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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최은영 작가가 데뷔 13년 만에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로 돌아왔다. ‘13년’, ‘첫 산문집’이라는 묵직한 키워드만큼 강렬했던 건 흰 표지였다. 동네 서점 사장님에게 이 책을 건네받은 순간, 나는 갓난아이를 처음 안아 본 사람처럼 어쩔 줄 몰랐다. 너무 흰 탓이었다. 손끝만 스쳐도 금방 구겨질 것 같은, 새하얀 표지였다.

 

좋은 책의 기본 조건은 비가역성이다. “읽기 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없”게 하는 것이다((『백지 앞에서』, 24쪽). 그런데 이 책은 가방에 들어가는 순간, 절대 원래 상태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아이를 품듯 책을 조심스레 끌어안고 집으로 왔다.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남색 북커버를 꺼내 책을 속싸개처럼 감쌌다. 그 조심스러운 동작은 2019년의 공기를 떠올리게 했다. 최은영의 문장을 처음 만난, 바로 그 해의 냄새였다.


 

 

분홍 표지의 시작: 산문 읽을 용기


 

분홍색 배경 위,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긴 머리의 소녀가 서 있는 표지. 『쇼코의 미소』가 신간코너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딱 5분만 읽고 문제집 코너로 넘어가야지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돈이 부족해 문제집 한 권을 사려면 그 자리에서 15분은 족히 고민했던 시기였으니, 소설을 턱턱 사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니 읽은 흔적이 남지 않도록 살짝 읽고 자리를 뜨는 게 대안이라면 대안이었다. 돈을 내지 않고 책을 읽는 건 서점 직원에게도, 작가에게도 미안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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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쇼코의 미소』를 펼친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결국 그날은 국어 문제집 대신 소설책 한 권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쇼코와 소유가 머물던 한국의 가정집, 한지와 영주가 지내던 수도원,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 서술자의 문장이 건네는 아픔을 오래 기억했다.


그 후로 나는 『내게 무해한 사람』(2019), 『밝은 밤』(2021), 『애쓰지 않아도』(202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2023)를 차례로 읽었다. 그의 글을 읽던 순간만큼은 또렷하게 각인됐으니, 내 삶에 선명한 순간이 최소 다섯 번은 있었던 셈이다.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소설과 인터뷰 곳곳에 흩어진 이야기들을 모아 그를 짐작해 보기도 했다. 짐작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백지 앞에서』에 담겨 있으리라 생각하니 반갑다가도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어떤 작가는 소설보다 산문이 더 좋고, 어떤 작가는 산문보다 소설이 더 좋다. 산문이 좋으면 그 작가의 소설을 더 깊이 좋아하게 되고, 산문이 마음에 닿지 않으면 소설에 대한 인식까지 삐걱거리며 비틀어진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을 찾아 읽는 일은 꽤 큰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백지 앞에서』는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의 인물이 보여주는 솔직함, 대화에 깃든 깊이가 온전히 작가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버려진 일기장: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


 

산문집은 「버려진 일기장에게」로 시작한다. 에세이 작업을 하며 매일 일기를 썼던 작가는. 일기장에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적는 대신 정제해 쓰도록 애썼다고 고백한다. “‘안 쓰면 잊을 수 있잖아. 미래의 너를 속일 수 있어. 안 쓰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고등학생 때 엄마에게 일기장을 들켜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봐.”라는 말을 들은 후, 그는 늘 일기장을 숨겼지만 버리지는 못했다. “의식적으로는 일기장에 담긴 생각과 감정이 혐오스럽고 미우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그 마음이 나라는 걸 알아서, 그런 나를 잃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는 이 글을 시작으로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단편소설 「몫」을 읽으며 매우 궁금했던 그의 교지 생활은 두 번째 산문 「백지 앞에서」에서 만날 수 있다. “이십대 초반의 작은 결정이 인생의 큰 방향을 좌우하는 경우가 있”는데, 작가에게 그 결정은 대학 여성주의 교지편집부에 들어간 일이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세상이 달라지는 경험, 여성주의 관점을 갖게 되며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 일,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행복하거나 편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 글에 대한 진심과 질투, 우정과 부딪힘은 모두 단편소설 「몫」에 잘 담겨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몫」, 106쪽)

 

 

나에게 최은영은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작가가 이런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솔직함, 그 솔직함을 언어로 옮기기까지의 시간을 존경했다. 이 태도는 교지편집부 이후로도 이어진다. 작가는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면 소설 쓰는 일로부터 영영 멀어지리라는 직감이 들”어 대학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창작을 원했지만 “창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거나 “나처럼 평범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다며 외면하다가, 자신을 “달콤한 미결정의 상태”에 두고 있음을 깨닫고 20대 후반부터 습작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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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소설을 쓸 때 가장 어려워했던 부분, 「쇼코의 미소」를 공모전에 내면서 겪은 일화, 1년 동안 글을 못 쓰다가 어떤 대화를 계기로 장편소설 『밝은 밤』을 쓰게 된 이야기, 원고를 완성했을 때의 감각도 이 책에 담겨 있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이야기(「긴 겨울」)이나, 외모 강박 이야기(「못생겼다는 느낌」)도 마찬가지다. 그의 산문은 ‘작가 최은영’뿐만 아니라 ‘사람 최은영’의 모습을 조용히, 또 깊게 비춘다.



 

최은영의 글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무엇보다 나는 산문 「당신이 더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기분」에서 그의 작품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했다. 작가는 자신이 “오랜 시간 사람의 애정과 따뜻함을 갈구”해왔으며 버려지는 일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고백한다. 근본적인 욕망과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소설을 쓰면서 종종 ’마음이 아프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직접적인 감정 표현이 세련된 글쓰기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이고, 그 작가의 글에서 본인이 가장 매료되는 지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출했던 내 답안이 떠올랐다.


 

나는 최은영의 인물이 ‘질투할 줄 아는’ 사람이라 좋다. 질투는 까다로운 감정이다. 그 존재를 인식하거나 정면으로 마주하기도 어려운데, 그 사실을 타인에게 고백할 수 있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그래서 우리는 질투에 서툴다. 내가 저 사람을 왜 질투하는지 질문하는 대신 회피하는 데에 급급하니까.

 

반면 최은영의 인물은 질투에 능숙하다. 자신이 왜 질투하는지 명확히 알고, 이를 독자에게 담담하게 진술한다. 그 진술에서 우리는 인물이 견뎠을 고된 새벽을 읽는다. ‘나는 왜 저 사람보다 못하지’, ‘나도 잘하고 싶은데, 저 사람은 내 고민을 알기나 할까?’, ‘저 사람처럼 잘하고 싶어, 조금씩 따라해 볼까? 그렇게 따라 해서 저 사람처럼 되면, 나에겐 무엇이 남지?’ 같은, 지금의 인물이 되기까지 건너야 했던 수많은 질문을.

 

최은영의 인물은 자신이 질투하는 상대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꿋꿋하게 버틴다. 흔들리지 않고, 눈에 띄지 않더라도 꾸준히 한다.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몫」)는 문장에서 드러나듯, 그 질투는 대개 글쓰기를 향한다. 그 서술에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단정한 태도를 읽는다.

 

누군가의 입을 빌려서든 여성 이슈를 꼭 언급하고야 마는 작가의 대담함 또한 사랑한다. 나는 최은영의 소설이 안온하거나 온건하거나 무해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의 소설은 뾰족해서 아프다. 작가는 본인의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늘 고심한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말은 세상에 분명 존재하는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미지, ‘안온’하고 ‘무해’한 이야기만을 쓰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다루는 소재는 사회적으로 날카롭고, 인물끼리 주고받는 감정은 아프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편소설 「몫」(2018)이다. 「몫」은 1990년대 중후반 대학 교지 편집부에서 활동한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은 기지촌 여성 살인사건 같은 당대 사회 문제를 토대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글을 쓰고, 질투하고, 응원하고, 오해하고, 결국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최은영이 그려내는 여자들은 치열하고 대담하고 불완전하며 내 주변의 여자들 또한 그렇다. 내가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게 될지도 모르는, 혹은 겪고 싶어지는 이야기들을 최은영만큼 설득력 있게 쓰는 작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최은영의 글이 아팠다. 인물들이 버텨낸 새벽이, 그들이 나아가기 위해 주고받아야 했던 대화가, 겪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결국 겪어버린 사건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견딘 시간이. 그의 문제의식과 여성주의적 시각은 닮고 싶을 만큼 날카로웠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이야기가 종종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더 정확히는, 내가 배제되지 않는 이야기, 그래서 내가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


나는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 내가 학보사에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경험을 했듯이 그 또한 여성주의 교지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 덕분에 한 번도 소속감을 느껴본 적 없는 학교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붙였다. 학생회관 교지 편집실을 지나갈 때마다 ‘그도 여기서 글을 썼을까’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새로 나온 산문집을 리뷰하겠다며 시작한 글이 어느새 고백이 되어 있었다. 이런 독자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백지 앞에서』는 최은영의 작품을 사랑해 온 독자에게는 작품과 삶의 결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책이고,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지 자연스레 납득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최은영의 글 앞에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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