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클리셰의 새로운 의미를 알게 해준 공연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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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에게 별 보러 가자, 나랑 같이 걸을래 등의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적재가 지난 11월 9, 10일 양일간 올림픽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콘서트명은 10월 29일 발매된 정규 3집 앨범의 제목과 동일한 CLICHÉ였다.
원래도 적재의 곡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주로 듣는 음악들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곡들이었다. 이번 연도 초 페스티벌을 즐기러 갔다가 적재의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그날 공연이 너무 인상 깊게 남아서 이후로 잘 알지 못했던 수록곡들도 찾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연도에 콘서트를 개최하면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11월 10일 공연을 다녀왔다.
클리셰는 진부하다는 뜻을 가진 부정적인 단어로 알려져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적재의 3집 앨범을 들으며 클리셰에 대해 스스로 재정의하게 되었다.
뻔한 외로움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
휩쓸리고 사무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또 한 번의 진부함이다.
이젠 익숙해진 그리움은 상투적이지만 그런대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비슷하지만 다른 모양으로 반복되는 계절처럼,
지칠 줄 모르고 되풀이되는 클리셰처럼.
클리셰 앨범의 소개 글이다. 대부분 새로운 상황에 마주쳤을 때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깨달음은 반복되는 계절이든 일상이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언가의 전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발매된 클리셰 앨범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콘서트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첫 곡부터 뭔가 달랐던 공연
첫 곡은 Runaway
로 시작했다. 이 곡은 정규 2집 THE LIGHTS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데, 만약 적재의 음악을 별 보러 가자, 나랑 같이 걸을래와 같은 잔잔하고 서정적인 발라드로만 알고 있던 분들이 있다면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지금까지 알던 적재의 음악과는 새로운 매력을 선사해 줄 것이다. 강렬한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라 공연의 후반부에 위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콘서트의 시작을 여는 첫 곡이라는 점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공연이 끝나고 생각해 보니 CLICHÉ라는 콘서트명에 가장 어울리는 첫 번째 곡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View
는 적재의 정규 1집 데뷔 앨범의 수록된 곡인데, 이번 정규 3집에 2024년 버전으로 새로 발매되었다. 현장에서 들은 View(2024)는 밴드와 스트링 연주가 합쳐져 공연에 더 빠져들게 만들었다. 공연 날이 적재의 데뷔 10주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데뷔곡에 담겨 있던 수록곡이 10년이 지나 재해석되어 콘서트에서 연주되는 모습이 공연이 끝나고도 계속 기억날 정도로 가장 감동적이었다. 2015년 단독 콘서트를 올림픽홀 바로 옆에 있는 뮤즈 라이브홀에서 진행했던 가수는 10년이 지나 올림픽홀에 입성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가수가 되었다.
마음 깊이 각인된 가사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무 고민 없이
사는 것만 같아
답답해 이런 날 어떡해
맘은 약해지는데
이젠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물어도 답은 없는 것 같아 접기
- <요즘 하루>
콘서트를 간 시기가 시험이 끝난지 얼마 안 지났을 때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여러 고민들로 조금 지쳐있었는데 요즘 하루라는 곡을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주변의 사람들은 고민 없이 사는 것 같다는 가사가 깊이 공감되면서 가사 속에 꾹꾹 눌러 담긴 진심이 담담한 위로로 다가왔다.
요즘 하루는 무대 연출도 좋았지만 곡 후반부에서 적재와 브라스가 서로 주고받는 솔로 연주가 돋보였다. 행복한 모습으로 솔로 연주를 하는 모습과 솔로가 끝나고 상대방의 연주를 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조금 남겨놓으면 살아갈 이유가 되니까
- <발자국>
발자국은 정규 3집 앨범에서 타이틀곡 그리워와 함께 클리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곡이다. 이 곡은 작년 farewell 콘서트가 끝나고 홋카이도 여행을 떠났는데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홋카이도로 떠났지만 이전에 방문했던 것만큼 좋지 않아서 그 경험을 토대로 만들게 된 곡이라고 한다.
돌아보면 가장 오랫동안 회상하게 되는 건 아쉬웠던 기억들인 것 같다. 실패의 기억은 왜 그때의 나는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여행의 기억은 조금 더 즐기고 올 걸이라는 아쉬움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아쉬움의 마음을 곱씹으며 계속 살아가는 듯하다.
신나기도 했던 그날의 공연
적재의 공연이라면 빠질 수 없는 별 보러 가자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석에서는 하나둘씩 핸드폰 플래시를 켜기 시작했다.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에 도달했을 때는 불빛이 공연장 전체를 가득 채웠고, 그 모습은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이 노래를 기다렸을 수 있겠지만 사실 너무 잘 알려진 곡이라 페스티벌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노래라서 이번 공연에서는 수록곡을 듣는 것에 기대감을 가지고, 별 보러 가자에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따듯하면서 담백한 목소리는 공연 당일의 날씨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Rebound는 3집 앨범에서 유일하게 밝은 분위기의 노래인데, 노래의 하이라이트부터 커다란 농구공 소품이 관객석에 투입되어 손으로 튕기며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이어서는 신나는 곡들인 개인주의, I HATE U , 달라를 선보이며 공연의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CLICHÉ로 마무리
본 공연의 마지막 3곡은 CLICHÉ 앨범의 타이틀곡인 그리워와 수록곡
CLICHÉ, 나의시였다. 특히 그리워는 노래 시작 전 기타 도입 연주가 너무 좋아서 앨범 발매 후 반복해서 듣던 곡인데, 라이브로 들은 그리워의 무겁고 따뜻한 기타 선율은 공연이 끝나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게 만들었다. 나 그리워하네
널 그리워하네
난 그리워하네
그때의 날
그리워하네
- <그리워>
노래의 가사처럼 이번 공연은 관람하면서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오늘의 행복했던 내가 그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공식적인 공연은 마무리되고, 관객들은 뜨거웠던 공연의 열기를 이어 앵콜을 외쳤다. 그렇게 앵콜을 외친 지 몇 분이 지났을까. 적재는 무대로 다시 등장했고, 앵콜곡으로
The door와 앞서 공연했던 2024년 버전의 View가 아닌 데뷔 앨범 버전의 View를 노래했다. 적막한 공연장에서 한줄기의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는
The door는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전달했다. 적재는 10년 전의 나온 View를 여러 무대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해서 불렀지만 지금의 목소리로 부르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이 곡을 공연의 앵콜 마지막 곡으로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10년 전에 녹음된 음원 속 그 당시의 목소리와 같지는 않지만 지금의 목소리로 부른 View는 또 다른 깊은 매력을 선사했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공연의 기억
공연의 음악은 당연히 좋았지만, 그 외에 무대 연출에 많이 신경을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콘서트를 가기 전 이전에 진행되었던 단독 콘서트의 여러 후기를 찾아봤는데 대부분의 후기에서 무대 연출, 특히 조명에 대한 코멘트가 많았는데 이번 공연을 보고 읽었던 후기에 납득할 수 있었다.
조명 연출은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고, 조명으로 인해서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마치 긴 음악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타 연주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당연히 좋았고, 공연 내내 느꼈던 따뜻한 감정들은 앞으로 다가올 어려운 날들을 이겨내게 할 큰 원동력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24년 적재 전국투어 콘서트는 앞으로 전주, 대구, 창원, 천안, 부산, 광주 지역에서 진행된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겨보고 싶다면 적재의 콘서트를 가보길 추천한다. 추운 겨울 따뜻함을 선사해 줄 것이다.
[임채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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