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이나 왕이 아닌 정직한 인간의 시선으로 보는 삶과 죽음 - 도서 '캐드펠 수사 시리즈'

글 입력 2024.11.2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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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 시작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 시리즈다.

 

소설을 잘 즐기지 않는데다, 시간에 허덕이는 직장인으로서 시리즈물을 즐길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하나도 끝까지 못 보는 내가 이 시리즈의 10권을 정독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보통 추리소설을 살인마의 독특한 기법을 파훼하는 지적인 형사의 이야기를 읽을 것을 기대하고 읽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처음 캐드펠 시리즈를 접할 때는 비슷한 이유로 시작했다. 하지만 1~5권을 거쳐 6~10권을 이어 읽게 된 이유는, '기묘한 트릭이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적인 이야기'를 위해서였다면 믿어지겠는가.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추리 콘텐츠의 본질적인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 시리즈기도 하다. 추리 관련 콘텐츠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일부 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추리물에 등장하는 사건트릭 자체는 크게 복잡하지 않다. 추리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적 증거를 가지고 끝없이 가설을 수정하는 것이다. 즉, 진술, 진술의 변화, 논리적 모순, 시각적 자극을 이어서 범인을 색출하는 즐거움이 추리물의 핵심 코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살해 트릭, 혹은 살인한 흔적을 어떻게 지웠는가, 그러니까 '어떻게 죽였는가'를 위해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애당초 현실적인 살인 사건에서는 아예 단간론파 시리즈나 역전재판처럼 기상천외한 만화적 과장을 섞어 만들지 않는 이상 사람을 죽이거나 범죄에 혼선을 주는 방식에 큰 변주를 주기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인 범죄수사물의 '사건'의 방법론 자체는 밝혀졌을 때 약간 김새는 결론을 향해 치닫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가 초점이 아니라면, 추리 소설의 형사와 독자들은 어떤 가설을 수정하는 재미를 즐기는가? 우리가 끝없이 수정하고 상상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가 아니라 그 사람이 '왜'일지도 모른다. 진술과 남겨진 증거들에서 사건의 맥락을 상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살인 사건의 맥락, 그러한 살인방법을 택해야 했던 범인의 삶은 어땠는지, 그런 삶은 살았던 사람이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른 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력은 보통 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공감능력에 의해 개발된다. 중요한 것은 이 '어떻게'와 '왜'가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느냐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보다, 추리소설의 재미는 인간의 삶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어떻게' 보다는 '왜'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내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아주 인간적이다. 작품의 주요 화자가 되는 캐드펠은 인간의 선의와 구원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각 인물의 삶에 관심을 둔다. 그래서 그가 바라보는 살인은 1권부터 10권까지 인간적인 이유(더 명예로운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 억눌린 삶에 대한 분노)와 환경(내전에서 한몫 잡아보려는 욕망, 자신이 섬기는 군주에 대한 비이성적인 충성심)에 의해 행해진다.

 

그래서 매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보다 사건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말, 행동, 인상을 묘사하는 과정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앞서 말한 '인간적인 이유'를 묘사하고, 그 이유에 기여하는 '환경'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작가는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다.

 

전자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양한 인물 군상의 표현이다. 정욕, 우정, 애정, 증오, 백일몽 같은 사랑, 믿음 다양한 계층과 인물에 의해 묘사된다. 기본적인 감정 묘사도 훌륭하지만, 그 감정이 표현되는 인물상의 스펙트럼이 넓다. 순수한 모성을 지닌 몸집 작은 수사나 처음으로 모두에게 비천한 취급을 받았지만 천사와 같은 목소리를 가진 어린 광대, 야망과 종교적 광신을 함께 지닌 귀족적인 수사부터 캐드펠 자신도 몰랐던 아들까지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인물의 삶이 묘사된다.

 

궁극적으로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지만, '환경'도 그 인물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환경'에 해당하는 황후와 왕 사이의 격렬한 내전은 이 시리즈를 연속성을 보장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들의 알력싸움에 휘말린 양쪽 진영의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덜 감정적이라는 점이었다.

 

예를들어 캐드펠은 왕 쪽 진영의 휴와 깊은 사이지만, 황후 쪽 진영의 올리비에와도 (숨겨진 사정에 의해) 그에 못지않은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다. 휴와 올리비에는 대적하는 사이지만 서로의 능력과 인품을 인정한다. 이런 부분이 내전을 묘사하는 방식과 잘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묘사되는 감정이 현실적인 인간이 느낄만한 범위여서 아주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처럼 인간중심적인 묘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효과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특유의 휴머니즘적 메시지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캐드펠은 수도사로서의 정체성과 휴 베링어의 도움을 받아 진실을 이끌어내는 형사의 역할을 하지만, 언제나 인간의 속죄와 자비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에피소드 끝에서 진실에 도달한 캐드펠은 살인자의 욕망을 비난하기도, 유능한 관리인 휴 베링어에 넘겨 교수대에 올리는 대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캐드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묘한 우연에 의해, 살인자의 의지에 의해, 다른 캐릭터에 의해, 그 자신의 눈치빠른 성정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결말이 어떻게 되건, 캐드펠 수사는 작품 내내 '좋은 형제'이자 '좋은 아버지'의 이미지를 유지한다(중의적 표현이다.).

 

따뜻한 시선을 가진 캐드펠이 시리즈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 캐드펠 수사나 휴 베링어는 물론이고, 올리비에나 그와 연을 맺은 이브 형제, 한심해 보이는 대니얼, 예술가 같은 안젤름 수사, 순수한 영혼을 가진 마크 수사나 약간 얄미운 제롬 수사나 로버트 부수도원장까지. 섬세하게 완성된 하나하나의 캐릭터들이 책 앞 페이지에 있는 수도원과 그 주변 마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애정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캐드펠이 인간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앞으로도 나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을 것이다. 캐드펠 수사는 죽음을 단죄하지도, 자비롭게 용서하지도 않는다. 그저 진실을 찾고자 하고,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바라보길 바랄 뿐이다. 캐드펠 수사는 용감한 전사나 성인이 아다. 그래서 참 따뜻하다. 쓰다 보니 이 시리즈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안 그러겠는가, 10권동안 나는 그의 자취를 따라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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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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