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을 한 것도 아니고, 기념일을 맞은 것도 아닌 소녀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녀시대가 데뷔 18년 차를 맞이한 2025년 현재, 우리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빼놓고는 한국 대중음악사를 논할 수 없는 시대에 도래했다. 그러므로 뜬금없이 소녀시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도리어 당연하다.
이 시점에서 소녀시대의 지난 18년을 돌아보며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소녀시대’라는 그룹의 존재 가치는 그때보다 지금 더 선명히 빛난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예전만큼 소녀시대의 음악과 무대를 자주 볼 수 없고, 소녀시대 멤버들은 이미 ‘소녀시대’라는 타이틀 밖에서도 너무나 존재감 있는 연예인이 되었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소녀시대’라는 울타리 안팎에서 그들이 걷는 모든 길은 견고히 쌓아 올린 그들만의 세계관이 되었다. ‘소녀들이 평정하는 시대’란 어느 한 시점에서 시작하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증명하듯, 오히려 그들이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져 간다.
2007년, SM엔터테인먼트가 몇 년을 공들였다고 자부한 ‘여자 단체팀’ 프로젝트의 결실로 데뷔한 소녀시대. 그들은 SM이 야심 차게 내놓은 다인원 걸그룹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데뷔 초반부터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그들은 초창기 인기몰이를 했던 청순하고 친근한 소녀의 콘셉트에 안주하지 않고, 어느 날엔 ‘행운의 여신’으로, 어느 날엔 ‘악마’, ‘치어리더’, ‘전사’로, 어느 날엔 ‘걸스힙합의 아이콘’으로 변신했다. 콘셉트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장르도 한계를 두지 않고 매번 다른 음악을 추구해 왔다. 일례로 정규 4집의 타이틀곡 ‘I Got A Boy’는 K-pop에서 최초로 믹스팝 장르를 성공시킨 사례로 여겨지며, 정규 5집의 타이틀곡 ‘Lion Heart’은 이전 앨범들에 비해 사운드를 많이 덜어내는 모험을 시도했지만 소녀시대 멤버들의 화성으로 그 자리를 빈틈없이 채우며 복고풍 스타일의 콘셉트와 어우러지는 음악을 선보였다.
소녀시대의 음악 안에서 ‘소녀’는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게 소녀시대는 K-pop과 대중문화에 계속해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시간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음악적·시각적 세계관을 확장한 소녀시대는 그토록 다채로운 팔레트 위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해 마지않는 ‘국민 걸그룹’이 되어 있었다.
소녀시대의 멤버들은 그룹 활동 밖에서도 저마다의 방식을 통해 ‘소녀’의 가능성을 몸소 증명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솔로 가수, 연기자, 뮤지컬 배우, 방송인, 그리고 DJ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개개인이 갈고닦은 역량을 대중 앞에 당당히 선보였다.
팀의 오랜 공백기 이후 선보인 15주년 앨범이 진한 그리움이나 그 시절에 대한 향수보다, 축제 같은 웃음과 행복을 가득 담고 있었던 것은 그 공백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메꾼 모든 멤버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 덕에 우리는 ‘헤어짐이 아닌 안녕의 의미’를 알 수 있었고, 축제 같은 그 시간이 ‘엣지 있는 타이밍’이 올 때마다 더 멋지게 찾아올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걸그룹이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기란 그때도 지금도 쉽지 않지만, 소녀시대가 따로 또 같이 걸어가며 만든 길은 그들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과거의 영광이나 성공에 갇혀 있지 않고 또 다른 성취를 향해 꾸준히 나아간다.
‘소녀시대’ 안에서도 그들은 충분히 다채로웠지만, 팀 안에서만 있었더라면 미처 할 수 없었던 것들마저 손에 쥐고 말았다.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여성으로서 소녀시대 멤버들은 ‘소녀’의 무한한 가능성을 계속해서 증명해 냈다.
그리고 데뷔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소녀시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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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의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는 2016년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에서 처음 쓰인 것을 시작으로, 이후 같은 해 박근혜 정부 규탄 촉구 시위와 2020년 태국 민주화 운동에서 쓰이며 새 시대의 투쟁가로 자리 잡았고, 퀴어 퍼레이드와 2024년~2025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도 울려 퍼지는 중이다.
그렇게 ‘다만세’는 젊은 세대의 투쟁가를 넘어 남녀노소 함께 부르는 민중가요가 되었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시대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이토록 울려 퍼진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다만세’의 민중가요화가 젊은 여성들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더 고무적이다. 소녀시대가 앞으로 펼쳐질 역경과 고난을 함께 이겨내자는 약속으로서 부른 노래였던 ‘다만세’는, 꿈과 희망을 믿는 젊은 여성들을 거쳐 비로소 국민들의 것이 되었다. 소녀시대의 음악을 듣고 자란 이들은 ‘뭐든 될 수 있는 소녀’의 무한함을 안다는 듯, 가능성을 노래하는 이들이 되었다.
물론 그것은 소녀시대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다시 만난 세계’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 곡의 주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소녀시대’이기에 더욱 특별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사회적 메시지를 내걸고 활동하는 팀은 아니었을지라도, 끊이지 않는 변화와 성장을 통해 또래 소녀들에게 충분히 좋은 영향을 주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 활동했던 그 어떤 팀보다도 상징적인 영향력을 지녔으며, 팀으로서 일구어낸 가치를 그 어떤 멤버도 조금도 가볍게 여기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가고 있기에. 그리고 그 가치는 한결같이 바로 소녀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기에 더욱 특별하고 말할 수 있다.
소녀시대는 단순한 아이돌 그룹을 넘어, 다채로운 음악과 콘셉트를 통해 ‘소녀’의 개념을 확장하고, 변화를 멈추지 않으며 시대와 공명하는 팀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시대가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곁에서 희망과 열정을 노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