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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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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는 걸 좋아하지만 편식하는 몇 가지 음식이 있다. 예를 들면, 국에 빠진 호박의 식감이 싫고, 생 당근의 강렬한 향이 부담스럽다. 누구나 싫어하는 음식이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가지는 유독 거부감이 드는 채소였다. 초등학교 때 급식으로 처음 만난 가지무침 이후, 가지는 늘 내게 가장 먹고 싶지 않은 식재료의 대명사였다.

 

나이를 먹으며 안 먹던 채소도 도전하고 좋아하게 되었지만, 가지만큼은 도전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물컹한 식감과 보라색과 초록색, 갈색이 뒤섞인 색감은 보기만 해도 속을 미식거리게 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나의 가지 혐오에 적극 공감하며 함께 가지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지가 특별히 맛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싫어할 것도 아니라며 감싸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가지의 세계로 이끌지는 못했다.

 

그러다 아주 신기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나와 취향이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이었다. 같은 색을 좋아했고, 같은 음악을 즐겼다. 내가 좋아하던 곡은 그도 좋아하던 곡이었고, 그가 새로 추천하는 낯선 곡들은 언제나 미치도록 좋았다. 나는 늘 한 발짝 앞서 있는 듯한 그의 취향을 신뢰하게 되었고, 그가 좋다고 하는 건 무엇이든 좋아하려고 했다.

 

어느 날, 우리는 함께 밥을 먹다가 그의 가지 사랑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싫어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좋아한다고 했다. 나에겐 충격이었다. 가지를 사랑할 수 있다니. 가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그는 분명 대단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내게 말했다. "내가 진짜 맛있는 가지튀김을 아는데, 한 번만 먹어보지 않을래?"

 

나는 당황했다. 가지 말고도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굳이 가지를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그의 진지한 눈빛과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며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게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지튀김을 맛있게 하는 식당이 있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기대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그를 따라갔다. 그가 데려간 곳은 평범하지만 깔끔한 작은 동네 중국집이었다. 우리는 몇 가지 음식과 술, 그리고 가지튀김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고, 나는 그의 기대 어린 눈빛을 의식하며 튀김을 한 점 집어 들었다. 튀김옷과 소스가 가지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가지였다.

 

그는 물었다. "어때?"

나는 대답했다. "정말 맛있다. 내가 먹어본 가지 중 최고야."

반은 맞고 반은 거짓이었다. 정말 맛있다고 한 건 거짓이었지만, 내가 먹어본 가지 중 최고였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맛있는 가지튀김을 먹어봐야 한다니까."

 

그날 이후 나는 가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가지튀김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내가 가지를 좋아한다고 믿는 듯했고, 새로운 가지튀김 맛집을 계속해서 알려줬다. 그리고 우리는 수많은 가지튀김을 함께 먹었다. 시간이 쌓일수록, 가지튀김을 먹는 경험도 쌓였다. 어느새 나는 더 이상 가지를 혐오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먹게 되는 음식처럼, 가지도 내게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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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나는 오늘날 가지튀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바삭한 튀김옷 사이로 기름을 잔뜩 머금은 가지가 달큰한 소스와 만나 이루는 조화를 이제는 떠올릴 수 있다. 때로는, 고기와 튀김의 조화인 닭강정보다 채소와 튀김의 조화인 가지튀김이 훨씬 더 맛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이런 변화는 전적으로 그 덕분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가지를 멀리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내가 신기하고 우습다. 과연 나는 가지튀김을 사랑하게 된 걸까, 아니면 그와 함께한 시간을 사랑하게 된 걸까.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른다. 다만, 지금도 문득 가지튀김을 떠올릴 때면 그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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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걸 탐험하며 멋나게 인생을 채워나가고 싶은 폼생폼사 인간, 강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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