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셸TV 인터뷰 영상과 이내 작가 본인의 인스타 글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사진 출처: @inae_moment)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었을 뿐인데 사람이 귀티가 흐른다. 표정, 손짓, 그림 그녀의 모든 것에서 고급미가 차고 흐른다. 넉넉하게 자란 배경이 있을까. 넉넉하진 못해도 단단한 내면이 있어서일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내 작가의 기억-시선-경배 시리즈를 바라본다.
금색 동그라미의 모음은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걸까. 가장 화려한 동시에 가장 허영된 색이기도 한 금색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해 말하려는 걸까. 전체적으로 보면 자연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억 시리즈의 경우 금색 동그라미들이 100호 이상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금색 위에 점들을 입힌 것인가 했더니 각 동그라미를 먼저 그린 다음 그 안에 색을 채운 것이라 한다. 빈 동그라미는 사라진 기억의 파편을 의미한다.
고생스럽더라도 각 테두리를 먼저 그리는 이유는 물감이 많이 묻은 첫 동그라미와 나중 동그라미의 두께가 달라 빛에 반사되었을 때 각기 다른 색을 보여낸다며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연출된다고 한다. 같은 그림이라도 아침, 점심, 저녁이 다 다르다. 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반사되듯 우리가 겪는 상황에 따라 기억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지나고 보면 웃을 수 있는 것처럼. 기억 시리즈는 그녀의 기분 좋은 잔상들을 모아놓은 듯하다.
시선 시리즈의 경우 눈 모양이 빼곡하다. 족히 천개는 되는 듯하다. 이집트 벽화 같기도 하다. 초반에는 금색 위에 금색이 쌓인 그림이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여러 가지 색으로 눈이 표현된다. 시선 시리즈는 상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얽히고설켜 있는 우리의 현대 사회상을 말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관계망에 있다며 자신은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음을 나타내는 작가의 고백도 담겨있다.
경배 시리즈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무거운 파도가 덮치는 모습이다. 두껍고 거친 파도 물결은 한꺼번에 덮치는 시련이라고 한다.
경배 시리즈는 숨은그림찾기처럼 재미있는 구석도 있는데 들여다보면 금색 S자가 어딘가에 꼭 있다. 확대해서 보면 절하듯 고개를 숙여 웅크린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이 엎드려 경배하는 형상을 단순화시켰다고 한다. 힘든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파도를 맞는 것. 그녀의 신앙 고백이자 일기와 같다.
경배 시리즈의 파도를 보며 질문이 생긴다. 시련의 흔적이 없어 보이는 이 작가는 어떤 이유로 무거운 파도를 그리게 됐을까.
돈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성실히 노력할 뿐이라는 그녀.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 우유로 하루 끼니를 채우기도 하고 매일 같은 츄리닝을 입고 다녀서 교수님이 기억하실 정도라니. 대학 졸업 후에는 번아웃을 겪고 오랜 시간 그림 외 일을 하거나 자격증 준비를 해왔고 뒤늦게 그림에 다시 뛰어들었다. 배고픔을 견디고 버텼던 지난날들이 그녀의 힘이자 영감이 되는 것 같다. 경배 시리즈의 웅크린 사람은 이내 작가 본인이었구나.
아무리 힘들었어도 좋았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기억) -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전보다는 자유롭게 (시선) - 다가오는 시련이 있다고 한들 믿음으로 웅크려 중심을 지키는 (경배) 그녀의 작품들은 그녀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만약 새로운 시리즈를 이어간다면 자유, 회복, 탄생 등의 키워드도 스스로에게 선사해 주면 좋겠다.
인간 ‘심인애’는 부족하지만, 작가 ‘이내’는 작품 앞에서 늘 떳떳하다는 그녀. 인간 인애도 작가 이내도 금길만 걷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