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블루노트>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홍대 소극장 산울림으로 향했다.
<쇼팽, 블루노트>는 여러 유명 작곡가의 생애를 다룬 음악극 시리즈인 '산울림 편지 콘서트' 중 하나이다. 클래식 라이브 연주에 연극을 융합한 연출은 관객들이 더욱 더 쉽고 풍부하게 음악가의 생애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왔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가가 음악 속에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에 동화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프레데리크 쇼팽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꼽히며,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히 사랑받는 예술가이다. 필자에게 쇼팽은 함께 존경받는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음악가들보다 가깝게 느껴지며,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는 아마 쇼팽의 조국이 폴란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쇼팽은 조국 폴란드에서 가장 존경 받는 위인이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공항 이름이 '바르샤바 쇼팽 공항'인 것에서부터 폴란드에서 쇼팽의 위치를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다.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에서는 매년 5월~9월 일요일마다 쇼팽 콘서트가 개최되며, 그를 기념하기 위한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5년마다 바르샤바에 열린다. 또한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엔 쇼팽의 심장이 안치되어 있다.
폴란드인들에게 쇼팽은 음악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폴란드인들의 마음속에 쇼팽이 늘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쇼팽이 늘 지니고 있던, 조국 폴란드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 때문일 것이다. 이번 <쇼팽, 블루노트>를 통해, 한국 관객들 또한 쇼팽의 애국심과 좌절 그리고 비통함을 진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쇼팽, 블루노트>는 그의 연인이었던 작가 '조르주 상드'의 회상으로 진행된다. 조르주 상드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유분방한 생활로 주목을 받던 여성이다. 피아노와 쇼팽을 중심으로 한 공연이 아닌, 조르주 상드와 쇼팽을 중심으로 진행된 공연 덕분에 인간 '쇼팽'에 대해 탐구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클래식 라이브 연주와 연극이 결합한 연출이 빛을 발한 순간은 단연 Etude in c minor Op. 10 No.12 (Revolution)이었다. 해당 곡은 러시아군이 폴란드 혁명 운동을 탄압하고 무력으로 바르샤바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작곡한 피아노곡이다. 쇼팽을 연기한 류영빈 배우의 대사에 이어 등장한 피오트르 쿠프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그의 분노와 걱정을 관객의 온몸에 와닿게 했다. 피아노곡의 음 하나하나를 음미하도록 자연스레 이끌었다.
홍대 소극장 산울림이 주는 가까운 시야 덕분에 피아니스트의 표정을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대형 공연장에서만 클래식 공연을 관람한 나에게는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였다. 피아니스트의 얼굴 떨림과 눈빛은 쇼팽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쇼팽의 감정에 더욱 쉽게 동화되도록 도와줬다.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잘 알려진 Nocturnes, Op.9 No,2 in E flat Major는 겨울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닐까 싶다. 공연의 마지막 곡이었던 녹턴을 들으며, 자신의 유언대로 조국인 폴란드로 돌아가, 폴란드에서 언제 어디서나 울려 퍼지는 피아노 곡 연주를 듣고 있을 것 같은 쇼팽의 모습이 떠올랐다.
<쇼팽, 블루노트>를 통해 경험한 쇼팽의 일생은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분노, 아픈 몸, 그리고 39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짧은 삶 속에서도 피아노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연인 조르주 상드와의 행복했던 시절 등을 담은 공연 덕분에 그가 남긴 아름다운 선율과 정서적 울림으로 가득 찬 곡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년 겨울밤에도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앞으로도 클래식을 결합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많이 올라오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