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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는 영화 '수유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실타래로 그 틈에 구멍을 새기면 하류의 물이 상류를 타고 오르며 미세한 물결의 흐름과 세기, 그리고 그 안의 것들을 다시 회고할 수 있다.
홍상수의 24번째 작품 ‘수유천’으로 하여금 김민희를 스크린에서 보게 되었다. 한창의 무더위가 물러가고 이제야 조금씩 마른 공기를 들이마시는 요즘처럼 영화의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다. 그래서 영화는 빨간 터틀넥과 얇은 코트를 보여주며 언뜻 현재를 지시하는 것처럼, 혹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 해가 지나간 날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그리고 영화는 지나갔고, 지나는 중이며, 지나갈 이야기들을 입과 입을 통한 대화의 형식만으로 현재에 머물게 하며 삶에 스며들게 된다.
시놉시스 훑기
한 여대에서 촌극제가 있다.
전임이라는 이름의 강사가 외삼촌에게 자신의 학과 촌극 연출을 부탁한다.
전임은 매일 학교 앞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작품 패턴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외삼촌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몇 년 째 일을 못하고 있는 배우 겸 연출자이다.
사십 년 전 이 여대에서 대학 일학년의 신분으로
촌극을 연출했던 기억 때문에 연출을 맡은 것이다.
촌극하는 학생들 사이에 스캔들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나고,
전임과 외삼촌은 그 사건에 가볍게 끼어들게 된다.
그사이 외삼촌은 텍스타일과 여교수와 가까워지는데,
밤마다 하늘의 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전임은 아침마다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수유천〉 시놉시스 (출처: 전원사)
촌극(寸劇)의 첫 번째 사전적 정의는 아주 짧은 단편적인 연극. 즉 토막극이며, 두 번째 사전적 정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우발적이고도 우스꽝스러운 일을 이르는 말이다. 마디 촌에 심할 극을 쓰는 이 명사는 홍상수의 영화를 몇 편 본 사람이라면 단어 자체가 그의 영화를 지칭하고 있다고 생각될 것이다.
촌극 같기도 하고 코미디 같기도 하며 시 같기도 한 그의 영화는 2020년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기자회견에서의 작업 방식의 질의응답으로 설명될 수 있을 듯하다.
"First, I decide to start that's what I so. Either I have a place in mind well, I have a few actors and I just decide okay. we shoot from maybe seven days from one month I decied that and then I go to the place or I meet and I mingle with the place. And then I can maybe one week before the shooting sometimes a few days people start shooting I'm forced to come up with the first scene or sequence. and I just have to believe myself then because I have no choice."
"먼저, 시작하기로 결정합니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든, 배우가 몇 명 있으면 그냥 결정하면 돼요. 일주일에서 한달 동안 촬영하고, 그 장소에 가거나, 사람들과 만나서 그 장소에 어울리죠. 그러면 촬영 일주일 정도 때로는 며칠 동안 첫 번째 장면이나 시퀀스를 생각해내야 하고,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저 제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대부분 영화의 제작 과정은 감독의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계획과 통제로 이루어지나 그의 영화는 앞선 경우와 비교했을 때 즉흥적이고, 영화의 본질, 메세지에 집착하지 않으며 과정에서의 루틴, 구조 그 자체를 바라본다.
그 때문에 어쩌면 이 과정은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과 비슷할 수 있겠다. 그 과정에서 일상이었다면 지나치기 쉬운 작은 디테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 일이 홍상수가 영화를 만드는 일이다. 대서사, 사회를 관통하는 사건들에 대해 말하는 유혹에서 빠져나와 '디테일', '작은 것'에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일 때 오히려 문제는 간단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야외에서 먹는 숯불 장어구이
딱 잘라 어느 계절이라 지칭하기 힘든 환절기는 무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는 여름의 가졌던 강렬한 감각들을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수유천'도 그 담담한 분위기를 담고 진행된다. 홍상수의 영화는 스펙터클을 끌고 오지 않는다.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일상을 보여주며 허구로 만들어진 삶 자체가 과격하지 않은 방법으로 은근하게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영화에서 '플래시백'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영화의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영화는 즉물적이지 않은 대화와 상상으로 진행된다.
삶과 공명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먹기'이다. 영화에서 밥과 술을 먹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장어구이-와인-떡볶이(해장용)-중식당-라면-장어구이로 이어지는 먹방씬은 장어구이의 수미상관을 지니며, 특히 마지막 씬에서 전임이 대리로 운전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장어구이를 먹고 느끼하다며 맥주를 들이켜고는 '맛있다'고 표현하는 장면은 영화를 관람 후 장어구이가 먹고 싶어질 만큼 현실적이었고 하여금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또한 또다시 혹평을 듣게 된 촌극의 상영이 끝난 후 중식당은 다시 서양화과 학생들의 짤막한 연극이 시작되는 중요한 장소였다. 전임의 외삼촌은 40년 전 같은 대학에서 촌극을 연출했지만, 그 시간을 만회하지 못하고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의 후반에서는 전임의 엄마와 외삼촌이 틀어진 이유를 통해 그 실패를 전임에게서 만회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그 때문에 전임의 외삼촌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 멈춘 삶을 사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혼, 빨갱이, 블랙리스트로 흐르는 낙인들은 외삼촌의 '실패'를 지시하고 이를 실패를 안긴 당사자가 아닌 비슷하거나 다른 인물에게서 실패를 풀어가는 모습은 말 그대로 끝없는 '촌극'이었다. 회화과 정교수와의 연애를 밝히는 장면에서 '이제는 편한 사람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자포자기와 그로 인한 안도감이 스며있다.
아무리 인정받는 배우의 자리에 있게 해준 과정이 있었을지라도 그 과정의 결말이 계속 미뤄진다면 쳇바퀴를 도는 인간이 된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표현처럼 끝내고 싶을 때 끝을 낼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의 보이고 싶지 않은 밑바닥을 지켜준다. 이와 같은 배경을 토대로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회유성 민물 어류인 민물장어를 수미상관의 구조로 채택한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촌극의 또 다른 뜻
영화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감독의 개인적인 서사만을 의도하고 쓰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앞선 홍상수의 감독론에 의해서라면 경험에 의존한 부분이 일정 들어갈 수도 있지만 기존의 이야기와 반전되는 부분이나 이야기를 재생산하는 측면을 더욱 목표로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생산은 관객들의 삶의 측면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밝은 빛이 드는 강의실에서 4명의 학생과, 또 랜턴을 든 채 어둠에서 3명의 학생을 만나는 전임은 양과 음을 자유롭게 오가는 관찰자다. 텍스타일 교수인 그는 한강의 하류에서부터 상류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강의 흐름을 반전시킨 'Flowing Water'라는 작업을 직조하고 있다. 베를 짜는 데에 드는 시간은 5cm에 1시간 정도로 천천히 진행되는데, 때문에 전임은 머릿속에 실물을 두고 의심 없이, 몸을 움직이는 데 집중하여 작업한다.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에 다다르는 한강에 얽힌 대서사는 흘러가는 한강 앞에서 작게 반복되는 물결이 되고 물결들이 하나씩 모여 다시 한강이 된다. 작고 가벼울 수 있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중력조차 거슬러 자유로울 수 있다. 전임이 영화의 끝에 반복하여 외친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아무것도."라는 대사는 의미부여의 행위인 키치(Kitcsh)를 지시하며 키치는 곧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결국 본질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만든 이유인 키치가 본질이 된다.
앞서 촌극의 두 가지 의미를 살폈지만, 사실 촌극에는 세 번째의 뜻이 존재한다. 마디 촌에 틈 극, 얼마 안 되는 짧은 겨를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계절의 사이, 환절기라는 짧은 겨를에서 시작과 끝을 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