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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SF 장르가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그것의 역사적인 성격을 발견할 때이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늘 과거를 기반한다. 통상적인 외계인의 이미지가 태아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근미래 시대이지만 나는 2025년을, 1939년을, 1492년을, 그런 인류 역사 속 비극들을 떠올렸다.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SF 영화 <미키17>,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서고 있는 화제의 작품에 대한 나의 오피니언을 남긴다.


지금부터 얘기하는 것들은 이 영화를 굳이 굳이 불편하게 볼 수 있는 지점들이다. 이로써 <미키 17>이 우리에게 준 즐거움과 따스함은 반감되겠지만, 봉준호의 영화를 꺼림칙함 없이 끝내긴 아쉽지 않은가. 따라서 영화 속 장면들을 통해서 연상하고 사색해 보면 좋을만할 것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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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어도 되는 노동자 – Expendable (소모품)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보통의 영화에서 인물을 영웅적 존재로 만드는 ‘불멸’의 능력을 갖고 있는 미키가 오히려 가장 불쌍하고 저주받은 인간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미키는 소위 ‘극한 직업’이라고 하는 익스펜더블에 지원하여 지구 밖으로 도망을 간다. 그리고 그 직업은 지구 밖에서만 사용이 허용된 인간 복사기를 통해 끊임없이 새 몸을 부여받는, 즉 끊임없이 죽어야 하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구를 떠난 이들에게 미키의 불멸성은 어째서 그 어떤 부러움도 사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죽어도 된다’는 능력이 미키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용자의 쓸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모품(Expendable)이라는 이 직업의 명칭부터가 그렇다. 그리고 모든 권력 사회에서 그러하듯이 ‘대의’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희생은 정당화된다.


인간의 생명을 ‘소모’한다는 것이 영화 속 판타지적인 설정에 한한 것으로 보이는가? 2023년 통계청의 ‘지난 20년의 산업재해 발생 추이 및 구조’에 따르면, 산업재해는 근속기간이 6개월 미만인 50대 이상의 근로자에게 높은 비율로 발생했다. 즉, 고용조건이 불안정하고 계층이나 연령, 인종 등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산업재해에 쉽게 노출된다. 아주 최근만 하더라도 부산의 호텔 공사장에서, 안성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의 사상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뉴스를 익히 접해와서 얼핏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직업의 종류에 따라 일하는 중 사망할 확률이 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하고 끔찍한 일인가. 당연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인간 사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생명의 가치를 직업에 따라 차등적으로 분류했고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마샬이 자폭 직전의 미키 18에게 말한다. “두렵구나. 너도 인간이야.” 그들도 노동자가 인간인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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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식민지와 인종청소 - Creepers


 

‘크리퍼’는 <미키 17>에서 가장 단순하고 명료하게 선과 악을 가르는 존재이다. 정치인 ‘케네스 마샬’이 이끄는 얼음행성 개척단에 탄 사람들은 광활한 우주를 횡단하여 ‘니플하임’이라는 행성에 도착한다. 이후 일련의 사건으로 ‘크리퍼’라고 이름 붙인 외계 생명체를 대면하게 된 인간집단은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다. 그간 선동과 위선으로 지지를 받아왔던 마샬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도자로서의 수를 둔다. 자기 종족의 개체를 지키기 위해 몰려온 크리퍼들을 모조리 “청소하라”. 침입당한 것은 크리퍼 쪽이고, 먼저 인간을 공격해 온 적도 없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이와 같이, 영화는 식민지나 인종 청소를 떠올릴 수 있는 단어나 문장들을 다소 노골적으로 언급한다. 이로써 침입자들이 원주민들을 맞닥뜨렸을 때, 협상은커녕 무력으로 학살함으로써 목적을 이루고자 했던 역사를 직접적으로 상기시킨다. 특히나 봉준호가 영화 <옥자>를 통해서도 앞서 보여주었듯이, 인간이 아닌 생명체의 경우 무분별한 살생은 더욱 쉽게 이루어지고 받아들여진다. 뿐만 아니라, 크리퍼를 제거하기 위해 독성 가스 살포를 선택한 것은 자연히 아우슈비츠를 연상시켰다. 크리퍼들의 귀를 찢는 듯한 고성이 그언젠가 허공으로 사라진 유대인들의 비명과 주파수를 같이하는 것만 같았다.


혐오 정치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고통’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고 타자의 고통에 분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유능한 요원이자 미키의 구원자인 ‘나샤’. 백인 정치가, 백인 연구원, 백인 노동자들 사이의 흑인 여성인 그녀는 권력을 향해 버럭버럭 소리친다. 그리고 폭력을 끊고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바꾼다. 나샤를 통해 관객은 정의에 호응한다. 소수자성을 가진 피지배자가 권력을 전복시키고 아름다운 미래를 이끄는 것에 환호한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런 순간들은 빛과 그림자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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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 소외와 신체 – Mickey Barnes


 

<미키 17>은 기술이 가져온 인간 소외의 측면 또한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신체’라는 소재와 함께 긴밀히 공유한다. 기술 혁명으로 인간이 수행하던 일의 상당 부분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어 감으로써, 다수의 인간은 점점 특별한 능력이 필요치 않은 단순한 육체적 노동을 떠맡게 되었다. 특히나 자본주의 체제의 대량생산 시스템과 맞물렸을 때 물질 속에서 인간은 더욱 소외된다. 탐사 중 사고로 여성 요원인 제니퍼가 죽었을 때 마샬은 불같이 화를 낸다. “네가 죽으라고 보냈더니 왜 가임기 여성이 죽은 거야!” 이후 저녁 식사 자리에 호출된 제니퍼의 여성 동료 카이는 자신의 훌륭한 신체 건강을 칭찬하며 번식을 종용하는 마샬에게 여과 없이 묻는다. “제가 자궁으로 보이시나요?” 기술 문명에서 인간의 몸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 무기일까? 나의 노동력이 특정한 힘이나 기술이 아닌 나라는 물리적 존재 그 자체가 되는 것에 대한 질문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러자 되묻게 된다. 존재하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이제 노동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새로운 기술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장담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인류는 우려 섞인 논쟁을 해왔다. 하지만 기술은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사용되었다. 2025년을 살아가는 나의 시선에는, 인간이 기술을 등에 업고 나아가는 형상보다는 기술에 묶여 질질 끌려가는 이미지가 더 눈에 선한 것 같다. 계속 ‘발전’하는 우리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극 중 미키는 생과 사의 절대적 명제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는 사람인 것 치고 삶에 대한 어떠한 정의도 철학도 가지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이러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믿고있던 이치가 뒤틀리고 뒤집히는 동안 우리는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선 꼼짝을 못하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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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전작들에 비해 유난히 더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듯 보이는 이번 영화가, 봉준호 세계관이 담고 있는 사회를 향한 통렬함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외려 상당히 직관적인 어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두렵고 잔인한 역사를 돌아보았음에도, 여전히 <미키 17>을 생각하면 은은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 미키 17도 18도 아닌 ‘미키 반스’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진 모르지만 나샤를 사랑하는 스스로를 아는 미키를 만났다.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종을 이해하기 위해 번역기를 만들어 대화를 시도하는 인간이 있었다. 미래란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앞이 보이질 않는 암흑이지만,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킨다면 따스한 불빛이 길 군데 군데 놓여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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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다롱대디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SF 영화 <미키17>에 대한 귀하의 깊이 있는 분석과 견해를 잘 읽었습니다~~
영화가 단순한 미래 상상을 넘어 인류 역사의 비극적 순간들을 상기시키고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혜린에디터님의 견해가 너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인사이트를 주는 혜린에디터님의 글을 기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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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8 10:03:5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