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의 균열에서,
그들의 시선이 틔우는 다채로운 세상을 마주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내면에 대한 솔직한 고백, 일러스트레이터 나른을 소개합니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상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글쓰는 일러스트레이터 나른입니다. 저의 내면의 감정을 바탕으로 하여 일상 속 한 장면들을 저의 글과 그림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저의 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의 저를 그대로 보여드리며 작품 활동을 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먼저 여쭙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즐겼지만, 미술을 전공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항상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갈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저의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큰 욕심없이 소소하게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저의 작품을 지켜봐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책도 내고 전시도 하며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는 현실로부터 벗어나 스트레스를 잊고 온전히 저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가 가장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해주셨어요. 처음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그림을 위주로 그렸었나요?
처음 그릴 때도 지금 그리는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정말 저의 일상의 단면을 그렸죠. 추상적인 그림은 저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했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슬픈 감정을 저의 그림 안에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그것을 추상적으로 담아내면 제가 캔버스 안에 표현하고 싶은 슬픔이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겪고 있는 슬픔을 정말 고스란히 캔버스에 담아내고 싶었죠. 그리고 그렇게 정말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제가 겪고 있는 그 모습 그 자체를 담아내는 것이었고, 계속 그런 방향으로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사랑에 대해 떠오르는 단상들, [몸의 언어]
- 작가님의 작품 중에서는 역시 연인 간의 사랑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낸 시리즈 [몸의 언어]를 대표작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 몸의 언어를 그렸을 때의 추억을 공유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떤 계기로 몸의 언어 시리즈를 연재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몸의 언어]는 연인들의 이야기지만, 처음 [몸의 언어] 시리즈를 그렸을 때 저는 연애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몸의 언어]를 연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당시의 이별에 너무 힘들어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그 이별에 대하여 힘들어한다는 것이 단순히 옛 연인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저 스스로에 대한 것이었어요. 나는 왜 그러한 행동을 했을까, 그런 방식으로 상대방과 관계를 맺었을까 등 저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의 [몸의 언어] 시리즈에 담긴 글과 그림은, 대부분 저의 경험을 바탕에 두었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고, 사랑과 관계에 대해 떠오르는 단상들을 바탕으로 표현한 것들도 있어요. 저의 내적인 것도, 외적인 것도 복합적으로 모두 담겨 있죠.
사실, 지금의 저라면 [몸의 언어] 연재를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만큼 그때는 정말 저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렇게 솔직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할 수 있었을지 저 스스로도 신기하기도 해요. 하지면 한편으로는 그만큼 진심으로 작품에 임했기 때문에 저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생겼던 것 같고, 계속해서 이어올 수 있었다고도 생각합니다.
- 굉장히 오래 연재를 해오셨잖아요.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거즘 10년을 연재해오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면 못했을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어요.
제가 처음 몸의 언어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가 20대 중반이었을 때였어요. 그때는 사랑을 주고 받는 방법 뿐 아니라 관계 맺는 것 자체가 서투른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평온한 사랑보다는 불 같은 사랑을 했던 것 같아요. 저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연애를 어떻게 해야 안정적으로 하는지 그 방법도 몰랐죠. 저도, 상대방도 어렸으니까요. 그렇게 우여곡절 많은 연애들을 겪은 후에 가장 생생하고 농도가 짙은 상태의 마음들이 글과 그림에 모두 담긴 것 같아요. 어떻게든 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이 그것 뿐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흘렀잖아요. 이제의 저는 30대 중반이고, 저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리고 연애라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들여다보며 이해하고 있어요. 20대 때 갖고 있었던 농도 깊은, 강렬한 사랑보다는 따뜻하고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죠. 지금과 같은 평화로움 속에서였다면 그런 강렬한 그림들을 그리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 작가님께서 [몸의 언어]를 책으로 엮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한창 여러 플랫폼에 연재 중에 출판사 편집자님께 연락이 왔어요. 제 글과 그림을 좋게 보고 그렇게 연락을 주셨다는 게 신기한 경험이었죠. 그렇게 계약을 하게 됐고 이후로도 쭉 연재를 지속하며 작품들을 책으로 엮게 되었어요. 책이 만들어질 시점에 텀블벅 펀딩을 위해 굿즈를 제작하고 열심히 홍보했던 기억이 나요. 서점 가판대에 제 책이 올라와 있는 걸 보고 신기했어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 시간이 흐르며 작가님께서 변화하고 성장하신 만큼, 초반의 [몸의 언어]와 지금의 [몸의 언어]도 분명 차이를 갖게 되었을 것 같아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지금은 어떤 그림들이 주로 담겨있을까요?
저는 정말 좋은 사람과 너무도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평온한 연애를 하고 있죠. 하지만 세상의 그 무엇도 저의 내면 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외로움이나 슬픔을 대신 해결해주진 못하잖아요. 안정적인 연인관계가 많은 것을 해소해주지만 가장 마지막의 제 몫이 늘 남아있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연애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저에게 우울이나 슬픔이 아예 없느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의 저는 이러한 평온 속에서도 함께 하는 내면의 우울감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어요.
- [몸의 언어]의 대표이미지를 하나 소개해 주신다면.
처음에는 손이 겹쳐져 있는 그림인 [겹쳐짐]이라는 작품을 대표 이미지라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해당 작품보다는 조금 더 연인의 모습이 직관적으로 담겨있는 그림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히 함께 누워있는 그림이요. 여담이지만 제가 누워있는 사람의 형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힘없이 널브러진 모습이나 잠든 모습이요.
[겹쳐짐]의 경우, 지금 남자친구와 저의 손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린 그림이에요. 그때가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새벽이었는데 남자친구는 자고 있었고, 저는 혼자 깨어있었죠. 그런데 문득 둘의 손이 겹쳐져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한 번 더 담아낸 것이었어요. 그 당시의 따뜻함과 평온함이 저에게는 너무도 인상 깊게 다가왔고 그래서 그때의 느낌이 온전히 담겨있는 해당 작품이 정말 좋아서 대표 작품으로 소개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실 이건 저의 정말 개인적이고 사적인 경험이잖아요. 그 순간이 정말 좋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몸의 언어 시리즈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저에게는 그때의 느낌이 온전히 다가와도, 다른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는 일이고요. 그러다 보니 몸의 언어 시리즈 그 자체가 조금 더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 지금은 연인이 함께 누워있는 모습이 담긴 [소유], [품], [적막], [다정함] 같은 작품들을 저의 대표작으로 이야기 하고 싶어요.
사실 일반적으로 '대표작'이라고 하면 하나의 작품을 말씀드려야 하잖아요. 하지만 [몸의 언어] 시리즈가 작품 수가 많아서 하나만 고르기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네 개의 작품을 말씀드려 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저는 [적막] 이라는 작품을 말씀 드리고 싶어요. '몸의 언어'라는 의미 자체가 몸으로 하는 대화를 말하는 건데 그 부분이 글로도 그림으로도 잘 표현된 것 같아요. 특히, 적막 속에서 아무 말없이 서로의 품에 있는 것만으로도 대화하듯이 무한하 사랑을 느낀다는 점이 '몸의 언어'를 무엇보다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와 함께 있을 때,
정적이 흐르는 순간을 좋아해.
불편하고 숨 막히는 어떤 적막이 있는가 하면,
너와 함께 하는 적막은 안전하고 자유로워서
우리는 이 침묵을 깨려 애쓸 필요가 없어.
때때로, 사랑받는 느낌은
사랑하지 않아도 줄 수 있지만
안전함을 사랑해야만 줄 수 있지.
너와 함께 하는 적막은 내가 돌아와야 할 가장 안전한 품.
이 속에서 나는 무한한 사랑을 느껴.
- 해당 작품의 그림도, 글도 너무 좋네요. 앞서 작가님께서 스스로를 '글쓰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말씀해주신 것처럼 작가님의 작품은 글과 그림이 함께 연재되고 있어요. 작가님께 글과 그림은 동일한, 하나의 것일까요 아니면 각각이 각자의 의미를 담고 있는 별개의 것일까요?
저는 두 개가 모여 하나를 완성한다고 생각해요. 글이 먼저 떠오를 때도 있고, 그림이 먼저 떠오를 때도 있거든요. 하지만 무엇이 먼저 떠올랐던지 결국 함께 있어야 그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그림만 보았을 때는 그저 ‘연인의 그림이구나’ 생각될 그림이, 글과 함께 읽었을 때는 ‘이러한 감정이 담긴 그림이구나’ 보다 확실하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글과 그림 모두에 제 내면을 녹아내기 때문에 제가 추구하는 ‘날 것 그대로의 저’를 잘 전달하려면 글과 그림이 함께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그림이나 글을 그릴 때 가장 신경쓰는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그림을 그릴 때는 공간과 인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많이 신경을 쓰고 있어요. 그래서 인물과 배경, 인테리어 등 레퍼런스를 찾아보며 그리는 편이죠. 그리고 저는 어떤 사람의 얼굴이 꼭 작품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이 정면을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작품은 눈만 보일 때도 있고, 어떤 작품은 입만 보일 때도 있어요. 설령 제가 인물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인물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혹은 얼마나 자세하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그 인물이 배경과 어우러져 제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느낌을 얼마나 잘 담아내는지니까요. 그리고 저는 슬픔도 외로움도 아픔도 따뜻하게 그려내려고 노력해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로를 주고 싶어요.
글 같은 경우에는, 떠오르는 대로 그때그때 메모해두는 편이고 오히려 그림과는 다르게 정직하게 담아내기 보다는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 그림과 글이 추구하는 바가 정반대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게요. 그림은 적나라했으면 좋겠고, 글은 재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저는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글과 그림을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은 직관적으로, 글은 흥미롭게 하고 싶어요. 글과 그림을 따로 봐도 매력적일만큼요.
- ‘시적인 글’이라고 해주셨어요. 작가님께서 지금까지 적었던 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글도 궁금해요. ‘글과 그림이 가장 잘 어우러진다’ 싶은 작품이 있을까요?
이 또한 고르기가 어렵네요. 하하. 시적으로 쓰였다는 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대책없이], [달콤한 것], [유기] 이 작품들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지만 여러 겹의 의미가 담긴 문장들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대책 없이 사랑에 빠졌고,
이건 그저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우리의 사랑이 대책 없이 끝나도
이상할 것 없다는 뜻과 같았다.
미처 다 안꺼진 불씨를 틔우다, 전시 [틔움]
- 아트인사이트 그룹전에 함께 하시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작가님께서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계속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아트인사이트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트인사이트 소속 에디터님께 요청을 받아 인터뷰를 하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인터뷰를 통해 연결이 되고 이후 아트인사이트에서 작품도 연재해오게 되었어요.
- 이 전시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의 기분도 공유 받고 싶어요.
아트인사이트 대표님은 항상 기회를 만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몸의 언어 이후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작업을 꾸준히 못했기 때문에 이번 전시를 계기로 새롭게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몸의 언어는 책으로는 나왔지만 전시된 적 없는 그림들이기 때문에 전시되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어요. 작품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함도 있지만 타인에게 보여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아요.
- 이번 전시 제목이 [틔움]이에요. 작가님께 ‘틔우다’는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전시 [틔움]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먼저 ‘틔우다’의 사전적 의미를 먼저 생각해보고 싶어요. ‘막혀 있던 것을 치우고 통하게 하다.’, ‘마음이나 가슴이 답답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다.’, ‘싹이나 움 따위를 트게 하다.’ 등이 있는데요. 지금의 저에게 꼭 필요한 단어인 것 같아요.
저는 한동안 마음의 빛을 잃은 느낌이 컸어요. 어떤 중요한 심지가 꺾이는 듯한 느낌이요. 제가 그림 그리는 길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던 학창시절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게 그림과 상관없는 학과로 진학했지만 저에게 남아있던 미처 다 안 꺼진 불씨 같은 게 저를 작가의 길로 인도했던 것 같이 [틔움] 전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차근차근 다시 시작해가고 싶어요. 이번 신작들이 그 시작이 될 것 같습니다.
- 이번 전시에서 작가님께서 보여주실 작품 세계는 어떻게 구성될까요?
현재, [몸의 언어]를 연재하며 작업해놓은 것이 많이 있어서 그 작품을 위주로 진행하려고 해요. 12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고 했을 때 2점 정도만 새로 작업하고 나머지는 기존의 작품을 전시하게 될 것 같아요. 새로 그릴 작품에는 연인 얘기는 아니고 제 개인의 내면을 담아낼 예정이에요. 그림의 무드나 스타일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닐테지만 앞으로는 좀 더 개인적인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슬픔이나 우울감뿐 아니라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들까지도요.
- 신작에서는 연인의 이야기가 아니 개인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고,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도 함께 담아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요인이 있을까요?
사실 저는 태생이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이 많은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균적인 밝음을 표현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적을 것 같아요. 몸의 언어 이전의 감정의 순간이라는 시리즈를 봐도 그래요. 그것들을 그렸던 시절이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불안하고 휘청거리는 20대였죠. 제 상태가 그러니까 밝은 그림이 나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몸의 언어가 연인의 이야기임에도 밝고 사랑스럽기 보다는 어딘가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저에게만 그런 걸 수 있지만요.
지금은 인생의 현실적인 문제들, 예를들어 월세라든지 직장생활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고는 내면이 크게 요동치는 시기는 아니에요. 늘 좋을 순 없지만 대부분이 좋고, 가끔은 꽤 행복하기까지 하거든요. 그래서 아마 자연스레 전보다는 따뜻하고 편안한 그림들이 나올 것 같아요.
- 이번 전시를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저는 항상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그 마음을 되찾고 싶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그림에 대한 마음을 많이 잃어버렸거든요.
그림이라는 것이 현실적인 부분에서 참 어려운 분야인 것 같아요. 하하. 저도 그림을 계속 하기 위해 다양하게 시도해봤어요. 인스타툰을 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어요. 인스타툰으로 부수입을 얻는다면, 그림을 지속하면서도 경제적 어려움이 조금은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에는 인스타툰은 나와는 결이 맞지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그림의 길에서 조금 멀어지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서 저의 최대 목표는 계속 그림을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에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글과 그림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이번 전시를 관람해 주는 분들께, 작가님의 작품 관람 팁을 드린다면.
이번 전시에서 저의 작품을 보면서 각자 경험한 사랑을 함께 떠올려주시면 즐겁게 전시를 관람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몸의 언어는 사랑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자신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제 그림을 보며 ‘그래, 사랑이란 이런거야, 연애라는 것은 이런거야, 사랑이라는 말의 무게는 이런 크기를 갖고 있지’ 생각하며 각자의 경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제가 전달드리고자 했던 감정을 함께 느껴주셨으면 해요.
사실 저는 사랑이라는 말이 정말 무거운 말이라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누군가는 연애하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있지 않지만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듯이요. 그래서 저의 작품을 보며 사랑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자신만의 의미를 돌아봐도 무척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혹은 내가 하는 게 사랑이 맞을지 까지도요.
[몸의 언어] 도서에 갈등이나 이별도 함께 담은 이유도 여기에 있거든요. 연애를 하며 겪는 모든 내면의 감정들을 같이 느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 수가 제한적이어서 몸의 언어 시리즈 전체를 보고 싶으시다면 책을 구매하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마무리 지으며
- 작가님께서 스스로를 정의내린다면 어떤 작가라고 말씀하고 싶으실까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작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의 감정, 내면의 심리상태 등을 숨김 없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작가니까요.
- 작가님만의 최종적인 꿈, 혹은 목표가 있을까요?
저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작가다보니, 저의 작품을 봐주시는 분들로부터 감정적 공감을 더 잘 이끌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하잖아요. 저는 비교적 감정을 깊게 느끼는 사람이다보니 누군가의 감정을 일깨워주고 싶은 것 같아요. 저의 작품을 보고 ‘아,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구나’라는 공감과 함께 위로받으며 따뜻함을 느끼셨으면 해요. 감정을 건드리는 작가가 되는 것이 지금 저의 목표입니다.
- 마지막으로, 해당 인터뷰를 읽어주신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랑 때문에 뒤척이는 밤을 보낸 적이 있을 거에요. 저도 그렇습니다. 저의 그림이 사랑의 시작과 끝의 그래프 사이 어느 지점에 있을 여러분들에게 작은 조각이나마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긴 글을 읽는다는 거 자체가 힘든 바쁜 현대사회에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와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으신 김에 전시에도 꼭 와주시면 좋겠어요. 저뿐 아니라 다른 작가님들의 아름다운 작품들도 많거든요. 꽤 좋으실 거에요. 그럼 우리 전시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