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사랑과 가장 비슷한 모양을 한 너에게

4월에 태어난 너에게 보내는 편지
글 입력 2022.05.0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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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만났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지.

 

너와 가까이 지내지 않았던 친구들은 너를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어. 그래서 어쩌다가 네가 없는 자리에서 네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네가 괜찮은 애인 건 알겠는데 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며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지. ‘시연이는 어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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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 중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너와 가까이에 있으면 기분 좋은 에너지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그리고 너는 사랑을 한껏 받는 법도 알고, 주는 법도 알지. 너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사람이든 너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하긴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너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해? 사실 난 기억이 잘 안 나. 내 기억으론 네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거든. 우린 같은 반이었지만 자리도 멀었고 이름순으로 배정된 번호도 거의 맨 앞과 맨 뒤 일정도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거든. 너에 대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네가 야자 시간에 메모지에 귀여운 그림과 함께 의식의 흐름으로 적은 편지를 나에게 건네주었을 때야.

 

누군가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물론, 다가오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법도 잘 모르고 뚝딱거리던 나에게 내가 부담스럽지 않을 속도로 네가 다가왔어. 너는 나와 온도가 비슷한 사람 같았어.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특별한 계기도 없이(물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어) 나에게 다가오는 네가 나는 좋았어.

 

그렇게 우리는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친해졌고 어느새 흔히 말하는 단짝이 되었어. 글쎄 단짝 친구가 뭘까? 학교에서 짝을 지어서 해야 하는 활동이 있을 때 너무 당연하게 함께하는 그런 친구 말이야.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급식실로 달려갈 때도, 체육 시간에 자유시간을 받아서 벤치에 앉아있을 때도, 수학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도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세트처럼 늘 함께했지.

 

너와 있을 때 나는 가장 편안했고 즐거웠어. 나는 겁이 많아서 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누군가와의 벽을 허물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아이였는데, 그런 내가 너에게는 나를 완전히 풍덩 던졌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시절이 있다고 하잖아. 너와 함께 한 시간들이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아.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지 않아도 함께 있으면 그냥 즐거운, 웃음이 흘러 넘치는 그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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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2학년이 되었어. 반 배정 결과가 나오던 날이 기억나니? 기숙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반 배정 결과를 확인했고, 망했다는 걸 확인했지. 우리가 같은 반이 되기를 꼭 피하고 싶었던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된 거야. 그래도 아주 다행인 건 너와 내가 같은 반이 되었다는 거였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우리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게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우리 둘만 존재하던 우리가 만든 울타리 안쪽에 하나 둘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관계는 건강하게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걸 점점 깨닫기 시작했지. 우리 둘 다 각자의 울타리 안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도 늘 그랬듯이 우선순위 첫번째 자리는 나에게 남겨주길, 늘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기를 바랐던 것 같아.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해서 종종 서로를 외롭게 만들었어. 누군가를 외롭게 만드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인데 말이야.

 

그 외로움과 서운함은 점점 쌓여서 한때 가장 가깝게 느껴졌던, 모든 걸 터놓을 수 있었던 네가 점점 멀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나는 내가 너의 우선순위 맨 위에서 한 칸 한 칸 아래로 내려오는 게 느껴질 때마다 너무 비참했어.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고,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를 반복했지만 결국엔 서서히 멀어졌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사이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거야.

 

우린 이미 예전과 같은 사이가 아니게 되었고, 그렇게 된 지 너무 오래되었는데, 이제 내가 너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나더니 아주 최하위가 되어버렸다고 느낀 어느 날, 내 안에서 어떤 이성의 끈 같은 게 탁 풀려버린 날 나는 너에게 이 관계를 끝내자고 말했어.

 

좀 웃기지. 우리가 연인 사이였던 것도 아닌데 내가 영원히 너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정말 이기적이지. 근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않고서는 정말 못 견딜 것 같았거든. 한때 나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도 있을 만큼 좋아하고 소중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아주 미적지근하고 이도 저도 아닌 사이로 남을 바엔 아예 영영 남이 되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그때의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남들이 주는 사랑만을 자양분으로 삼는 사람이었어. 관계에서 거리 조절하는 법을 몰랐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만큼 그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으면 그게 그대로 내 자존감으로 연결되는 조금 피곤한 아이였어.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만든 게 아니라 둘이 같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훨씬 더 많이 상처받은 것처럼 굴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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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우리가 영영 남이 된 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 서로 SNS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겹치는 친구도 없어서 정말 그 어떤 소식도 알 수 없는 진짜 남이 되어버렸지.

 

나는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미 나를 스쳐 지나간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곤 했는데 네가 종종 떠올랐어. 이미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아주 최근까지도 너와의 관계에서 나의 많은 모습들을, 마음 아주 깊은 곳에 숨어있던 결핍을 발견하기도 했어. 그리고 너는 생각보다 나에게 더 큰 존재였음을 다시금 느꼈어. 그리고 늦었지만 말해주고 싶었어.

 

푸르던 그 시절을 나와 함께해 줘서 고마워.

 

안부도 못 묻고 내 할 말만 와르르 쏟아내버렸네. 잘 지내고 있니? 소식을 들은 적은 없지만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 너는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기꺼이 다 이루고, 좋아하는 것들을 온 마음으로 와락 껴안을 줄 알고, 가까이만 가도 기분 좋은 싱그러운 에너지가 전해지는 것 같은 사람이잖아.

 

어디에 있든 늘 행운이 가득하길 바랄게, 잘 지내!

 

2022년 4월

민지가

 

  

[정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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