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과 그림을 접목해보기
봄꽃의 개화 시기가 2주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서, 꽃에 대한 25가지 챕터로 이루어진 [화가들의 꽃 - 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명화 속 꽃 이야기] 책을 접할 수 있었다. 화가들이 그린 다종다양한 꽃은 그 각각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눈에 띄었던 꽃은 찰스 레니 매킨토시(Mackintosh, C.R]의 <아네모네>였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 왠지 이 이름이 익숙하게 다가올 때쯤, 책에서 '오늘날 건축과 인테리어 방면의 업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라는 문장을 읽어가면서 과연, 내가 아는 그 건축가 매킨토시가 그림도 그렸구나 하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매킨토시를 알게 된 것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간 대학생 때 교환학생 학기를 마치고 유럽 한 달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가게 된 글래스고 출신의 가구 디자이너 겸 예술가인 맥킨토시의 박물관을 우연히 방문하게 되면서였다. 그가 디자인한 길쭉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의자가 있는 윌로우 티룸(The Willow Tearoom)에 들렀었떤 기억이 있다. 당시 장기 배낭여행에 지쳤던 지라 안타깝게도 그곳을 찍은 사진은 많지 않지만, 몇년전 여행의 기억 속 한켠에 남아 있었던 그 매킨토시와 글래스고에 대한 기억을 꺼내 재발견할 수 있었던, 그러한 <아네모네> 수채화 그림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란?
필자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과 같이) 글을 쓰는 것과 관련된, 철학을 전공했다. 사고하는 훈련을 배우는 전공이지만 여하튼 그것의 결과물은 결국 글을 쓰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영향인지 몰라도 무언가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표현해내는 데 있어 나는 '글 쓰는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해내는 것이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 무언가에 익숙하다는 것은 그것을 표현할 자체적인 도구 혹은 매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무언가를 배웠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배웠다는 것은 그것의 형태로 무언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무수히 많이 표현해 보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꽃을 그려놓은 명화 모음집에 관한 책을 보고 나서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배운 것의 의미를 계속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란 마치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와 비슷한 정도의 단계에 있는 것만큼 익숙하지 않고 '낯선 표현의 형태'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주 어렸을 때에 무언가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했다. 심지어 어렸을 때 살던 집 벽면에는 내가 그린 낙서에 가까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기도 했을만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살아가다보니 글 쓰는 형태를 통해 내 심상에 있는 것들을 표현해내는 것이 점차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결코 쉽다고도 말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가장 처음으로 하는 작업은 어쩌면 그림을 그리는 작업과 비슷한 단계를 가진다. 즉, 어떤 글 하나를 쓰기 위해서 나는 처음의 작업으로 글의 초안 혹은 스케치를 그린다. 물론 말 그대로 글을 쓸 때 그림으로 초안을 그릴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비유적 의미이다. 즉, 일종의 구상을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스케치의 장점은 분명하다. 머릿속으로 구상한 날것 자체를 밖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직접적이고, 그것의 수정 역시 손쉽다. 이렇게 구상해서 그려냈다가 그것이 아니고 저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저것으로 수정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손쉽다고 해서 그것의 중요성을 무시하면 오산이다. 그 손쉬워 보이는 구상의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그 그림 혹은 글쓰기 작업이 방향성을 잃은 채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스케치의 과정을 너무 겁내하면 그것 역시 작업의 어려움을 초래한다. 작년부터 모션 그래픽 전문가(?)를 목표로 하여, 현재 그것의 기초를 배우는 작업으로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있다. 배우는 과목 중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여 배우는 작업이 바로 '드로잉'이다. 기억에 나는 일화는, 몇 달 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해 도형의 형태로 사람을 그리는 것을 배우고 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때 여러 다양한 움직임을 구현하고 있는 사람의 형태를 그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의 모습을 선생님께서 보시곤, '너무 처음부터 잘 그리려고 하지 말고, 그리는 과정에서 수정할 생각도 하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구도를 그려보시라'라고 말씀해주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아차차 싶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대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반대로 나에게 익숙한 글쓰기라는 작업을 할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스케치의 작업을 하면서 쓰고 있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무언가를 그려낼 때, '화가들은 왜 하필 그때 그 물체를 그려내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항상 가지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글쓰기에 있어서는 내 마음속에 무언가 글로 표현하고 싶고 그것을 드러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감각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무언가에 대해 어떤 것을 매체로 하여 드러내고자 하는가? 그것은 좀 더 심오한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이 책에 의해 촉발된 이 심상을 토대로 하여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대해서도 좀 더 글을 쓰는 작업처럼 많이 접하고 많이 그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