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첫 영화로 나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본 『더 프로페서 앤 더 매드맨 (The Professor and the Madman)』을 나누려 한다. P.B. 셰므란 감독이 연출하고 멜 깁슨과 숀 펜이 주연한, 2019년 개봉되었던 이 영화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OED)의 탄생에 얽힌 놀라운 실화를 그린 전기 드라마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책 『크로소른의 외과의사(The Surgeon of Crowthorne)』를 원작으로 하며, OED 초판 편찬에 결정적 기여를 한 제임스 머리 교수(멜 깁슨 역)와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박사(숀 펜 역)의 우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또한, 영화는 두 명의 중요한 여성 캐릭터, 에이다 머리와 엘라이자 메렛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 그 다음은? (If Love, then What?)”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의 주제를 끌고 나간다.
영화는 1872년 런던에서 시작된다. 전직 미군 군의관인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박사는 환각에 시달리며 결국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한편, 제임스 머리 교수는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로부터 OED를 편찬하는 막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방대한 영어 단어를 정리해야 하는 벅찬 과제 앞에서 머리는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마이너를 만나게 되는데, 마이너가 보내온 방대한 단어 목록이 사전 편찬의 핵심 자료가 된다. 이와 함께, 머리 교수의 아내, 남편을 헌신적으로 지지하며, 머리 교수와 지적 파트너십을 이루어나가는 에이다 머리(제니퍼 일 역)의 삶도 함께 펼쳐진다. 그녀는 “사랑, 그 다음은?”라는 질문에, 한 사람을 온전히 지지하는 데 필요한 희생과 강인함을 조명한다.
또 다른 중요한 여성 캐릭터 엘라이자 메렛(나탈리 도머 역)은 “사랑, 그 다음은?”라는 질문이 적힌 쪽지를 마이너 박사에게 건넨다. 그녀는 마이너 박사가 실수로 죽인 남성의 미망인으로, 어린 자녀 여섯과 함께 홀로 남겨져 처음에는 복수를 원하지만, 정신병원을 방문한 그녀에게 마이너 박사가 글을 가르치기 시작하며 두 사람은 슬픔과 편지를 나누며 예상치 못한 유대를 형성한다. 그녀의 여정은 용서와 사랑의 치유적 힘을 탐구하며, “사랑이 치유할 수 있다면, 용서를 막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적 호기심과 집념으로 방대한 첫 영어사전 편찬이라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제임스 머리 교수와 천재 광인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박사의 우정, 머리 부부의 사랑, 마이너 박사와 메렛의 우정과 사랑, 그들의 복잡한 내면과 갈등, 구원의 여정이 인상적으로 그려졌다. 정신병원에서 생체실험으로 폐인이 되어가는 마이너 박사를 구해내기 위해 그들의 사랑이 합쳐져 그를 빼내 미국 고향 땅으로 보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구원, 지적 탐구, 그리고 인간관계의 깊은 힘을 탁월하게 엮어내며,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고 이끌어가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특히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무려 7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이 한 단어, 한 문장을 헌신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오늘날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는 60만 개 이상의 단어와 240만 개 이상의 예문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방대한 작업이 1857년에 시작되어 많은 자원자의 열매라는 사실은 경이로울 뿐이다. 현대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실은 수많은 이들의 노고를 거쳐 이루어진 위대한 것들임을 상기시켜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한 깊은 감사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를 본 후, 나는 마이너 박사의 실화가 영화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궁금해져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박사는 1863년 예일대를 졸업한 의사로, 연구 활동 후 남북전쟁 당시 북군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몇 년간 전쟁에서 목격한 참상은 그에게 편집증적 정신분열증을 남겼고 정신질환이 개선되지 않자, 1871년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편집증에 시달린 그는 1872년 2월 17일에 조지 메렛을 자신의 방에 침입했다고 착각하고 총으로 쏴 죽였다.
1980년에 공식 용어가 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 혹자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 2기 취임 후 프레지던트 트럼프 스트레스 장애라 부르기도 한다)가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마이너 박사의 시대엔 그는 그저 미치광이로 취급받았을 터였다. 1861년부터 65년까지 4년에 걸쳐 62만 명에서 85만 명의 사망자를 낸 미 남북전쟁 - 그 전쟁이 아니었다면 천재적이었던 마이너 박사는 정신질환을 겪지 않고 행복한 의사로 살 수 있었을까? 그가 행복한 의사로 남았다면 옥스퍼드 사전은 어떻게 됐을까? 2022년 2월에 시작해 3년이 되어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도 백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고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PTSD를 겪는 이들이 또 생겨날 것인가.
“사랑이라면, 그 다음은?”라는 질문에 극 중 엘라이자 메렛은 “사랑하는 것”이라 말한다. 사랑만이 용서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처럼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용서 대신 미움을 쌓아가는 시대에 “사랑이라면, 그 다음은?” 영화 속 이 질문을 되새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