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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DV8의 Enter Achilles(1995)는 남성문화의 상징으로서 펍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곳에서의 일상을 포착한 무용을 통해 남성들 간의 유대와 갈등, 폭력을 드러낸다. 남성들 간의 관계와 집단 내에서의 각자의 위치는 서로 얽힌 몸짓을 통해 드러나며, 일반 공연이 아닌 영상 언어로 표현되었기에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나 시선 등을 통해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관계 속에 보이는 전통적 남성성의 상징이나 남성 문화의 ‘아킬레스건’이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가 된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점을 통해 이 작품이 보여주는 바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영상 언어로 번역된 무용


 

Enter Achilles는 본래 공연 무대를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안무와 구성이지만, 감상한 버전의 경우 영상 언어로 번역된 형태의 작품이었다. 즉 기존의 무용이 영상 언어로 번역됨에 따라, 무대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무용수의 동작과 표정 등을 관객이 각자의 시선으로 선택적인 감상을 하게 되는 공연예술과는 달리, 카메라의 시선에 따라 유도된 장면을 감상하게 되었다. 이는 영상의 특성으로서 관객의 자유로운 감상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지만, 표정과 몸짓의 디테일을 포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이 작품의 경우 일종의 댄스 무비로서,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상황의 변화가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를 섬세하게 파악하는 것이 작품의 의도 혹은 주제의식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영상 언어로 표현된 것이 적절한 경우였다고 보인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직접적인 대사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정확한 의미나 해석은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스토리에 관객들을 조금 더 가깝게 끌어들이기에 적절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본다.

 

무용은 전통적으로 공연예술의 맥락에서 그 의미를 두고 있는 장르지만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예술적 몸짓 그 자체로서 춤으로 본다면, 영상 언어로 번역된 경우에도 충분히 그것의 본질을 해치지 않은 채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일상을 포착한 몸짓과 연출


 

이 작품에는 일상의 동작들을 포착하여 춤으로 표현한 몸짓이 많이 보인다. 맥주를 마시는 행위나 서로 컵을 빼앗는 행위, 소리를 지르거나 섹스를 하는 등의 모습을 음악에 맞는 일련의 연결된 동작으로 표현한다. 양식화된 동작을 통해 조형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여 표현했던 고전 발레나, 내면의 감정과 동기를 폭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현대 무용과 같은 특정 장르의 움직임이 아니라, 일상에서 비롯된 동작들을 취한다.

 

이는 펍이나 골목길 등의 일상적인 배경과 어우러짐으로써 우리가 그들의 삶의 단면을 엿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엿볼 수 있다는 느낌을 통해 관객은 작품 속 남성들의 행동과 남성문화에 대한 해석과 비판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들의 극단적인 행동과 남성 문화가 만약 일상적 배경 없이 무대에 전시되었다면, 오히려 이를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비판이나 해석의 여지 없이 작품 자체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상징을 통해 남성 문화를 묘사하며 이를 지극히 일상적인 배경에서 일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주변에 존재했던 비슷한 사람 혹은 상황에 대해 떠올리게 했고, 관객으로부터 이에 대한 공감이나 비판도 더욱 자유롭게 이끌어낼 수 있었다. 따라서 일상을 포착한 몸짓과 일상적인 배경에서 어우러진 풍경들이 관객에게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성에 관한 묘사


 

Enter Achilles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남성성이다.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수많은 요소들이 클리셰처럼 복무하며, 인물들 간의 관계와 서열을 통해서도 남성문화를 엿볼 수 있다. 등장인물은 모두 남성이며,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 축구 중계를 보거나 축구공을 차며 노는 것, 다 함께 담배를 피며 결속을 다지는 것과 같이 남성 문화를 드러내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넥타이와 셔츠 의상, 수염과 면도기 등 남성성을 드러내는 소품들이 쓰였으며, 남성의 페니스를 상징하는 길고 뾰족한 물건들, 예를 들면 칼이나 다트와 같은 성적 모티프를 활용하여 남성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묘사는 작품 내에서의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놀이와 폭력의 경계선 상에 있는 행동들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그들 내부의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서로 간에 유쾌한 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로 폭력성이 매우 짙게 나타난다. 또한 그들의 관계나 서열 또한 부각하여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그들의 균열을 포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략을 취하였다. 암묵적인 서열 관계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 집단의 문화에 균열을 발생시키는 사람에 대한 위화감 등이 묘사되었다.

 

 

 

남성문화와 남성의 아킬레스건


 

‘아킬레스’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으로서, 발뒤꿈치를 제외하면 불사신이며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다. 그러한 신화적 맥락에 따라 남성성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가 결국은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은 것처럼 아킬레스는 가장 취약한 결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즉 작품의 제목에서 ‘Achilles’라는 상징적인 존재를 내세운 것 자체가 곧 그들이 재현하는 남성 문화의 맹점을 드러내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남성 간의 암묵적인 서열 관계를 보여주며,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놀이와 폭력의 경계를 드러낸다. 이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파란 셔츠를 입은 남자와 그 바로 밑에서 가장 폭력성을 보이는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집단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이에 동조한다. 한편 유일하게 화려한 옷차림을 한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는 무리에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무시를 당하는 위치에 있다. 계속해서 술을 갖다 날라주고, 다른 남성들과 어울려 춤을 추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은 무시한다. 슈퍼맨 코스프레를 한 남자는 기존의 공동체 일원이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인물인데, 이 인물로 인해서 공동체에 계속해서 균열이 발생하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치부, 즉 약점을 드러내게 만드는 트리거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집단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는데 이때 유일하게 빨간 셔츠를 입은 남자가 동조하지 않는다. 이 빨간 셔츠의 남자는 엄격한 서열과 집단의 질서에서 침묵을 유지하는 방관자의 태도를 보인다.

 

언뜻 보면 기존의 남성 문화의 질서에 어울리지 못하거나, 이에 반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남성의 ‘아킬레스’로 치부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파란 셔츠의 남자, 즉 이 집단의 보스가 아끼던 섹스돌을 단체로 망가뜨리는 장면에서 그의 성적 취향 등의 사적인 취약점이 모두에게 공개적으로 조롱 당하였고 이는 기존의 집단의 서열이 역전되는 결말을 보여주었다. 즉 이는 기존의 엄격한 질서나 서열을 깨면서 일종의 쾌감을 불러 일으키고, 그러한 고질적인 문화가 남성 집단 문화의 맹점임을 비춘 것이다.

 

또한 그러한 남성문화의 ‘Achilles’를 단순히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에 ‘들어간다’는 제목에 걸맞게 작품의 시선은 그들의 관계 속으로 뛰어들어 입체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 묘사의 도구적 요소로서 여성에 대한 묘사


 

이 작품에 여성 무용수는 등장하지 않지만, 파란 셔츠의 성도착적 행위를 보여주는 소재이자 집단의 조롱의 대상이 되는 섹스돌은 여성으로 묘사된다. 분명 이 작품이 남성성에 대한 고찰을 다룬 것인데, 그 안에서 여성으로 묘사된 인형을 다루는 방식은 누가 봐도 매우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결말에서 인형을 파괴하는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인형을 사랑하던 파란 셔츠 조차도 인형을 대하는 방식은 아주 폭력적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남성 문화를 비판하기 위해 묘사되는 부분일 순 있지만 그 자체의 이미지가 꽤나 혐오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일종의 한계를 느꼈다. 물론 약 30년 전 작품이긴 하지만, 남성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이나 묘사를 하기 위해 여성이 도구적인 요소로 쓰이고 있음은 물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는 시선이 일정 부분 자연스럽게 여겨지던 구시대적 맥락이 이 작품에 존재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접했던 대부분의 공연들은 여성 혹은 이분법적 젠더 구분을 벗어나는 소재를 택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남성성에 대한 고찰을 깊이 있게 담아낸 이 작품이 더 드물고 신선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Enter Achilles는 1995년 작인 만큼 동시대 공연들의 감수성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현대의 예술에서 남성을 재현하는 시선 역시 더욱 다양해져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었다. 단순한 젠더의 '구분'과 '구별', 그 이상의 층위에서 모든 성별에 대한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해 '다양성'의 또 다른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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