 토토의 삶도 그러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들의 어색했던 첫 만남부터 불타오른 청춘, 씁쓸한 이별까지 돌이켜보면 모두가 사랑스러운 순간이지만 되감아 볼 수는 없는 과거임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마주한 갈대밭은 그들의 자유롭고 풋풋했던 시기를 직접 경험하게 한다. 좁은 공간이지만 선명한 스크린 속에는 끝없이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있어 충분한 개방감을 주었고, 그만큼 반전되는 대비감이 더욱 큰 감동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리저리 길이 난 갈대밭을 거닐며 토토와 엘레나의 관계를 되짚어 봤다. 그 둘은 어째서 그렇게 되어야 했을까. 언제나 감정은 명확하게 답이 떨어지지 않아 답답한 부분이 있다. 갈대밭 속의 나 또한 그랬다. 과연 그 미래만이 정답이었던 건지, 나라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고뇌하며 스크린 위로 무한히 흘러가는 하얀 구름과 함께 꽤 긴 시간을 그 공간 안에서 머물렀다.
그렇게 전시를 모두 감상하고 나자 다른 전시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관람객이 와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전시임은 틀림없지만, 특히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흥미를 넘어서 감동을 선사하는 전시였기 때문이다. 현실 같지 않은 공간,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출, 몰입을 돕는 미디어 이용이 합쳐져 완벽한 몰입형 전시가 완성되었고, 그건 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남들보다 ‘시네마 천국’에 조금 더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나의 공간은 토토의 낭만과 꿈으로 가득 차 있었던 토토의 공간처럼 나의 낭만과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토토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말이 떠올랐다. ‘네 꿈을 찾아, 다음 문을 열길 바라며.’ 나 또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이 영화의 토토임을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아직 명확히 찾지는 못했지만, 나의 시네마 파라디소를 찾고 소중하게 가꿔나갈 미래가 기대되었다. 결국 이번 전시는 이 세상 모든 토토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