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중에는 장르를 넘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적, 예술적 장르를 떠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느낌을 주곤 한다.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아오바 이치코 역시 그런 예술가 중 하나다. 그의 음악은 클래식 기타, 목소리, 피아노, 루프 정도의 재료로 이루어지는데, 그 간소함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깊이 끌어당긴다.
2년 전 첫 내한 공연 이후, 지난 2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이치코 아오바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이 열렸다. 첫 단독 내한 공연이자 Luminescent Creatures World Tour의 초반을 장식한 이번 공연은 그를 사랑하는 한국 팬들에게 큰 기대감을 안겨줬다. 평일 오후였음에도 빠른 매진으로 1회차가 추가되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의 내한을 기다렸는지 느껴졌다.
무대에는 카펫, 편안한 의자와 장스탠드, 키보드, 기타, 마이크가 놓여있었다. 마치 친구의 방에 초대된 듯한 느낌의 무대가 아오바 이치코의 음악 세계에 초대된 기분이 들게 했다. 암전이 되고 천천히 무대에 나타난 아오바 이치코는 짧은 인사 후 공연을 시작했다.
첫 곡은 데뷔 앨범의 수록곡 ココロノセカイ (코코로 세카이)였다. 클래식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공연에 가면 의외의 음악에 빠지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자주 들었던 곡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이게 실제로 가능한가?" 싶은 휘파람 소리가 귀에 꽂힌다. 산새 소리처럼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리는데, 라이브로 듣고 나니 스튜디오 음원을 넘어서서, 정말 새가 인간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푸르고 습기를 머금은 풀 같았다.
공연 중반에 이르러 아오바 이치코는 루프 스테이션을 이용해 Space Orphans의 선율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완성된 버전을 들어왔다면 그 음악이 쌓아 올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무슨 곡일지 궁금해하며 점점 윤곽이 드러날 즈음 관객도 가수도 모두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Space orphans를 기점으로 공연의 1부가 지나가고 자연스럽게 2부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자연스럽지만, 후끈후끈한 공연장에서 다시 좌중의 고삐를 잡는 듯한 노련함이었다.
긴장감이 풀리고 노곤함이 느껴질 무렵, 공연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기계장치의 우주는 약 12분 정도의 긴 곡으로, 템포가 여러 번 전환되는 곡이다. 음원에서는 잠드는 머리맡에서 듣는 동화처럼 평온하지만, 라이브에서는 전혀 다른 매력이 있었다. 볼륨이 퍼지다가 잦아들고, 기타가 빨라질 때, 관객조차 긴장감과 전율을 느꼈다. 그 순간, 모든 관객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잔잔한 박수를 치던 객석에서도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다음 마지막 곡의 순서가 다가왔다. A Hill of Moon은 아오바 이치코의 음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도입부터 숨죽여 들었다. 노란색과 파란색 조명이 뒤섞여 공연 포스터처럼 보랏빛으로 천장이 가득 물들었다. 아오바 이치코의 음악은 밝지만은 않다. 평화로운 기타 선율과는 달리, 가사에서는 섬뜩하게 죽음을 시사하거나, 의미를 추측하게 만드는 추상적인 표현들이 담겨 있다. 공연을 보며 주변 관객들 모두 눈물을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 또한 A Hill of Moon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슬픔을 숨기지 않고 담아내는 그의 음악이, 분명 위로가 되는 것을 깨달았다. 혹은 적당히 잘 덮어두고 듣는 이에게 해석을 맡기는 곡에서도 그 감정은 같았다. 어떤 연유든 간에, 그 힘을 느끼고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아오바 이치코의 특별한 방식이었다.
앵콜 요청에 무대로 돌아온 이치코 아오바는 모두 상상 친구가 있지 않냐며 자신의 상상 친구 펭귄을 소재로 한 곡을 공개했다. 평소 자주 사용하는 휘파람이 아닌 정말 그의 친구 펭귄의 발자국 소리를 본뜬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관객들이 감탄을 내뱉을 정도로 귀여운 제목과는 다르게 그의 음악적 세계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기대되는 곡이었다.
공연 중 관객들에게 행복하신가요? 하며 말을 건네기도 하고 늦게 입장한 한 관객이 헤매자, 안녕~ 하며 분위기를 풀어내기도 하는 여유가 보였다. 음악의 완성도는 알고 있었지만, 공연으로 만나 나와봐 이치코는 아주 작은 몸짓이나 소리로도 좌중을 집중하게도, 웃음을 지을 수 있게도 하는 공연형 아티스트였다. 음원과 공연, 이 두 가지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음이 즐거웠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예술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계속해서 되새겼다. 한 사람이 얼마나 즐겁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한 음 한 음에 얼마나 공들이는지를 여러 차원에서 경험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신선한 감동과 여운이 잊히지 않는다. 이틀 동안 공연의 셋리스트가 상이했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공유해준 셋리스트에서 그가 얼마나 공연에 진심인지도 느껴졌다. 하나의 레퍼토리로 가지 않고 계속하고 싶은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 모습에서는 가수를 떠나 한 명의 이야기꾼 같기도 했다.
아오바 이치코의 내한 공연은 아시아를 거쳐 현재는 유럽과 북미, 오세아니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공연 회차와 지역이 꾸준히 추가 공개되고 있으니, 혹시 관심이 있거나 투어 국가에 거주하고 있다면 그의 음악 세계를 꼭 만나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