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림트 이야기
늘 자신에 대한 말을 아꼈던 화가 클림트. 책에 의하면 그런 클림트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미술에 대해 단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특별하지 않다. 나는 그저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이다. 나는 특히 나 자신이나 내 작품에 대해 표현해야 할 때 말도 글쓰기도 잘하지 못한다. 간단한 편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괴로워진다. 초상화건 글이건 나를 표현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두렵지만, 그게 큰 문제는 아니다. 나를 더 잘 알고자 하는 사람, 아마 나에 대해 유일하게 알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은 예술가로서의 측면일 텐데, 아무튼 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내 그림을 연구하고 그것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68쪽)
이 단락을 읽다 보면 섬세하고 몽환적인 그림을 그려 온 클림트는 꼭 자기 그림 같은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저 자기 자신을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 뿐, 특별하거나 칭송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작품을 표현할 때 ‘써야 한다’,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화폭을 황금빛으로 물들여가던 사람이니 그의 모든 것이 화려하고 번쩍일 것만 같았는데. 그는 그저 ‘매일 그림을 그린다’는 화가의 본질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흥미를 느끼던 것은 여성이었다. 여성의 신체, 표정, 그리고 억제되어 있던 여성들의 감정과 감각은 어찌 보면 섬세한 기질의 클림트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클림트의 그림 속으로

<금붕어>
구스타프 클림트, 1902, 캔버스에 유채
꿈 같은 색감, 물속에 있는 듯한 느낌.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은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어떠한 몽롱한 느낌이 있는데, 이 <금붕어>가 내겐 특히 그렇게 느껴진다.
공간을 떠다니고 있는 여인들은 오묘한 미소를 짓고, 부드럽고 풍부한 머리카락은 넘실넘실 흘러내리는 듯하다.
점잖은 여성으로서의 미덕을 지켜야 했던, 즉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올리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했던 시대에 자유롭게 풀어진 머리카락은 일종의 해방과도 같은 것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에드가르 드가, 그리고 클림트와 같은 예술가들은 여인의 머리카락에 대한 페티시즘적 환상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웅크린 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듯한, 넘쳐흐르는 생명이 느껴지는 왼쪽 아래의 여인은 늘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같은 여성마저 유혹할 것만 같은 고혹적이고 신비로운 미소가 그림을 보지 않을 때에도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희망1>
구스타프 클림트, 1903, 캔버스에 유채
임신한 상태를 묘사하는 걸 금기시했던 서양 미술의 전통을 깬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이 바로 클림트이기도 했다.
화폭 너머 감상자를 응시하는 듯한 여인의 조용하고 담담한 눈빛, 가슴 앞에 모아 마주 잡은 두 손. 그리고 그 손 아래 생명을 품은 둥근 배가 빛나듯 하얗게 보인다.
한편, 희망 1이라는 제목이 붙었음에도 생명을 품은 여인의 뒤로 검은 죽음이 서 있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나는 여인의 눈빛이 이토록 담담한 것은 생명과 죽음이 결국은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유하는 생각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예술가
세기말의 오스트리아 빈.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의 교체가 막 일어나려 하는 시대 속에서 평생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에 공을 들였던 사람.
격동의 시대 속에서 고민하던 한 화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부유하는 것들을 붓끝에 모아 화폭에 풀어내려갔다. 어느 때에는 몽롱한 감각을 여인들의 모습으로, 모호한 아이디어를 황금의 패턴과 장식으로.
결국 고여있던 빈의 회화로부터 찬찬히, 어떠한 탈피를 이끌어 낸 클림트는 당대의 빈의 젊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클림트의 친구인 한스 티체는 클림트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클림트는 빈의 회화를 시들어가는 고립에서 벗어나 다시 넓은 세계로 나가도록 이끌었다”고.
독특한 색과 몽환적인 표정들, 섬세하고 대담한 여성의 묘사로 화폭을 가득 채우던 클림트.
그의 세밀한 관찰력과 뛰어난 미술적 재능도 부럽지만 매일 그림을 그린 끈기와 인내심이 가장 부럽고, 닮고 싶다.
[“예술이란 당신의 생각들을 둘러싼 한줄기 선이다.”] - 구스타프 클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