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모두에게 그럴 때가 있지 싶다. 세상만사가 너무 복잡하게 느껴질 때. 세상의 일원으로서, 인간관계의 일부 고리로서 기능하기가 갑자기 너무 피로하게 느껴질 때. 그럴 때는 두 발짝 물러서서 외곽의 세계에 머무르고 싶어진다. 말하자면 ‘현실도피’다.

 

나는 그럴 땐 집 가장 편한 공간에서 영화를 보곤 했다. 그런데 OTT서비스의 상위권 콘텐츠는 잘 찾지 않는다. 물론 재미있지만 그만큼의 집중과 긴장을 요하기 때문이다. ‘도파민 공장’이라 불리는 콘텐츠의 주인공 대부분은 문제 해결에 바쁘고,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며 조금은 피로하다.

 

그래서 찾게 된 다른 콘텐츠 ‘맛집’ 장르가 바로 힐링 영화다. 그중에서도 요리와 음식을 소재로 한 푸드힐링 영화는 인간 본능 중 하나인 식욕을 은은하게 자극하면서도, 해롭지 않은 에너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지친 당신에게도 대접하고 싶은 특별한 차림상. 세 편의 푸드힐링 영화를 소개한다.

 

 

 

에피타이저 - 리틀포레스트 : 겨울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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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우리가 아는 그 ‘리틀포레스트’의 일본 원작 영화 리틀포레스트. 한국의 리틀포레스트의 경우 영화 한 편에 사계절이 모두 담겨있다. 하지만 일본 원작 영화는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 총 두 편의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다. 관객을 위한 배려인 건지, 이를 한 편으로 압축한 사계절 버전도 존재한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에피타이저처럼, 리틀포레스트는 몇 번이고 먹어도 부담 없는 슴슴한 요리 같은 영화다. 자신의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임시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이치코. 이치코는 낮에는 농사일, 저녁엔 수확한 농작물을 손질하고 요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의 조용히 바쁜 일상을 지켜보는 일이 이리 기분 좋은 포만감을 줄 수 있음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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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요리가 주는 ‘맛’도 굉장한 매력 포인트다. 특별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칼칼 수제비, 봄나물 연어 파스타, 숙성카레와 밤 조림 등. 직접 수확한 제철 재료로 만든 다양한 요리가 위로와 감동을 선사한다. 바쁜 일상으로 이미 완성된 요리가 더 익숙한 지금의 우리에게 음식의 참맛과 그 안에 담긴 정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듯하다. 각각의 요리에 담긴 주인공의 기억과 인생에 관한 통찰을 이야기하는 나레이션 또한 은은한 감칠맛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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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리즈 중 ‘겨울과 봄’을 추천하고픈 이유가 있다. 완연한 겨울인 지금, 하얗게 눈 덮인 마을의 풍경을 비추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묘한 힐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영화를 잇는 ‘계절’이라는 매개에 집중하는 것이 에피타이저를 더욱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엄청난 스포일러겠지만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니까. 매서운 겨울을 나면 봄이 온다는 완벽한 결말까지 갖춘 영화. 에피타이저로 추천한다.

 

 

 

메인요리 - 아메리칸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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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요리로는 리틀포레스트보다는 고단백 고지방. 조금 묵직하지만 그만큼 행복한 맛을 선사하는 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소개한다. 존 파브로가 주연과 감독을 동시에 맡은 코미디 영화이다. 마블 세계관이 아닌 곳에서 스칼렛 요한슨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유니크함도 담고 있다.

 

유명 레스토랑의 메인 셰프인 칼 캐스퍼. 어느 날 자신의 요리에 대해 악평을 남긴 맛 칼럼니스트에게 트위터에 욕설 답신을 남겼다가 해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은 그는 미국 전역을 떠도는 푸드트럭을 개시하여 명예와 부 모두를 쟁취한다. 그의 똘똘한 아들, 그리고 셰프 시절 함께 일했던 유쾌한 부주방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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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셰프는 여느 코미디 영화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도 적당히 유머스럽게, 그리고 막힘없이 장면을 전환하며 고난을 돌파한다. 우리네 인생도 이런 한 편의 코미디 영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해고된 상황에서도 좌절 않고 새 푸드트럭을 개시할 것을 결심하는 낙천적이고도 부지런한 주인공을 보면 세상만사 힘들일이 없다. 한 편으로는 힘든 현실에서도, 유쾌한 삼바 리듬 BGM과 함께 후루룩 빠른 전개로 넘기고픈 기대와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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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빈속으로 보지 마라’ 라는 영화 포스터의 문구처럼 영화 속 다양한 요리가 등장한다. ‘스칼렛 요한슨 파스타’라는 명칭으로 레시피와 소개 영상이 수없이 공유될 만큼 맛있게 묘사된 파슬리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바비큐와 치즈, 특제 소스가 아낌없이 들어간 쿠바식 샌드위치, 가니쉬와 곁들여 먹는 스테이크가 포함된 셰프 스페셜 코스 등. 맛과 향이 자동으로 연상되며 배고파지는 메인 요리로 제격이다.

 

마음이 너무 지치고 외로울 땐 배고픔조차 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잊었던 배고픔을 되찾아 줄 수작이다. 메인 요리를 즐기는 방법은 더 간단하다. 몸을 맡기고 마음껏 즐기라. 아메리칸 셰프 특유의 흥겨운 리듬과, 공간적 배경인 쿠바의 뜨거운 태양 색 아래.

 

 

 

디저트 - 카모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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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으로는 잔잔한 호수 앞 카페 같은 디저트. 영화 카모메 식당을 소개한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제목의 카모메는 ‘갈매기’라는 뜻이다.일본 개봉 당시에는 두 곳의 상영관에서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100여개 상여관으로 확장, 75억원의 수입을 올린 비하인드가 있다.

 

평화로운 핀란드에 작은 식당 겸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공 사치에. 그리고 하나둘씩 늘어가는 단골손님들의 에피소드로 영화가 흘러간다. 가게에 첫 손님으로 찾아온,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핀란드 청년 토미. 기약 없는 여행 중 사치에의 배려로 식당 일을 도우며 더 머물게 된 미도리. 토미를 시작으로 식당은 점점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은 사람을 부르고, 이야기는 이야기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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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은 관객으로 하여금 큰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앞 뒤 상황을 종합하고 추리하는 과제도 없다. 그저 천천히 흘러가는 큰 줄기의 강물을 눈으로 따라가듯 덧없이 흘려보내기만 하면 된다. 평화롭게 가게 영업을 이어가는 카모메의 일상. 주인공과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조곤조곤한 대화, 그들의 사연에 덩달아 조용히 귀 기울이고 집중하는 순간순간에 가장 여유롭게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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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은 현대인의 디저트 대명사 ‘커피’와 함께한다. 첫 손님 토미가 늘 주문하는 커피 한 잔. 영화가 시작하고도 꽤 긴 시간 초반부에는 커피 메뉴만 등장해서 다른 메뉴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등장하는 향긋한 시나몬 롤, 주먹밥 오니기리와 식사 메뉴 돈카츠, 연어스테이크를 눈으로 맛보게 되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식당을 나오게 된다.

 

*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의외성을 간직한 경우가 꽤 있다. 가령 이런 ‘푸드 힐링’ 무비를 보고 배가 고파지는 순간도 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세상 만사 모두 귀찮고 싫은 줄 알았지만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다시금 의욕과 욕심이 샘솟는다.

 

눈을 사로잡는 다양한 요리로 한 번, 또 여유롭고 평화로운 스토리로 두 번. 세 편의 푸드 힐링 무비, 다양한 요리로 꾸린 오늘의 차림상을 통해 모두 그간 채우지 못했던 오래된 몸과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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