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다시 돌아온다. 패션계의 격언과도 같은 문장이다. 나의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내 나이였던 시절에 입던 것과 몹시 유사한 옷을 걸친 또래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패션도 새로움을 개척하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잠시 뒤로 돌아왔던 길을 다시 밟는다. 그 흐름이 한국 음악계, 정확히는 돌판이라고 부르는 아이돌 시장으로까지 퍼진 것 같다. 알고리즘의 이끌림인 것인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인기를 끌던 그룹들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나둘씩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I got the Po\er, Po\er
신곡 ‘POWER’에 이어 ‘Home Sweet Home’까지 공개하면서 전 세계 대중의 관심을 모조리 쓸어 가버린 지드래곤의 등장은 전설의 부활을 화려하게 알렸다. MAMA에서 태양, 대성과 함께 무대를 선보이는 것으로 빅뱅의 복귀까지 알리며 화룡점정을 찍어버리는 광경은 거의 10년에 가까운 공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음을 증명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V.I.P로 남아있는 나에게도 이런 세간의 관심은 꽤 놀랍다. 아이돌의 아이돌,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불리던 것도 옛 시절의 휘광이라 생각했는데 그 빛은 아직 꺼질 생각이 없나보다.
‘더 시즌즈’에서는 이제는 한 명의 래퍼라는 이미지가 더 강한 남자 지코가 속해있던 그룹 블락비가 완전체로 출연했다. ‘Her’를 비롯해 그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들을 오히려 더 발전한 실력과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여유를 더해 보여주는 노련함에 감탄했다. 동시에 당시에 꽤 불량한 컨셉으로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나도 그에 동의하기에 특색있는 아이돌 그룹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돌판에 큰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릴스냐 유튜브 쇼츠에서도 2000년대나 2010년대쯤 데뷔한 아이돌 그룹들의 무대 영상이 인급동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날에는 그보다도 더 예전, 우리들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젊었을 적의 가수들 영상까지도 올라온다. 로제의 apt가 윤수일의 아파트를 유행시킨 그 흐름이 여기까지 이어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사람들이 엇비슷한 것만 가득한 시장에 무료함을 느껴 옛것을 찾아가는가 싶기도 하다.
회귀물은 통한다
옛것을 찾아가는 흐름이 한국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미국에서도 컨트리 기반의 음악이 빌보드 차트 순위권을 차지했다. Shawn Mendes, Taylor Swift, Post Malone 등 젊은 세대가 사랑받는 아티스트들도 컨트리 소스를 가미한 앨범을 발매하는 추세다. 10년 전의 미국이 지금의 한국이라는 말도 있는 걸 보면 오히려 미국에서 시작된 물결에 우리가 휩쓸려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눈앞에 찾아온 상황에 무엇이 먼저고 나중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기에 나는 그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왜 이런 변화가 시작됐느냐는 의문의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추측해 보건대 대중들은 이미 비슷한 것만 쏟아지는 한국의 돌판과 대중음악 시장에 무료함을 느껴 권태로움에 빠져버린 게 아닐까 싶다. 거기에 더해 1~2년 전부터 붉어지고 있는 라이브 실력 논란도 기름을 끼얹었다고 본다. 유튜브 댓글을 열어보면 서로 다른 팬덤들이 모여 립싱크네 라이브니 하며 싸움을 벌인다.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도 악의적인 편집으로 특정 아이돌을 제대로 노래도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 모든 갈등의 밑바닥에는 제대로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아이돌을 향한 강렬한 열망이 깔려있다.
그 이전 세대의 아이돌 시장에서는 일종의 자정작용이 이루어졌다. AR은 죄악이었고 이렇다 할 보정도 없이 생 라이브로 음원과 똑같은 노래를 선보이지 못하면 언론과 대중에게 물어뜯겨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뿐일까. 노래 실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다른 그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만의 개성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컨셉으로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새로운 아이돌들을 보며 자라 온 세대에게 지금의 아이돌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분석과 논쟁에 정답은 없다. 나의 접근법이 틀렸을 수도 있다. 지금의 돌판도 피가 흐르지 않는 전쟁터임은 분명하다. 대중의 선택을 받고자 밤낮 없이 연습에 몰두하고, 무릎 하나 버린다는 생각으로 춤춰가며 자신들만의 색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모든 아이돌 그룹에 찬사를 보내며, 내가 본 세상의 모습과 그 의문점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을 나누고자 할 뿐이다. 이전 그리고 지금의 VIP로서 다시 돌아와 준 지드래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