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50대의 문 앞에 선 이모로부터 아홉수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백 세 인생이라고들 하니,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해 보면 우리는 총 10번의 아홉수 시기를 겪는 것이다. 나는 아홉수 미신을 믿지 않지만, '아홉수' 단어에 부정적 기운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미신으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완전한 수 10에 가기 전, 가장 큰 수인 9가 불완전함을 상징한다는 설이 가장 흔히 언급된다. 나 혼자도 곰곰이 궁리해 보았는데, 앞자리가 바뀌는 변화에 긴장하고 두려워하기에 불안감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19살에게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19살은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에 걱정보다는 설렘을 품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내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긍정적인 시기다.
반면 29살은 어떠한가. 아직 20대 후반에 도착하지 않은 내게도 29살은 왜인지 무겁게 다가온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일까. 앞자리가 바뀐다는 자연의 이치에 굉장한 부담감을 느낀다.
아홉수 조심하라는 말을 흔히 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이유는, 앞자리가 바뀌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나이와 관련된 부담감을 느끼는 게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이유에서, 뮤지컬 <틱틱붐>은 모든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뮤지컬 <틱틱붐>은 뮤지컬 <렌트>의 원작자인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극 중 1990년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곡가로서의 꿈을 키우면서 낮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창작을 매진하던 '유망한 젊은 작곡가'인 존이 조나단 라슨인 것이다.
<틱틱붐>은 워크숍을 통해 1인극 모놀로그로 선보였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묻혔다가, 친구들의 노력으로 재정비된 후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2024년의 뮤지컬 <틱틱붐>은 3인 극에서 5명의 앙상블이 추가 된 8인의 인물이 이끌어간다.
배우는 8명 밖에 없지만, 등장인물은 15명이 족히 넘는다. 마이클이 재직 중인 마케팅 회사의 직원들, 존의 부모님, 레스토랑 속 진상 손님들, 존의 롤모델이자 위대한 뮤지컬 제작자인 스티브까지. 8명의 배우가 연기한 일인다역은 <틱틱붐>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놀라울 정도로, 각 배역들의 성격이 뚜렷했다. 이전 등장인물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몸짓뿐만 아니라 말투와 시선까지 달리한 8명의 배우의 연기력이 놀라웠다.
틱... 틱... 틱....
1990년에 서른을 맞이하는 존에게는 틱.. 틱.. 틱...하는 시한폭탄 같은 시계 소리가 들린다. 서른이 되도록 '유망주' 타이틀에만 멈춰있는 주인공이 느끼는 압박감과 불안감을 표현한 소리다. 서른을 앞뒀지만, 내놓을만한 성과가 하나도 없는 존과 그를 사랑하지만,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친구 수잔. 그리고 음악의 꿈을 포기하고 마케팅 회사에 취직해 현재는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절친 마이클. 세 인물 간의 관계 속에서 존의 고민과 불안은 더욱 돋보인다.
축하해, "해피 버스 데이"
난 도망치고 싶은데
생일이 대수냐고
서러운 서른
너 같으면 괜찮겠니, 나 혼자만 제자리인데,
서른 살 되는 거야, 난 끝났어, 별 수 있나?
- 뮤지컬 <틱틱붐> 30/90
뮤지컬 <틱틱붐> 넘버는 존의 마음을 매우 투명하게 드러낸다.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만한 생각을 솔직하게 내뱉는 존으로부터 우리는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에 새롭게 참여한 황석희 번역가의 '말맛' 덕분에 넘버 중간중간마다 짜릿하고 유쾌하다.
우리는 늘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 어떤 선택이 맞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때로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 낼까 하는 계산적인 모습이, 마치 현실과 타협하는 것 같아 씁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두려워도, 초라해져도, 씁쓸해져도, 우리는 살아간다. 뮤지컬 <틱틱붐>은 어떤 선택을 하던,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선물한다.
특정 세대를 위한 뮤지컬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뮤지컬인 <틱틱붐>은 2025년 2월 2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트리움에서 관객들을 기다린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느낀 행복감을 잃지 말라고 응원을 건네는 뮤지컬 <틱틱붐>을 연출한 이지영 연출의 말을 마지막으로 추운 겨울날의 관극 리뷰를 마무리한다.
시한폭탄처럼 커져만 가는 내 두려움의 공포를 담담히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어느 순간 그 공포는 가짜라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요? 쫄지 말아요. 우리!
- 연출 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