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한복집, 한쪽 벽 가득 채워진 형형색색의 원단을 본 적이 있나요? 한복의 색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색은 영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하고 한 바실리 칸딘스키의 말을 떠올릴 겁니다.
2023년 봄, 한국에서 조카의 결혼식을 위해 새 한복을 맞추러 갔을 때 제가 그랬죠. 전통 한복은 음양오행의 원칙을 담아 색의 조화를 세심하게 고려해 안감, 겉감, 치마, 저고리, 소매 끝, 고름까지 수십 색의 원단을 펼쳐놓고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합니다. 한복 한 벌을 위해, 각각의 색이 지닌 의미를 설명하며 완벽한 색의 조합을 고려하죠. 수십 년 전 오빠들의 결혼식과 내 결혼을 위해 받았던 한복들이 떠올랐고, 그렇게 정성스레 지어진 옷이 단 한 번의 행사 후 옷장에 보관된 채 잊히는 것이 너무 아쉬워 한국에서 그 한복들을 챙겨 미국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그리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와 내가 사는 북버지니아 사이를 흐르는 포토맥강의 이름을 딴 포토맥 섬유예술가 조합(Potomac Fiber Arts Guild: PFAG)에 가입했지요.
너무 불편해 입지 않고 보관만 하던 한복을 편하게 입을 수 있게 무릎 아래 정도 길이의 고무줄 치마로 개조하고 남은 천으로 조끼를 만들었습니다. 새색시 한복인 초록 저고리, 빨간 치마를 개조한 투피스는 크리스마스 파티용으로, 금박 무늬로 장식된 청색 치마를 잘라 만든 치마와 조끼는 한글학교 행사 때, 약혼식 한복이었던 분홍 치마와 엄마의 여름 한복 보라색 치마를 잘라 조끼와 치마 한 벌로 만들어 식사 모임 자리에 입고 다녔지요. 화려한 색상과 멋스러운 옷감 덕에 미국에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으며 한국의 멋을 자연스럽게 전할 뿐 아니라, 악화되는 환경문제에 도움이 되는 5Rs—환경에 유해한 것을 거부(Refuse), 쓰레기 감소(Reduce), 재사용(Reuse), 수리 또는 퇴비화(Repair or Rot), 재활용(Recycle)—의 실천을 장려하기에도 그만이었습니다.
옷을 만든 후 남은, 선명한 색색의 조각천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어린 시절 한국에서 옛 한옥 처마 밑에 달려있던 종 풍경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풍경을 하나 만들고 나니, 조금 더 작게 만들면 귀걸이가 되겠다 싶어 귀걸이도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악세서리나 장신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중학교 시절 가사시간에 배웠던 자수를 떠올리며 한복 천 아래 마 조각천을 대고 자수를 놓아 브로치도 만들어 보았지요.
다음으로 핸드백을 만들고 있었지요. 부드럽고 가벼운 한복 천과 가죽끈은 물과 기름처럼 너무 어울리지 않아, 가방끈을 만들기 위해 매듭을 배워야겠다 할 때였답니다. 조끼를 만들며 한복과 함께 천년을 넘게 함께해온 매듭을 할 줄 알면 멋진 버튼을 만들 수 있을 텐데 하며 매듭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재료의 이름조차 모르니 어떻게 미국에서 살 수 있을지 막연할 뿐이었지요. 때마침 근처에 사는 섬유예술가인 한 한국분이 “요즘은 유튜브 보며 매듭을 배울 수 있으니 가져다가 해보세요”라며 사용하지 않지만 차마 버리진 못하고 간직해온 매듭 재료를 내게 주셨습니다.
PFAG 매월 모임 중 직물 염색 전문가가 와서 강연할 때, 파란 눈, 백발의 백인 여성이 인디고블루(indigo dye)를 언급하며 일본의 책과 여러 차례의 일본 여행을 통해 배웠다며 일본의 천연염색 역사와 기술에 대한 찬사를 했었습니다. 그때 한국 천연염색의 역사가 더 오래고 깊을 텐데 아무도 한국의 그런 면모에 대해 아는 이가 없다는 게 속상해, 2024년 봄 한국에 갔을 때 나주에 있는 한국 천연염색 박물관에 갔지요.
천연염색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사용하여 염료를 추출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색상을 표현하는 과정으로 한국에선 선사 시대부터 사용되어 왔다고 추정합니다. 천연 섬유 염색은 염료, 매염제, 섬유 이 모두가 천연 자연에서 얻는 것으로, 한국은 전통적으로 면, 마, 삼베, 비단과 같은 천연 섬유에 천연염색으로 색을 냈지요. 염료의 경우 식물성 (예를 들어, 쪽나무를 사용한 쪽 염색은 청색을, 소목나무를 사용한 소목 염색은 적색을, 감나무를 사용한 감염색은 갈색을 만듭니다), 오징어 먹물과 같은 동물성, 황토, 산화철 등의 광물성 염료, 매염제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썼습니다.
이러한 천연염색은 자연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인체와 환경에 무해합니다. 한번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합성 의류에서 70만 개가 넘는 미세 플라스틱과 유해한 염색제가 배출돼 수중 생명들을 파괴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야 할 때입니다.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곳곳에 거대한 쓰레기 옷 산이 생겼고 합성 섬유가 완전분해하는데 2백 년이 넘게 걸린답니다. 막대한 수질오염과 이산화탄소 배출로 만들어진 패스트패션의 옷들, 전 세계 의류 절반이 구입 1년 내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하죠. 한국 전통 천연 섬유와 염색을 전수해 현대화하고 널리 알려야 할 때입니다.
일단, 주변에 한복을 그저 갖고 있다가 쓰레기로 버리는 분이 있다면 이런 재활용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