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붉은색 산수화 [전시]

이세현 작가 개인전 《빛나고 흐르고 영원한 것》
글 입력 2024.12.02 15: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붉은색 하면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나는 피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붉음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새빨간 피가 연상된다. 생각만 해도 입에서 피 맛이 돈다. 그렇다면 붉은 산은 어떨까.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진다. 푸른 산을 붉게 덮는다고 상상하자마자 야생 동물들의 비명 소리와 연기 냄새로 가득한 것 같다.

 

붉은색은 어쩌면 내가 은연중에 두려워하는 색상일 수 있다. 하지만 한 화가를 통해 붉은색에 대한 나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붉은색 산수화를 그리는 작가 이세현.

 

그의 그림은 자유롭게 붓으로 활보한 것 같으면서도 정확하게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이미지로도 의미적으로도 무언가를 대비하는 함의가 있다. 평온하지만 강렬하고 웅장하다. 붉은색이 원래 이렇게 깊고 고급스러웠나 생각하게 된다.

 

그는 붉은색으로 그릴 때마다 마음이 사실 가볍지만은 않다고 한다. 색깔 자체가 가진 에너지가 커서일 수도 있지만 그가 그림에 담아내는 깊이로 인해 무거울 수 있을 것 같다. 가끔은 푸른색으로 그리면서 환기를 시킨다는 그가 이해된다. 그릴 때에 고통스럽겠지만 그가 만든 결과물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사비나미술관에서 하는 그의 개인전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갈 수 없어 인터뷰 영상과 작품 사진으로 만족하는 중이다. 붉은 산수화 200점을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너무 궁금하다.

 

미술관 영상을 볼 때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 그림을 일렬로 전시한 곳이 있다. 얼굴 역시 붉게 그려져 있어서 언뜻 보면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데 살면서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고 내 삶에서 기도가 되어주었나를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그렸다고 한다. 작가로서 예술세계에서 족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감정들을 되살려보며 감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보는 우리들도 촛불처럼 무엇을 빛내기 위해 자신을 태우고 있는지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봤으면 한다는 그의 중심이 인상적이다.

 

 

얼굴.jpg

 

 

또 놀라운 점은 그림 속 사람들이 눈을 감거나 뜨고 있는데 이것 역시 의미가 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표현한 것으로 살아있으나 눈을 감고 있고 죽었으나 영원히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대비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눈을 조심스레 감아본다. 내 삶에서의 수많은 인연과 관계를 떠올려본다.

 

전시 외에도 그는 책 표지를 만들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독일어판 표지는 그의 작품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기 이전의 일이었는데 매우 놀라웠다며 그가 겸손하게 기뻐한다. 그가 한강 작가의 인터뷰를 언급한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서 보고 또 본다. 한강 작가가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에 대해 인터뷰할 때 ‘아주 영롱하고 아름답고 변하지 않는 순수한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말했을 때, 큰 공감이 되었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한강 작가는 결국 아픔에 대한 얘기를 한 것이라며 얼마나 많이 아팠으면 영롱함에 대해 말할 수 있냐며, 세상을 날카롭게 보고 비판하는 그 의지를 잃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 힘을 내기 위해서 내면의 순수함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그가, 나는 영롱해 보였다. 힘들 때 밤하늘을 보며 위안을 삼듯이 각자의 치열한 버팀 속에서도 저마다의 순수함을 지켜낼 때 강한 힘이 나오고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기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 세상 곳곳에 참 멋진 사람이 많다. 한강 작가도 이세현 작가도. 다들 골방에서 고군분투하며 각자의 영롱함을 창조해 내겠지. 매일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겠지. 자신 안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무너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겠지. 직접적으로 그들을 알지는 못해도 그들의 작품을 보고 들을 수 있음에 먼 인연에 감사하다. 눈을 뜨고 감으며 감사함을 전해본다.

 

전시의 주제《빛나고 흐르고 영원한 것》은 결국 순수한 본질을 말하는 것 아닐까.

 

붉은 산수화가 더 이상 붉게만 보이지 않는다.

 

 

 

김윤 컬쳐리스트 명함.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5.01.1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