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례희망 [음악]

가수 이찬혁
글 입력 2024.12.2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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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정사진을 떠올리곤 한다. 영정사진 눈동자에 까만 구멍을 뚫어 그 구멍 사이로 보는 상상. 절을 해야 할지 기도만 하면 될지 고민하는 사람도 보이고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두 눈이 메마른 사람도 보인다.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죽음을 온 마음으로 축하하고 축복하고 찾아온 사람들이 화합하길 바라곤 한다.

 

“아는 얼굴이 다 모였네 여기에. 한 공간에 다 있는 게 신기해. 모르는 사람이 계속 우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나 미안해.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가수 이찬혁의 < 장례희망 > 도입부가 좋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나의 장례희망을 대신 써준 것 같다. 이 곡은 2022년 그의 첫 솔로 정규앨범 < ERROR >의 마지막 수록곡으로 죽음을 생각했을 때 자신이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노래했던 사랑과 자유가 정말 최고의 가치가 맞을지를 생각하며 지금까지 만들어온 자신의 음악과 생각들에 오류들이 있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앨범 제목을 ERROR로 지었다고 한다. 지난달 제4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도 불러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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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죽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살면서 사랑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도 안 죽는 사람은 없다. 가요의 80%가 사랑 이야기지만 죽음 이야기가 더 많이 나눠지길 바란다.”

 

일상에서 우리는 죽음을 종종 언급한다. 힘들어 죽겠다, 죽을힘을 다해 일한다, 죽을 만큼 보고 싶다 등등.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는 되도록 이야기하지 않는다. 잘못 꺼냈다간 주변 분위기를 사늘하게 만들 뿐이다. 죽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중요하다. 단, 죽음을 슬프게만 바라보지 않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 글을 죽음을 권장하는 의미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음을 미화해서 죽기를 자처하거나 고통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을 생명을 포기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확대하여 위험한 생각을 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죽음을 중요하게 생각함은 곧 생명(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과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든 엔딩이 있음을 알고 해야 헛된 것을 붙잡으려 하는 헛수고를 줄일 수 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생명 또한 귀하게 여길 수 있다. 죽음 자체는 무겁고 슬플 수 있지만 죽음을 생각함은 이와 반대된다. 오히려 삶이 더 심플해지고 기뻐질 수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죽음을 경험해 보면 이것이 쉬쉬할 주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사랑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더 커진다. 풀어 말하면 죽음을 호흡의 끝자락으로 보느냐 생명의 시작점 또는 연장선으로 보느냐, 즉 사후세계를 믿느냐 아니냐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가수 이찬혁과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같은 중심점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어 반갑다. 같은 믿음과 생각을 가지고 비슷한 상상을 하는 사람이 지구 어딘가에 존재함이 기쁘다. 든든하다.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땅 위에 단어들로는 표현 못 해.”

 

이리와 표범과 사자와 친구를 먹으며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음을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 못함이 아쉽다는 그. 이보다 더 훌륭하게 죽음 이후의 삶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은유 속에 그의 중심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듣도록 그는 과감하게 노래하고 있다. < 장례희망 >은 단순히 철학적인 곡이 아니다. 생명을 노래하는 암호와 같다. 크리스마스에 굳이 이 글을 남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나의 장례를 플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좋아하는 음악들을 틀고, 영정사진 포토존을 만들고, 방문에 대한 감사로 답례품을 주고 싶다. 결혼식이나 돌잔치는 가능하면 생략하고 싶어도 장례식만큼은 큰 파티를 열고 싶다. 나이, 성별, 배경에 상관없이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다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하면서 미소 지어야지.

 


 

김윤 컬쳐리스트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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