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의 초입에서 새봄을 위한 편지
너도 알다시피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매년 생일마다 그해의 봄, 여름, 가을을 되돌아보잖아. 이상하게 올해의 생일에는 너의 모든 생애를 돌아보게 되더라.
푸른 새싹이 피어나는 봄 같던 너의 유년 시절, 울창한 나무가 쨍쨍한 햇빛을 받던 여름 같은 너의 청소년 시절, 이파리가 노랗고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같던 너의 대학생 시절.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겨울에 서 있는 나는 이제 또 다른 새싹을 피워낼 새봄을 맞이하려고 해. 나는 또 항해해야 하니까. 내키지 않아도 내 편지를 꼭 기억해 줘.
봄, 여름, 가을의 넌 늘 너의 바깥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쏟았던 거, 알지?
아주 어릴 적 매일 손에 쥐고 다니던 강아지 인형 기억하니? 어딜 가도 그 애착 인형을 가지고 다녔잖아. 그 애착 인형을 버스에 두고 내렸던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해. 아마 처음으로 느낀 절망이었을 거야.
그리고 너는 이야기를 좋아했어. 아주 어린 시절, 유치원을 다니기도 전부터 매일 밤 자기 전에 엄마에게 책을 스무 권씩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잖아. (생일을 맞았으니, 엄마께 꼭 감사하다고 전하렴) 동화책부터 소설까지 가리는 것 없이 읽으면서 네 상상 안에서 사는 것을 좋아했지.
조금 더 자라서는 예쁘고 화려한 사람들이 좋아서 마치 누가 끌어당긴 듯이 그 세상에서 살았잖아. 매일 TV 앞에서 음악방송을 챙겨보던 네가 벌써 2n 살이라니. 정말...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구나.
콘텐츠 중독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대상은 바뀌었지만 넌 늘 뭔가를 좋아하고 있었어.
나는 딱 한 가지가 후회돼.
네가 그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의 절반, 아니 반의반만큼이라도 너 자신을 좋아했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다른 것을 실컷 좋아하는 네가 왜 너만큼은 그렇게 좋아하지 못했을까 궁금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강렬할수록 싫어하는 마음도 강렬해서 그런 걸까?
네가 봄, 여름, 가을을 지나며 몇십 번의 생일을 맞으면서 단 한 번이라도 널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널 아끼고 소중하게 대했다면 어땠을까.
그냥, 그렇다고……
알잖아. 난 너에게 늘 좋은 말만 할 수 없다는 걸.
넌 후회 속에 갇혀 있을 사람이 아닌 걸 난 알아. 더 이상 과거에 매여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잖아. 자유롭게 산다는 건 네 자유 의지로 선택한 정답을 네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고 해내야 하는 것임을 이제는 알겠지.
2024년에도 너는 여전히 겁쟁이였지만 그 사이사이에 내디뎠던 발걸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지금 네가 시작한 것들은 전부 네 의지가 듬뿍 담긴 발자국이잖아.
그 모든 발자국은 널 있는 그대로 인정한 순간이야. 쓰러지는 너를 너 자신의 힘으로 일으켜 세우려고 그 발자국을 찍기 위해 나름 노력했잖아. 이제 네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돼.
이 편지는 널 위한 출항 선언문 같은 거야. 오직 너만의 의지로 삶을 탐험해 나갈 너를 위해 내가 적은. 네가 좋아하는 과거는 나에게 담아두고 넌 너의 길을 찾아 떠나.
네가 봄, 여름, 가을에 마음 썼던 모든 것들은 이미 네 마음속에 있다는 걸 알잖니. 너는 언제든지 그걸 꺼내기만 하면 되는걸.
겨울을 버텨야 다시 봄이 와.
네가 늘 행복하고, 건강하고,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네가 앞으로 걸어 나갈 모든 길에 내가 서 있을게.
부디 너와 네 세상이 끈질기게 버티며 새봄을 맞이하기를 바라.
- 2024년의 생일에서,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