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해 오래전 읽고 서재에 고이 모셔뒀던 ‘무소유’를 다시 꺼내 읽었다.
무엇인가를 살 때마다 오는 찰나의 행복에 길들어, 무소유를 제목으로 하는 이 책을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나에겐 마음가짐을 정돈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했다.
책을 펼치기 전, 표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서재는 ‘무소유’를 소유하고 있구나.
1970년부터 76년까지 법정 스님이 쓴 글들을 모은 에세이집이라 술술 읽힐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책을 펼치고 한 줄 한 줄 읽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문장마다 필사하고 싶어지거나, 몇 번이고 읽으며 되새겨보아야 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는 1970년대와 2025년이 된 현재 사이의 간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땅과 아파트, 소유와 집착, 인간관계 등 세상살이의 다양한 부분의 글이 담겨있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질은 똑같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사실 몇 번이고 이 책 읽기를 주저한 것은, 소유에 재미가 들린 내가 책을 읽고 부끄러워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성장한 지금, 책을 다시 펼치니 단지 소유를 다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저 ‘나에게 불필요한 것을 비워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무소유가 아닐까 싶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기 마련이라 생각하니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이다.'
이 문장을 몇 번이고 읽고 되새김질해 보았다. 그리고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공간인 내 방을 둘러보니 '여길 채우고 있는 물건들에 나와의 시간, 기억 같은 것들이 더해져 쓰지 않는 것들도 놓아주지 못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방을 채우고 있는 물건 중 실상 내 일상에 쓸모가 있는 아이들이 몇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책에서는 말, 사고, 감정, 인생 등 여러 측면에서 몇 번이고 곱씹게 되는 말들을 보여준다.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이 모순적인 말이 납득이 간다.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나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 보고자 <무소유>란 책의 몇 문장들을 영원히 마음속에 소유하고 싶다. 법정 스님이 남긴 이 글을 모조리 흡수하여 모방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내가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들을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게 딱 필요한 만큼의 내 마음을 마련해 온전한 주인이 되고 싶다.
아마 이제 <무소유>를 새해마다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없이 많은 소유 속에서 늘 비우고, 침묵하는 것과 갈등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다 건강하게, 개안하며 온전히 나로 살아가기 위해 변화를 다짐하게 되는, 그래서 무소유를 외치고 있지만 소유를 다짐하는 모순을 일으키는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해 보고 싶다.
글을 마무리하며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우리는 하나의 색맹에 불과한 존재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 색맹이 또 다른 색맹을 향해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안달이다.’
‘그러고 보면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