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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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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작년 처음 경험한 페스티벌 '사운드베리'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올해도 어김없이 KBS 아레나를 찾았다.

 

첫 무대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Hi-Fi Un!corn이 가득 채워줬다. 페스티벌은 헤드라이너를 기다리며 절정에 이르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나는 오프닝 무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페스티벌에 대한 첫인상을 가르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Hi-Fi Un!corn은 자신감 넘치는 퍼포먼스로 사운드베리의 포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작년에도 느낀 것이지만, 그들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50분간 이어진 무대는 커버곡부터 정규 수록곡들까지 다채롭게 채워졌다. 그중에서도 나의 취향이었던 곡은 ‘Over the rainbow’다. 노래의 제목이 궁금해서 빠르게 '우산', '비', '기억' 등 가사 속 단어들을 메모장에 적어 두었다가 찾아낸 결과다. 이 곡은 Hi-Fi Un!corn의 데뷔곡으로, CNBLUE 정용화가 직접 작사・작곡한 자작곡이다. 정용화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고난을 이겨내, 희망을 품고 결성된 Hi-Fi Un!corn의 데뷔를 “비 갠 후의 무지개”로 표현하였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걸맞게 노래 자체가 주는 분위기가 매우 청량하다. 보컬 태민과 슈토는 비가 내리던 시점부터 무지개가 뜨기까지의 시간의 흐름을 주거니 받거니, 노래한다. 둘의 대비되는 음색이 지루할 새 없이 귀에 착 감겨 들어오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더욱 밝게 떠오르는 희망과 설렘이 청자에게도 잘 전달되었다.

 

 

비 내렸던 지난날의 기억은 뒤로한 채

선물처럼 찾아올 내일이

떨리도록 기대가 돼

 

 

떠오른 무지개는 모두의 하루에 일곱 가지 빛깔을 퍼뜨렸다. Hi-Fi Un!corn이 "우리 무대를 처음 보는 분이 계시나요?"라고 묻자, 꽤 많은 손이 허공에 올라갔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오래 알았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 모두 신나게 뛰어놀았다. 다섯 멤버의 목소리, 노래를 이끌어 주는 악기 소리,  그리고 수많은 관객의 함성이 무대를, 우리의 하늘을 가득 메웠다.

 

신나게 무대를 즐기던 중, 좋았던 작년의 추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첫 페스티벌 무대에 섰던 Hi-Fi Un!corn과,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페스티벌을 갔던 나, 그리고 다른 관객들은 우리만이 알아볼 수 있는 수신호를 정했었다. 언제 어디서든,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같은 신호를 보내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올해의 수신호는 작년의 수신호와 동일하다. 비밀 신호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 늘어난 것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기회가 올 때마다 당차게 무대를 장악하는 Hi-Fi Un!corn이 다가오는 5월 23일 첫 단독콘서트도 멋지게 해내길 응원한다.

 

나는 좋은 에너지를 듬뿍 받은 채로 이어지는 무대를 즐겼다. 공연의 끝이 다가올수록 설레었다. 이번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 10cm였기 때문이다. 첫 무대에서 큰 감명을 받았던 만큼, 나는 내가 Hi-Fi Un!corn을 보고 느꼈던 감정을 십센치의 무대를 처음 보는 사람들 또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10cm지만, 그의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면 했다.

 

그래서인지, 이미 10cm의 무대를 여러 번 접한 적 있던 나였지만, 이날은 유독 사운드 체크부터 떨렸다. 마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 나만 알고 싶었던 장소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기분이었달까? 어떤 곡이 나올지 모르던 상태에서, 첫 곡 '그라데이션'의 전주가 나오자 애끓고 있던 마음이 새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가사를 하나하나 음미해 가며, 숨길 수 없는 가득 찬 마음에 관한 노래를 나지막이 따라 불렀다. 음악은 흐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어느덧 관객 모두가 순간에 몰입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달라 따로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마이크를 넘기면 척척 노래를 이어가는 관객을 보며 뿌듯했다. 반짝거리는 눈빛, 한껏 올라간 광대를 보며 나까지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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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m 또한 오랜만에 서는 페스티벌 무대를 즐기는 듯했다. 마지막 곡이 끝난 이후에도,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Nothing without you', '아메리카노', '너랑 밤새고 싶어', '마음', 'Help'까지 앵콜곡들이 쏟아졌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할 노래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그라데이션>, <부동의 첫사랑>의 다음을 잇는 10cm의 청춘 3부작, 마지막 이야기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나 자신을 탓하지 말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그 예뻤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해주라는 당부는 긴 여운을 남겼다. 그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10cm는 관객들의 얼굴을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담아갔다.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공연장의 불이 켜지면, 그때부터 사람들의 반응이 즉각 귀에 들어온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달아오른 열기 속에서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10cm 진짜 좋다, 노래 잘한다.”, “다음에 공연 있으면 또 보러 가고 싶다.”는 감탄이 쏟아졌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서도 “권정열, 정말 미쳤다.” 등의 말들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오늘의 음악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꼈고, 더 나아가 또 다른 날에도 이 행복을 함께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의 음악이 만들어낸, 더없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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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은 익숙한 얼굴 외에도 새로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가수들은 이 기회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지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신곡이나 콘서트 소식을 알리기도 하고, 처음 보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도 한다. 페스티벌을 자주 찾다 보면, 팬이라고 하기엔  살짝 거리가 있지만, 자주 듣고 익숙해진 음악과 자연스레 응원하게 되는 아티스트들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좋아하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든 관계이기에 이는 더욱 특별하다.

 

이것이 바로 '사운드베리'라는 이름처럼, 페스티벌이 가져다주는 달달한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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