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편의 동화 같은 삶을 꿈 꿀 때가 있었다 [음악]

현실에 오로라 필터를 씌우고 싶은 순간에 내가 듣는 것들
글 입력 2024.10.2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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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nacho-rochon-CG7YwmRDGvI-unsplash.jpg

 

 

어릴 적부터 아이돌을 좋아해서 그랬을까, 학창 시절의 나는 음악이 주는 환상에 흠뻑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이어폰을 꽂는 순간 눈앞에 놓인 것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다른 세계가 열릴 것만 같은 두근거림을 느끼는 순간들 말이다.

 

아이돌은 환상을 파는 직업이라고 하니, 어쩌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그리 유별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10대들이 제각기 천진무구한 면을 가지고 있듯이, 이렇게나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에 특별하게 사로잡혀 있길 좋아했다.

 

그러나 여느 어른들이 그러하듯 커서는 그런 감정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런 영감을 주는 음악들을 만나기도 힘들었고, 음악을 듣고 다른 세계가 열리느니 하는 상상이 딱 거기까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상상력을 펼치기에는 현실이 냉정하게 그 앞을 가로막는 기분이었다. 가감 없이 말하자면, ‘쓸모없는 생각’이라고 스스로 치부하는 듯하기도 했다.

 

다만 나의 10대 시절을 형성하는데 주요하게 작용했던 그 경험들은 상자 속에 담긴 낡은 일기장과도 같아서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매번 그 빛바랜 감정들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격발된 감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면 나는 10년 전 내가 들었던 플레이리스트를 뒤져 그 시절에 느꼈었던 환상을 만끽했다. 정확히 무엇을 추억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그 느낌이 좋았을 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하게도 나는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유발하는 곡을 마주쳐 또다시 그 시절로 나를 되돌아가게 만들 곡들을 찾아야 했다. 현실을 동화로 바꿔주었던 노래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같은 가사로 환상을 노래하고 있었지만, 매번 똑같은 감상을 불러오는 건 아니었기에 이런 기회 하나가 소중한 법이었다. 그렇게 캐낸 곡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흰나비를 쫓아가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조그만 날갯짓 널 향한 이끌림

나에게 따라오라 손짓한 것 같아서

 

EXO-나비소녀

 

 

제일 먼저 찾은 곡은 엑소의 첫 번째 정규앨범 ‘XOXO’의 수록곡 ‘나비소녀’다. ‘나비소녀’는 말 그대로 나비와도 같은 몸짓을 지닌 소녀와 함께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인데, 특히 엑소의 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곡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학창 시절을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다.

 

그 시절 엑소의 힘은 정말 대단했는데, 나는 이 그룹을 단순히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데뷔 당시 엑소의 컨셉은 ‘초능력’이었다. ‘초능력’이라니,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환상의 것 그 자체다. 그 컨셉은 이들이 무엇을 노래하든 판타지적인 면모를 더해주었고, 나는 그런 순간들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런 목소리로 세상 끝까지 따라가겠다 답하니 정말 이 세상에는 끝이 존재할 것만 같았다.

 

다만 엑소를 좀 아는 사람이거나 팬이라면, 이 곡과 비슷한 결로 ‘피터팬(Peter pan)’을 말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곡을 알면 더욱 ‘나비소녀’와 ‘피터팬’의 차이를 알리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피터팬’은 이야기의 에필로그고, ‘나비소녀’는 그보다 훨씬 앞서 막을 여는 프롤로그다. 곡 속의 나비소녀는 언제나 소년뿐만 아니라 나 또한 다른 풍경이 펼쳐질 세상의 끝으로 안내하며 폴폴 날아간다.

 

 

 

저 너머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랑법


 


 

깊은 침묵 속에 담겨진 이야기

다른 모습 또 다른 세상에서 온 너

긴 손을 뻗어 날 바라보면

네가 있는 곳으로 함께 데려가 줘

 

f(x)-Beautiful Stranger

 

 

그 후에 탐색한 아티스트는 f(x)였다. 샤이니, 엑소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SM의 걸그룹이었고, 잠정 활동 중단기에 들어가기 전까지 SM의 신비스러운 계보를 잇는 그룹이었다. 특히 f(x)만의 독특한 매력은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려웠는데, 그런 면에서 이 그룹은 나에게 있어서 보석 같은 그룹이었다.

 

수록곡 중에서도 역시나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곡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두 번째 미니앨범 'Electric Shock'에 수록된 ‘Beautiful Stranger’는 반복되는 전자음과 강한 비트가 미래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곡이다. 말 그대로 낯설지만, 아름답다.

 

엠버의 랩으로 시작되는 이 서사는 마치 외계인과 사랑에 빠진 것과도 비슷한 모습을 그려낸다. 그 서사를 들을 때면 나는 과연 어떤 모습, 어떤 환경, 어떤 행성일까, 상상하곤 했는데 그 모습은 매번 달라져서 즐겁곤 했다. 어릴 적에는 정말 우주 저 어딘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커서 다시 들어보니, 이 노래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우주, 다른 행성까지 갈 것도 없이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그게 현실일지라도 밀어내고 두려워하기 마련이고 그런 영역에 속한 사람들은 ‘Stranger’로 분류되니까. 그러나 이 지구 어딘가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이들이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면, ‘Beautiful Stranger’의 서사를 그대로 현실에서 그려내는 것이 아닐까. ‘우린 이대로 지금 그대로 이상하지 않아’라는 말을 뱉어내면서. 어쩌면 현실 중에서도 제일 동화 같은 이야기다.

 

 

 

깊은 밤 너머로 전해지는 꿈결같은 이야기


 

 

 

이건 알려지지 않은 꿈의 건너편의 이야기

밤을 새워 만들어서 두고 가는 이야기

 

오마이걸-Classified

 

 

그리고 이 감정들을 다시금 불러일으킨 곡이 오마이걸의 ‘Classified’다. 앞선 두 곡과는 다르게 대놓고 동화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이는 오마이걸이 제일 잘하는 전문 영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마이걸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Closer’, ‘비밀정원’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Classified’는 그 두 곡과는 또 다른 시간대에서 은밀하고 신비스럽게 위로를 전한다.

 

영롱한 오르골이 돌아가듯 현악이 부드럽게 꿈의 융단을 깔면, 시곗바늘 소리와 비슷한 비트가 더해지며 또 다른 세계로 청자를 초대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하면 깊은 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연출로 아이의 다친 마음을 위로하려 분주하게 움직이는 곰인형이 떠오른다. 혹은 어릴 적 천장에 붙여놓고 매일 밤 바라봤던 야광 별 스티커, 매번 짝꿍처럼 갖고 놀던 레고 블록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렇게 노래에 맞춰 하염없이 꿈을 꾸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닿고 싶은 안락하면서도 비밀스러운 공간을 전부 그려내고 있다.

 

 

Sometimes I dive into your dream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겠지만

Sometimes I cry to make you smile

우리가 서로의 뒷면을 전부 알 순 없지만

 

오마이걸-Classified

 

 

재밌는 점은 가사가 현실의 냉정한 면을 아주 동화스럽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아무리 오래 만난 상대더라도 서로가 모르는 부분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너’가 행복하길 원하는 마음만은 일관되게 전해져온다. 그 마음은 곡 속에서 굉장히 귀엽고 몽환적인 표현들로 그려지는데, 그런 점에서 ‘Classified’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되기에 충분하다.


결국 이 모든 곡을 들으며 일련의 추억여행을 거친 뒤에는 다시 무미건조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런 환상을 겪고 나면 약간 보랏빛 필터가 낀 것처럼 그 현실을 예쁘게 마주할 자신이 생긴다. 또 현실이 무조건 무채색이란 법은 없으므로 일상 속에서 작은 동화들을 또 언제 만나게 될지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환상 속에서 깨어났어도 나는 여전히 그때의 그 감성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이런 순간이 찾아와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면 무조건 그 여행에 탑승해 다시 이 감정을 만끽할 것이다. 한 번 부풀어 오른 감정은 꺼지면 다시 그 부피를 키우기 쉽지 않지만, 이렇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이스트를 만난 밀가루 반죽처럼 몽글몽글하게 커지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그러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자신만의 동화를 품고 살아갔으면 한다. 무조건 공주와 왕자가 나오고,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는 게 아니더라도 일상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반짝이 가루 같은 것들 말이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다시 쓸모없게 느껴질지도 모르나, 어떤 때에 어떤 방식으로 꿈속 요정처럼 나타나 불시에 따뜻한 위로를 건넬지 모른다. 그리고 그 요정들은 제각기 다른 선율을 가지고 환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김민정.jpg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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