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구는 아주 작은 점이다 [음악]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하늘을, 세상을 좋아한다.
글 입력 2024.11.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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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카페에서 크림 말차를 마시며 노트북 작업을 하는 하루를 좋아한다. 사계절마다 다른 계절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의 예민함을 좋아한다. 새로 알게 된 음악을 질릴 때까지 수천 번 반복 재생해 놓은 플레이리스트를 좋아한다. 부드러운 미역으로 끓인 엄마표 소고기미역국을 좋아한다. 곰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아빠 손을 잡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달콤한 호박 고구마와 홍시를 좋아한다. 겹겹이 껴입고, 머리엔 포근한 비니를 푹 눌러쓰고 다녀야 하는 겨울을 좋아한다. 고요한 침대 위에서 스탠드 조명에만 의지하며 책을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좋아하는 행위에 대해 곱씹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의 나는 일 년 전의 나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다르다. 심지어 낮에 내뱉은 말을 밤이 되면 후회할 때도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한 번 정착하면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좋아함의 농도는 달라질 수 있을지언정,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소할지라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열하는 습관은 나에게 왜인지 모르게 위안을 준다. 현재의 내가 자신을 잘 돌보고 있고, 머금고 있는 것 같아서.

 

운이 좋게도 지난 1년 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다. 여행들은 유럽 도시 간 이동이라 모두 단거리 비행이었다. 그 덕분에 편안함을 위해 통로 좌석만을 고집했던 내게도 창가 좌석이라는 선택지가 생겨났다. 그렇게 좋아하는 목록 한 줄이 추가됐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하늘을, 세상을 좋아한다.

 

 

IMG_0999 (2).jpg

 

 

시간대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는 하늘은 경이롭고 신비하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지고, 고요해진 감정을 안는다. 내려다본 하늘은 올려다본 하늘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비행기 기체가 흔들릴 만큼 난기류가 심한 날에도, 얕은 비가 내리는 날에도, 비행기를 품고 있는 하늘은 아름답다. 뿌연 구름 사이를 가로질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조차도.

 

비행기 창문 속 세상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이 레고 부품처럼 보여서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거대한 건물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보내는 일상에 지치곤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각박함에 당황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게 하늘 위에서 바라보면 무의미해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은 고요하다.

 

하늘 위에서는 자신감이 생긴다. 세상은 이렇게 넓고, 세상엔 이렇게 건물들도 많고, 세상엔 이렇게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못 해낼 게 어디 있겠느냐 하는 자신감. 거대한 세상 속, 나는 많고 많은 생명체 중 하나라는 사실이 위로된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가 미비한 존재라는 사실은 두려움을 몰고 온다.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회의적인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중심을 잃지 않고, 나의 분위기를 빼앗기지 않고, 나의 소신을 붙잡고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스스로가 나약하게 가라앉을 때마다 듣는 노래가 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Matt Maltese의 The Earth is a very small dot. 지난겨울 우연히 듣게 된 이 노래에 자주 기댄다. 한 인터뷰에서  Matt Maltese는 지구를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했다. 그의 생각은 나와 다름없었다.

 

 

I guess it's an age-old wisdom that perspective is everything when worrying about your own life. But it's been something I've come back to time and time again. That the world is a small speck and we're even smaller specks on it. And remembering this can sometimes help me contextualise fears and worries and be much calmer because of it. Side note - at other times, it can be completely terrifying that our size is so physically meaningless when faced against the behemoth that is the universe. But this song was me on a good day.

 

(세상은 작은 점에 불과하고, 우리는 그 위에 있는 더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 이 사실이 때로는 두려움과 걱정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더 차분해질 수 있어요. 다른 때에는 우리가 우주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는 작고 무의미한 존재라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져요.)

 

Matt Maltese - 'Far Out 인터뷰' 중

 

 

Matt Maltese의 "이 사실이 때로는 두려움과 걱정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더 차분해질 수 있어요"라는 생각을 담은 곡이 The Earth is a very small dot이다.

 

 


 

 

세상은 작은 점에 불과하고, 우리는 그 위에 있는 더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니, 실수와 실패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보자고. The Earth is a very small dot을 들으며 다짐한다.

 

 

Sometimes I remember

가끔 기억해요

The Earth's a very small dot

지구는 아주 작은 점입니다.

And if you look from far away enough

그리고 만약 당신이 충분히 멀리서 바라본다면

You can barely make it out

당신은 간신히 해낼 수 있습니다

 

Matt Maltese - The Earth is a very small dot

 

 

[최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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