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운이 좋은 사람

글 입력 2024.11.2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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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새 날씨가 급격하게 쌀쌀해졌다. 날짜를 헤아려 보니 올 한 해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두꺼워졌고, 집 근처 아울렛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트리가 들어섰다. 수능도 끝났으니 이제 남은 이벤트는 첫눈과 크리스마스뿐인가. 기분이 묘하다. 이렇게 또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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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처음 상경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딱 지금 같은 날씨였다. 아는 이 하나 없었던 낯선 도시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스무 살짜리에겐 막막한 상대였다. 거기다 내성적인 성격에 술자리도 잘 즐기지 않았으니 신입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쏘다니는 게 더 익숙한 시절이었다. 내가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아니어서 망정이지.


허나 외로움과 별개로 무료함은 견디기가 참 어려웠다. 시간이 남아도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기엔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고향에 있었고, 대학 동기들은 강의실이 아닌 곳에서 따로 볼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다. 게임이나 운동 같은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흥미가 있는 거라곤 영화를 보는 거였는데 지갑이 얇은 대학생에겐 그 시절 영화값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택한 게 책이었다. 마침 학교 기숙사에 살아서 도서관과 가깝기도 했고, 책을 빌리는 일에는 돈이 들지 않았으니까. 수업이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늘 도서관에 갔다. 읽어야 할 책이 늘 쌓여 있었고 덕분에 나는 항상 한도까지 꽉꽉 채워 책을 대출하곤 했다(덕분에 반납 타이밍을 잘못 계산해 연체료를 낼 뻔한 적도 비일비재했다).


여하튼 그러다 보니 빠져들었던 게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였다. 당시에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겐 꽤 유명한 방송이었다(서점을 가면 <빨간책방>에 나온 도서들만 모아놓은 코너가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가끔 작가분들을 모시고 대담을 나누는 인터뷰 콘텐츠를 진행했는데, 어느 날엔 프로그램의 호스트인 ‘이동진’씨와 ‘김중혁’씨를 작가로서 모시고 서로 번갈아 가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다.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회차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호스트가 서로를 소개할 때였다. 원래 인터뷰 콘텐츠에서 인터뷰이를 소개하는 건 당연한 순서지만 그날만큼은 좀 달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약간의 사심을 담아 소개문을 작성했는데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선명하다(궁금하다면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의 블로그에서 "이동진은 누구인가"와 "김중혁은 누구인가"를 검색해보길 바란다).


오랜만에 읽어도 멋진 글이다. 단순한 문장들의 나열일 뿐인데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문장 사이사이로 비치는 상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참 따스했다. 제3자가 보아도 이 정도인데 당사자는 얼마나 고맙고 감동적이었을까. 아무튼 그때의 기억이 내겐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종종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일이 있었는데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는 저 형식을 일종의 필살기처럼 사용하곤 했다.


이후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졸업을 했고,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하루하루 아등바등 대다 보니 자연스레 편지를 쓸 일도 줄었다(메일은 많이 썼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대규모 조직개편 공지가 날아왔다. 경기가 한창 어려운 때였다. 시장에 돈이 말라붙자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비용을 줄였다.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번 조직개편도 그 일환 중 하나였다. 문제는 그 바람에 우리 팀이 졸지에 해체되었다는 것이었다.


꽤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가 이런 것이라니. 팀원들의 얼굴엔 수심이 어렸다(실제로 그 직후 절반 이상의 팀원들이 퇴사를 했다). 나도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나 이미 내려진 결정을 번복할 순 없었다. 우리는 이별을 준비했다. 기존에 담당하던 업무들을 인수인계를 했고 자리 이동을 위해 짐도 정리했다. 그래도 함께 해온 시간이 있으니 이대로 찢어지긴 아쉬워 누군가 마지막 회식을 제안했다. 이벤트로 우리끼리 롤링페이퍼도 미리 써서 그날 서로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무슨 말을 써야할까. 일단 펜을 들기는 했는데 고민이 많았다. 내가 느끼는 실의를 다른 이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작별도 중요했지만 그 전에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필살기를 꺼내기로 했다. 함께 했던 팀원들을 문장으로 다듬어 흰 종이 안에 새겨넣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으니. 롤링페이퍼의 핵심은 익명성이라 내가 썼다는 걸 알지 못하게 하려면 나에게도 같은 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별 수 없이 나에게도 편지를 썼다. 그리고 쓰다 보니 깨달았다. 그동안 정작 나에게는 단 한 번의 편지도 쓰지 않았다는 걸.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한 해의 끝을 앞둔 이 시점에 그때가 갑자기 왜 떠오르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연말의 말랑말랑한 분위기에 취해 추억 놀음이라도 하고 싶은 건지. 사실 추억이라 부를 만큼 멋진 한 해를 보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나는 운이 없는 편이다. 이벤트 같은 것에 응모해도 단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었고(그래서 나는 로또는 절대 안 산다), 건널목에 이르면 내가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는 꼭 신호가 바뀐 직후였다. 회사에서 잘나가는 광고 채널도 내가 업무를 담당하면 이상하게 퀄리티에 비해 뷰어십이 저조했다.


좀 더 크게 보면 다니던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져서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난 적도 있었다. 건강도 망가졌다. 허리디스크를 심하게 앓았고, 발목 인대도 두 번이나 다쳐서 양쪽 다리에 번갈아가며 깁스를 했다. 올해 여름엔 13년간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보리가 먼 길을 떠났다. 서글픈 건 방금 말한 큰일들이 최근 1-2년 사이에 모두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사주팔자에 요 몇 년이 나에게 삼재라더니 그게 진짜일 줄이야.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 년은 좀 버거웠다. 올여름에 퇴사를 한 것도 주된 사유는 건강 때문이었지만, 그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 아니었을까. 그만큼 지쳐 있었고 동기도 메말라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회사를 탈출할 날만을 기다리며 꾸역꾸역 시간을 보내는데 실장님이 나를 불렀다. 예비 퇴사자들이 퇴사 전에 형식적으로 거치는 면담 때문이었다. 그냥 숙제 같은 거니 빨리 끝내고 싶었다. 애초에 나는 실장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그는 원래 다른 부서에 있었는데 두 달 전에 인사 발령으로 우리 부서로 오게 되었다. 그땐 이미 나의 퇴사가 결정되어 있을 때라 실장님 입장에서도 나는 금방 떠날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잠깐의 침묵 후 실장님은 혹시 회사가 설득한다면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예의상 던지는 질문이겠거니 하며 공손한 단어들을 골라 정중히 거절했다. 실장님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퇴사 절차에 대해 안내해 주셨다. 면담은 그렇게 마무리되는듯 했다. 그때였다. 잠시 깊이 숨을 들이마시던 실장님은 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두 달 간 나를 어떻게 지켜봤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여러모로 몸과 마음이 심란할 텐데 앞으로 몇 년은 더 있을 것 같은 사람처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건넸다. 마지막엔 언제든 기다릴테니 혹시라도 몸이 회복되고 돌아올 생각이 있다면 편히 전화 달라는 말도 있었다.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나를 몇 년간 봐온 사람이 아니라 같이 지낸지 이제 갓 두달 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해줘서 더 그랬다(물론 실장님은 예의상 한 말일 수도 있다). 사실 실장님과 면담하기 직전엔 예전에 같이 일했던 팀장님이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롤링페이퍼를 주고받았던 그 팀장님이다). 새로운 회사를 차렸는데 합류해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 때문이었다. 처음엔 거절했다. 퇴사하면 휴식기를 가질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럼에도 팀장님은 그때까지 기다려줄 테니 몸이 회복되거든 다시 결정해 달라는 말까지 해주셨다.


강풀의 웹툰 <순정만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작중 여자 주인공인 ‘수영’은 재혼 가정에서 자랐다.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가 자신을 떠난 상처 때문에 사람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지녔고, 집에서도 엄마에게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면서 수영은 점차 변화하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의 곁에는 엄마뿐만 아니라 새아빠와 새오빠도 늘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자신이 사랑받아왔었는지까지도 말이다. 다만 스스로의 연민에 갇혀 있느라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광고 일을 시작한 것도 일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시작은 인턴이었고, 당시 실장님이 감사하게도 계속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던 나는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다시 말해 내 시작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나를 이끌고 지탱해 주고 있었다. 운이 없는 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만난 이들 모두가 나에겐 행운이었다. 나의 행운이 되어주어서 그들 모두에게 고마웠다.


 
“운이 좋은 사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덕분에 행복했던 사람. 감사해 하는 사람. 앞으로도 기억할 사람. 기억하며 기록할 사람. 기록하며 추억할 사람.”
 

 

위 문장은 앞서 말한 롤링페이퍼에서 스스로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다. 몸을 회복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지금, 나는 팀장님의 회사에 합류했다. 내 곁에는 여전히 내가 믿고, 행운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여전히 현재는 버겁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있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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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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