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 저널리즘을 공부했다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퓰리처상’ 덕분에 명망 있는 위인으로 알기 쉽지만, 미디어의 어두운 면을 대표하는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퓰리처는 윌리엄 허스트(Willian Randolph Hearst)와 함께 ‘신문왕’으로 불리며 19세기 미국 언론시장을 지배했다. 한때 날카로운 필력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기자였지만, 경영자가 된 이후 자극적인 보도와 값싼 가격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선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며 판매 부수 싸움을 벌인 ’황색언론‘ 전쟁은 윌리엄 허스트의 승리로 돌아갔고, 퓰리처는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성찰 끝에 저널리즘을 실천한 후배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게 되는데. ‘기자들의 노벨상’도 그렇게 탄생했다.
신문 헤드라인이 곧 세상 사람들의 대화 주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신문이 거의 모든 시민들의 손에 들려있었던, 어찌 보면 전성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때 신문에서 가장 인기가 많던 코너는 다름 아닌 만화였다.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도 엄연히 작품이기에. 창작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더욱 자극적일 수 있었다는 뜻이다. 판매 경쟁을 펼치는 언론사들은 만화를 이용해 독자들을 끌어모으고자 했다. 인기 만화작가를 여러 저널에서 하이재킹하려는 시도가 빈번히 일어날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문에서 사진의 자리는 좁았다. 미디어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간 건 기술이 진보하면서부터다. 퓰리처상에서 보도사진이 중히 다루어진 것도 이때쯤이다. 사진 부문이 시작된 것은 1942년. 초대 수상작은 밀턴 브룩스(Milton Brooks)의 작품 <피켓 라인(The Picket Line)>이다.
진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1942년 수상작, 피켓 라인(THE PICKET LINE) - Milton Brooks April 3, 1941, Detroit, Mich
출처: Alamy Stock Photo
포드 공장 근로자들이 시위를 벌이던 도중, 노조원들과 충돌한 남성의 모습이 보인다. 회사 간부로 추정되는 남성은 구타를 당하고 있다. 이 모습은 그대로 디트로이트 뉴스에 실려 나갔다. 사진 한 장으로, 그간 수면 아래에 있었던 미국 내 노동자들의 불만이 드러난 순간이다.
특정 사실이나 시사적인 문제를 사진기술로써 표현하는 저널리즘을 ‘포토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사진은 더 이상 기사글의 이해를 돕는 참고자료가 아니었다.
“망설일 수 없다. 그 순간이 사진 속 모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는다.”
- 케롤 구지(퓰리처상 수상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1989년 수상작, 생명을 불어넣다(GIVING LIFE) - Ron Olshwanger Dec 31, 1988, St. Louis, Mo
출처: Photograph courtesy Ron Olshwanger
1989년 수상작, 론 올슈웽거(Ron Olshwanger)의 작품이다. 세인트루이스의 한 아파트 화재 현장을 담은 이 사진은 현재 미국 내 화재예방의 상징이다. 전업 사진기자가 아니었던 올슈웽거가 포착한 건 화염을 뚫고 나오는 소방관의 모습. 그는 품에 아기를 안고 걸어나오는 동시에 인공호흡을 실시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진 속 아기는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현장에서 올슈웽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누른 셔터 덕분에, 미국 곳곳에 화재 경보기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SHOOTING THE PULITZER
퓰리처상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보도, 문학, 음악상이다. 이 상의 본질적인 목적은 훌륭한 언론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많은 부문들 가운데 보도사진이 퓰리처상을 대표하게 된 이유는 뭘까. 사진 한 장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클까.
그동안의 수상작들 중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모아, 지난 12월 21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퓰리처상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 세계 근현대사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졌다.
복잡한 국제 정세를 담은 사건들이 이어지는 만큼, 발걸음 하나하나 가벼이 넘어갈 수 없었다. 우리는 매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목격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이런 현대인들을 대신해, 사진가들은 그 모든 날들을 기록해왔다. 공습의 위험 속에서도, 때로는 물리적 폭력에 의해 희생될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최전선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다.
우리가 일상 속, 카메라를 켤 때는 어떤 순간들인가. 예쁜 하늘과 맛있는 음식, 또는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스스로의 모습들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추억을 기록하듯, 현장에서의 사진가들은 분쟁과 고통을 본능적으로 찍어낸다. 새삼 그들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사진가들의 렌즈엔 모두가 알아야 할 사회의 이면이 가득하지 않을까.
지난 80년간 헌신적인 작가들에 의해 남겨진, 켜켜이 쌓인 귀한 기록들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전시는 2025년 3월 3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