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행지였던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우리는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숙소에 도착해서야 당장 내일 관광할 만한 것들을 급하게 찾아보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가우디. 안토니오 가우디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로, 스페인 건축학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아 건축했다는 것. 이 정도의 정보만 안고 향한 구엘 공원은. 발걸음의 속도를 줄여 한국어 투어 가이드를 엿듣고 싶어질 만큼 흥미로웠다.
구엘이 가우디와 얼마나 끈끈한 관계이고, 본래 공원이 아닌 주택 단지 설립 프로젝트였으며, 언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었는지 등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나를 사로잡은 건 그저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흙바닥. 불어오는 바람에 흙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으나, 그럼에도 걸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기발한 가우디의 아이디어들이다. 딱딱한 직사각형의 벤치 자리를 뺏은 동그란 구 모양의 조형물, 나무줄기 어쩌면 파인애플을 닮은 기둥, 크고 작은 돌을 편견 없이 쌓아 올린 돌담. 그 위에 본인을 뽐내고 있는 야자수 나무들의 조화는 사랑스럽다.
메인 광장을 감싸고 있는 뱀 벤치는 인체에 맞게 구불구불 설계되어 편안함을 제공한다.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가우디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채롭게 빛나는 모자이크 타일이 눈에 띄는데, 이는 트렌카디스 기법이다. "깨뜨리다"라는 어원을 가진 이 기법은 깨진 타일이나 유리 혹은 도자기 조각을 모자이크 형태로 붙이는 방식으로, 특히 곡면을 덮을 때 효과적이다. 가우디가 최초로 시도한 기법은 여기 이 아름다운 도마뱀을 탄생시켰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말했다. 도마뱀에 눈을 박고 자세히 보면 평면의 깨진 조각들이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매끄러운 곡선의 도마뱀이 틀림없이 나타난다. 어쩌면 가우디는 직선 그리고 평면의 인간의 것을 깨뜨리고 또다시 붙이는 수많은 노력을 통해 곡선, 즉 신에게 닿고자 하는 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완벽한 곡선 그러나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직선의 것들은 감히 신을 넘볼 수 없다는 겸손함을 보여주는 걸지도 모른다. 햇빛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도마뱀은. 마치 신과 자연을 동경하는 가우디를 대변하는 듯하다.
숙소 근처에 있는 카사 바트요는. 두어 블록 멀리서 보아도 가우디의 작품이었다. 이토록 독보적이고 매혹적인 파사드는 본 적이 없다. 화려한 지붕, 햇빛에 빛나는 세라믹 광택과 깨진 유리 파편이 아름답게 도색된 외부 벽 그리고 해골을 연상케 하는 발코니는 어딘가 모르게 오싹하지만 조화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 어색한 조화는 한 전설에 의해 설명된다.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인 산 조르디가 포악한 용을 검으로 찔러 공주와 백성을 구해냈다는 전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카사 바트요는 더 이상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화려한 지붕은 용의 비늘과 특유의 동물적인 곡선을 뽐내며 움직이듯 했고, 처참히 박혀있는 기둥은 용에게 박힌 검이, 해골 그리고 뼈처럼 보였던 기둥과 테라스는 용에게 희생된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라 페드레라, 채석장이라고도 불리는 카사 밀라는 페레 밀라와 로사 세히몬 부부가 의뢰하여 건축된 주택이다. 카사 바트요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우아함을 자랑한다. 모래로 빚어둔 것처럼 부드럽게 일렁이는 상앗빛 물결무늬의 외벽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가까이 가서 만져보고 싶게 만드는 외벽의 본고향은 가라프, 빌라노바에 있는 채석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라 페드레라로 불리는 것일까나. 외부 발코니 난간은 검은 얇은 금속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장미 넝쿨(로사 세히몬이 연상되는 꽃)처럼 보인다. 3면이 모두 거리로 노출된 카사 밀라는 본래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카사 바트요와 달리 기존의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한 건물이다. 인접한 건물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본인의 존재감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카사 바트요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종교가 없는 나는 유럽 곳곳을 다니며 많은 성당을 마주쳤지만, 대부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내부 관람 기꺼이 하고자 한 적 또한 거의 없다. 그러나 사그라다 대성당은 달랐다. 14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사 중인 사그라다 대성당은 다소 심란하게 느껴질 수 있음에도 그 웅장함을 숨길 수 없었다. 내년(2026년)에 완공되면, 12개의 종탑 중 예수를 상징하는 탑이 가장 높게 위치할 예정인데. 이 높이는 172.5m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몬주익 언덕이 173m임을 염두에 둔 수치라고 한다. 역시. 신이 만든 것을 인간이 넘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가우디의 의도가 돋보인다.
북동쪽의 '탄생의 파사드'를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가우디가 살아있을 적에 만들어진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조각들은 놀랍도록 정교하다. 이렇게까지 디테일이 많이 담겨있는 성당, 아니 건물은 처음이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조각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성당 자체가 성경인 듯 느껴졌다. 곡선 위주의 화려하고 웅장한 조각들은 따듯한 느낌을 준다.
그에 반해 남서쪽의 '수난의 파사드'는, 언뜻 보아도 '탄생의 파사드'와는 전혀 다르다. 가우디가 사망하고 그가 남긴 도면과 지침에 따라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가 설계하고 건설했기 때문이려나. 다만, 애초에 아주 다른 주제, 수난과 탄생을 전달하고자 했기에. 다른 스타일의 설계는 오히려 그 차이를 극대화해 준다. 아주 추상적이고 정형화된 형상, 직선이 자주 사용된 파사드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단단하고 벌거벗었으며 마치 뼈로 만든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 가우디를 듣고 보면, 정말 뼈처럼 느껴지는 기둥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부는 더욱 놀랍다. 해가 지는 방향을 고려하여 색상과 위치를 설계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말할 것도 없으며. 기존의 성당과는 다소 다르게 느껴지는 새하얀 내부 또한 태양 빛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겠다. 하늘을 올려 천장을 올려다보면, 작고 얇은 삼각형의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온다. 마치 잎사귀에 햇빛이 가려져 보일 듯 말 듯 하듯 말이다.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는 바닥으로 갈수록 뿌리내리듯 두꺼워지는 기둥들은 나무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숲을 걷는 듯 느껴지는 섬세함이 잔뜩 느껴진다.
경이롭다. 바르셀로나에 잠시 머물며 가우디의 건축물을 아주 잠시일지라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멋진 말이라 맞는 말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는 자연을 언제나 큰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예술을 벗어나서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예술과 다소 먼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포르투갈 호카곶의 일몰을 보며, 부다페스트의 노을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자연을 닮아있다고-. 명확히 말하자면 선후관계가 뒤집혔다. 우리는 자연에게서 아름다움을 처음 배웠으니 말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왔고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이 간단한 그러나 자명한 사실을 되새기다 보면, 대학은 무슨 숲에나 들어가고 싶어진다. 다시 자연과 닮아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