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이제 완전히 소비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전시장은 이제 소비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전시회를 갈 때마다 사람들은 왜 그림 앞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사진 찍는 시간을 더 쓰는가 싶다.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이 작품 앞에서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 모습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나 역시 그 무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소비의 시대에 우리는 예술마저 소비하는 법은 배웠지만, 감상하는 법은 잊어버린 것 같다.
오성주 교수의 『감상의 심리학』은 이런 시대에 등장한 귀중한 나침반이다.
"감상은 미술 작품 앞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심리 행동"이라는 짧은 문장은 큰 울림을 준다.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벗어나 ‘그 앞에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로 시선을 돌린다. 그곳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어쩌면 잊어버린) 예술과 감상자의 관계의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는 전시회 티켓을 사는 것으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할 일은 모두 마쳤다. 그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예술의 영역이다.
다만 그 영역을 넘어가는 법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는 않다. 왜 어떤 그림은 0.1초 만에 눈길을 사로잡고, 어떤 그림은 10초 이내에 지나치는가. 저자는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덩그러니 던져진 것만 같은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심리학적 렌즈를 끼운 안경을 씌워준다.
렌즈로 찾아낸 답은 회화적 태도와 감상적 태도를 익히는 것이었다. 그림을 단순한 물질적 오브젝트로 바라보는 시각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자 끝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이 수동적 행위가 아닌 적극적이면서도 능동적인 심리 활동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예술이 소비의 영역에 집어삼켜졌다 해도 아직 진정한 감상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전시장을 찾는 어느 누구도 그 공간에 들어선 것이 사진인지 그림인지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 시대, 전시장에 발을 들이면 보이는 풍경은 핸드폰을 들고서 사진 찍기 바쁜 사람들뿐인 시대에, 이 책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