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다루는 드라마나 미디어들은 이미 다수 있다. 그러나 새벽의 모든이 보여주는 세계는 흥미롭고 새롭다. 시혜적인 관점으로 인물들을 다루지 않으려는 관점이 돋보인다. PMS를 겪는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를 가진 야마조에가 주고받는 도움을 보여주며 이들의 일상은 천천히 흘러간다.
![[크기변환][포맷변환]common (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0/20241006203002_hufcanvg.jpg)
도움을 주는 기억은 서로를 살린다.
영화는 연대에 관해 이야기한다. 후지사와는 야마조에의 공황장애를 알게 되고 적극적으로 돕는다. 머리를 잘라주고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그를 위해 자전거를 내어준다. 오지랖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야마조에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
사실 이 도움은 야마조에에게 주는 도움이자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심각한 PMS를 겪던 후지사와는 회사를 갑작스럽게 그만둔 후 쿠리타 과학으로 이직했다. ‘5년 후‘ 로 축약되는 시간 동안 그녀에게는 다양한 경험이 쌓였을 것이다. 그 시간은 자신에게도 가장 어려운 시간을 겪는 동료에게도 선의를 베풀게 만들고 그 도움은 다시 그녀에게 돌아온다.
우리 모두 기대며 살아야 하지만 어디 그게 쉽던가. 보답해야 할 것만 같고, 나 홀로 무엇도 하지 못하는 사람 같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니다. 결국 후지사와는 그 시간만큼 풍성한 인간이 되었다. 동료의 어려움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그녀이다. PMS를 겪으면서 자신의 병에 대해 연구한 일이 어쩌다보니 선순환의 시작이 된 것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common (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0/20241006203018_pascpnpw.jpg)
그래도 살아가기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이동형 플라네타륨 행사를 기점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후지사와는 이직하게 되고 야마조에는 전 회사로 돌아가는 대신 쿠리타 과학에 남는다. 처음 야마조에가 회사에 품었던 불만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정이다. 그들은 담담하게 헤어진다. 남녀의 관계를 사랑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는 클리셰를 비껴간다. 야마조에의 여자친구가 후지사와에게 “당신이 회사에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오해 없이 그들의 연대가 온전해진다.
후지사와의 PMS도 야마조에의 공황장애도 없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속 의사의 말처럼 완치까지 1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은 일상을 살아간다. 서로 받은 도움을 기억하고 서서히 자신과 병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며 그렇게 살아간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여전히 좋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반짝인다.
후지사와는 엄마의 간호를 위해, 야마조에는 쿠리타 과학에서 새로운 시도를 위해 각자의 길을 선택한다. 이들이 도움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바뀌어 가는 그 희망과 변화는 매우 당연히다. 플라네타륨 행사의 가닥을 잡게 한 사장 동생의 메모처럼 이 세계는 움직이고 있고 곧 새로운 새벽이 찾아온다는 것. 그 사실처럼 이들의 새벽도 점점 밝아온다.
![[크기변환][포맷변환]common.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0/20241006203033_lmpbbtzs.jpg)
새벽으로 읽는 세상과 사람
영화 속 세계는 다소 유토피아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쿠리타 과학 같은 회사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현실은 영화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 힌트를 감독 미야케 쇼의 인터뷰에서 찾았다.
"우리 두 사람이 의견을 같이한 것은 ’정말 괴로운 사람에게는 이런 말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아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내가 암흑에 있는데 말이다. (중략) 안이하게, 얄팍하게 희망을 주기보다는 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기를 바랐다. 침울한 상태의 사람들에게 내일부터는 힘을 내보자는 밝은 희망을 주고 싶었다. 내일은 일어날 수 있는 포지티브한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말이다.”
- KBS 미디어 인터뷰 중
미야케 쇼 감독 또한 이 세계가 실존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무작정 희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그 밤에 함께 있어 주는 마음을 전달한다. 새벽을 기다리며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그런 현실을 꿈꾸는 영화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인물들을 창조한 그의 다정함은 관객에게 옮겨간다.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새벽, 별이 희미해져도 여전히 있는 것처럼 우리는 늘 서로의 곁에 있다는 뻔한 말에도. 당신의 모든 새벽이 맞다고 하는 이 영화가 참 좋다. 너만 힘드냐는 비죽거림이 아니라 너도 힘드냐고 하며 불쑥 들어오는 따뜻함이 볼 때, 우리는 다가갈 수 있을까. 그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새벽과 모든을 당신에게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