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섯 살 조카가 좋아하는 ‘캐치! 티니핑’을 함께 보다가, 이 애니메이션의 어떤 점이 어린이들을 그토록 매료시킨 것인지 궁금해졌다.
예쁘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흥미로운 모험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재미는 보장되는 것이지만, ’파산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흡입력을 지닌 작품인 것인지, 그전에 있었던 다른 아동용 애니메이션들과는 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알고 싶어 보면서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어른의 시선에서는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어린이들의 세계가 있음을 절실히 느꼈을 뿐이고, 그 안에 분명 존재하는 어린이들의 감각을 자극한 요소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궁 속에 남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와 어른의 시선을 연결해 주는 제대로 된 평론이 아동용 콘텐츠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캐치! 티니핑’이 만약 어른들을 위한 영화였다면, 이미 그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론은 쏟아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유명 영화 평론가인 이동진 평론가의 유튜브 댓글 창에는 ‘캐치! 티니핑’의 극장판 ‘사랑의 하츄핑’을 평해달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지만, 그 댓글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그저 이동진 평론가를 향한 짓궂은 농담이었으며, 이동진 평론가는 그 제안을 장난스럽게 거절했다.
아이들에게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 어른들에게는 그저 ‘밈’으로서 소비될 뿐, 그것에 대해 전문적인 분석과 비평을 하려는 시도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동용 콘텐츠에 대한 문화 전반의 시선이 어떤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티니핑’의 인기에 대해 맥락적인 이해를 시도한 이지혜 평론가의 글이 있긴 했다. 어린이들에게 ‘티니핑’이 어떤 의미인지를 직접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접근으로서 아주 유의미한 시도였지만, 이렇게 이따금 나오는 평론들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러한 평론이 지극히 파편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동용 콘텐츠에 대한 평론은 극히 드물 뿐만 아니라, 가끔가다 ‘새로운 시도’나 ‘접근’으로서 존재할 뿐이므로 제대로 된 아카이브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부모나 교사들에게 아동용 콘텐츠에 대한 지속적인 인사이트를 안겨 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남는다.
아동용 콘텐츠에 대한 지속적인 비평과 담론은 형성되어야만 한다. 그러한 탐구는 보호자로 하여금 어린이들이 소비하는 콘텐츠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들이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알게 한다. 이는 어른과 아이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으로 이어지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문화 콘텐츠의 주체적인 소비자로서 자리 잡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 사이에서의 컬트적 인기를 누리는 아동용 콘텐츠를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인정하고 탐구하게 되는 가능성을 열어주며, 국산 아동용 콘텐츠가 지켜야 할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 시대의 어린이들은 이미 문화의 소비자이다. 그들을 얼마나 주체적이고 똑똑한 문화 소비자로 만드느냐는 어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