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이찬혁 메인 비비드 2.jpg

 

 

“진실되고 이상적인 사랑의 가치를 찾았던 자에게 비비드라라러브 같은 이상적인 사랑은 없다고 전하는 곡으로…” 뭐지. 이 노래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비비드라라러브. 진실되고 이상적인 사랑이 실재하는가. 사랑에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질문하는 요즈음, 다들 어떻게 이성을 만나고 관계를 발전시키는지 궁금하다. 시간이 갈수록 만남이 어렵고 지친다. 간지러운 사이가 되려다가도 급발진으로, 자존심으로, 각종 핑계인지 사정으로 끝나기 일쑤고 누군가를 알아가려는 시도조차 귀찮고 힘 빠진다. 비비드한 사랑 이 세상에 있긴 할까. 태어나긴 했을까. 내가 탁하게 만드나.

 

애매한 그의 행동과 말에 분노 아닌 분노를 했던 얼마 전, 비비드라라러브 첫 소절을 듣고 끝까지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에 분노했었나 친구여 처음부터 그럴 만한 게 없었지’ 그래, 다 나의 허상과 착각이었지. ‘유감스럽게도 도둑 든 상자를 찾는 꼴이었다네’ 이미 도둑맞은 상자를 아무리 찾아봤자 소용없듯 나의 분노도 서운함도 아무짝에도 쓸모없지. 잠시였지만 진심이었던 ‘진실된 사랑을 했던 나의 친구여’ 마음을 다했다는 것 자체로 너 자신에게 이미 봄날임을, 비비드라라러브는 애초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날에 ‘왜 이리 좋았던 날에 슬퍼했었나’. ‘빛나는 눈으로 넌 말했지 기필코 있다 있다 했던 비비드라라러브’는 ‘어디에 있나’.

 

‘무엇에 좌절했었나’ 어색해진 사이 때문일까. 실재하지도 않는 허상과 욕심 때문이었을까. ‘세상이 변할 거라고 했었지’ 상대의 마음이 달라질 거라 기대했었지. ‘유감스럽게도 친구여 상한 포도알이 다시 신선해지나’ 식은 감정이, 끊어진 관계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겠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여’ 비비드라라러브 찾지 말고 정신 차려라. 지나고 보면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 들리는 대로 가사를 끄적여 본다.

 

 

이찬혁 인형.jpg

 

 

인형과 한 몸으로 뒹굴뒹굴하는 이찬혁. 뮤직비디오 속 그의 모습은 그림자와 뒤엉킨 듯 보였다. 사랑을 위한 몸부림인지 그 반대의 뿌리침인지. 식탁보 밑으로 기어들어가 여자의 치마폭에서 나오듯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이상 빛나는 세상은 볼 수 없다는 뜻일까. 실패한 투우사처럼 황소에 맞아 쓰러지고 독수리에게 쫓겨 도망 다니듯 비비드라라러브는 어디에도 없다. 파티장에 사람은 많지만 정작 사람이 없는 공허함.

 

앨범 속 ‘멸종위기사랑’도 들었다. ‘한 사람당 단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정말 이런 날이 있었을까.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신스팝과 코러스. 시스터액트 영화의 성가대가 생각났다. 백댄서의 블루 아이섀도는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몽환적인 분위기. 꿈같은 세상.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 사랑. 비비드라라러브는 진작에 어제 멸종된 것 같다.

 

 

멸종위기.png

 

 

이윽고 산소호흡기를 쓰고 어렵게 숨을 쉬는 듯한 ‘빛나는 세상’이 들렸다. ‘숨을 조이는 내 결핍이 나를 빛나게 해’ 노래를 듣는 내내 숨이 조여왔지만 이상하게 나른하고 좋다. 같은 맥락의 ‘밤 없는 하루는 아침의 의미마저 앗을 거란 걸’ 최근 내가 느낀 결핍이든 개개인이 가진 내외적 결핍이든 그것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겠지. ‘좌절이 반복되어 너는 내일이 두려운가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지 않네’ 나는 내일이 두려울 때가 많다. 문을 걸어 잠그고 새로운 모든 만남을 거부하고 싶기도 하다. 금방 또 가겠지. 또 찔러보고 말겠지. 하지만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그런 걸 바라는 우린 빛이 날 거야’처럼 아침을 맞이해보려 한다.

 

이찬혁의 ‘EROS’ 앨범은 ‘ERROR’ 만큼이나 좋았다. 그의 음악이 좋은 이유는 귀도 눈도 즐겁지만 뇌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스쳐가는 수많은 영상과 노래들로 인해 머리가 어두워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찬혁의 예술세계를 접하노라면 항상 해마에 무언가 묵직하게 남아 나를 건드린다. ‘그때 그 가사 뭐였더라. 아, 이런 의미였지. 생각나네.’ 노래가 끝났어도 선명하게 남는 느낌. 비비드라라러브하다. 그의 음악은 그 자체로 빛나서 멸종될 수 없을 것 같다.

 

 

eros.png

 

 

다음 앨범이 천천히 나오면 좋겠다. 그의 작품들을 곱씹어 볼 수 있게. 그리도 다음 앨범 때는 둘이서 들을 수 있게. 천천히 와주면 좋겠다.

 

 

 

김윤 컬쳐리스트 명함.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