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누군가에게 너무 특별한 당신

흐릿함의 경계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오채린 작가를 만나다
글 입력 2024.10.1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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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는 사람일수록 보지 못한 사각지대가 있기에, 한층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보는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으로 지인 인터뷰를 시도했다. 동료로서, 친구로서, 그리고 그의 작품을 너무나 사랑하는 팬으로서 오채린 작가를 꼭 한번 인터뷰하고 싶었다. 필자의 스탠스는 앞선 역할들이 계속하여 변경되며 진행됨을 느꼈다. 편하면서도 낯설고, 접속되었다가 새로운 영토를 계속하여 발견하는 시간의 두루마기를 펼쳐볼 것이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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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사진을 기반으로 다매체를 다루는 작가 오채린입니다.

 

 

 

저는 채린님을 오프라인에서 뵙기 전에 인스타그램의 @9uimoro 사진 계정을 통해 먼저 알게 되었어요. 스무 살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진, 넓은 분야에서 보면 예술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먼저 그림을 그리다가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요. 그림은 정말 자연스러운 이치처럼 시작했고 그닥 특별하지 않은 이유로 계속 해나가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줄곧 보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그림을 그렸어요. 아빠 따라서 싱가폴에 오래 살았었어요. 외국인이다보니 입학 수속이 쉽게 되지 않아 하루종일 집에 있는 날들이 많았는데, 아빠가 회사에서 가져오는 산더미 같은 이면지들에 계속 그림을 그렸어요. 입학 이후엔 제 그림을 통해서 현지 친구들과 친해졌어요. 뭐 그리냐고, 자기도 그려달라고 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건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고,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나를 소개하고, 사랑 받는 방법이기도 했어요.

 

사진은 한국에 돌아와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아빠가 카메라와 사진을 좋아해요. 2-30대였을 때 사진 찍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하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어느 날 노을 찍는 것을 보시고 마음에 들어하셨는데, 이상하게 그게 마음에 콕 박혔어요. 그래서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20살 때 아빠가 캐논 80D를 선물해줬고,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기기로 모든 촬영을 하고 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가 않네요...

 

 

 

채린님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았거나 볼 수 없었던 부분들을 부드럽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점에서 생경함과 안정감이 함께 들어요. 특히나 여성의 살이라는 물성을 많이 담으셨는데 특별한 이유나 얽힌 이야기가 궁금해요.


 

항상 가장 부드럽고, 껍질 없이는 오래가지 못할 것 같은 물성을 좋아해요. 그게 솔직함과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애요... 사진을 찍을 때요. 곧 쥐어박아도 저항하지 못할 자세들과 몸을 좋아해요. 카메라라는 무기 앞에서 힘을 빼며, 저항하지 않고 무방비해지는 신체들을 보면 나를 믿는 것 같아요. 그래서 〈Exposed & Cared〉 시리즈를 촬영했었어요. 어떤 사람들 앞에선 저의 카메라가 무기가 아닌 보호 도구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요.

 

페미니즘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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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거의 여성(으로 일컬어지는 신체를 가진)분들과 작업을 하잖아요. 그래서 남용되고 오용되는 신체를, 저도 카메라라는 똑같은 도구를 들고 도대체 어떻게 다르게, 안전하게 찍을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근데 결국엔, 저와 모델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성으로 귀결되는것 같아요. 모델분께서 저와 존재하고, 저에게 찍히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상처받을 사진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예술을 전공하고 있지만 인물사진을 찍는 게 왠지 낯설고 두렵더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피사체와의 관계인 것 같아요. 피사체가 인물이 되면 사진에 살아있는 생명이 담기게 된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기 쉽지 않아요. 채린님은 인물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시나요? 


 

관통과 방어의 관계라 생각해요.

 

촬영하는 동안 모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요. 짧은 시간 동안 모델의 얼굴과 몸짓을 이해하고, 따라가며 꿰뚫어야 해요. 뚫어져라 보면서요. 그에 반해 모델 분은 대왕오징어 눈알 같이 커다란 카메라 렌즈를 앞에 두고 자신 안으로 빠져들어야 해요. 카메라의 노골적인 시선을 이겨내야해요. 그래서... 저는 찍히는 거 못 하겠어요.

 

질문 전의 말을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지만요,

 

사람을 찍는다는 거, 묘하게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어요.

 

살아있는 사람의 특정 순간을 영원히 박제 시킨다는 게 그랬어요.

 

근데 모델을 신뢰하고, 솔직하고, 나를 신뢰하는 몸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친구들을 찍을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지금은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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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업을 포괄한 자신의 작업을 할 때 전체적으로 공명하는 주제가 있을까요? 또한 작업의 루틴도 궁금해요!


 

경계와 사랑 대해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귀신’, ‘영혼’, ‘꿈’ 과 같은 존재와 소재를 주로 사용해요. 물리/정신적으로 경계에 서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넘어올 수도 있고, 넘어갈 수도 있는 흐릿한 것들이요. 증명 되지 않지만 경험하는 묘한 것들이요... 그런 것들에 계속 마음을 쓰나 봐요.

 

대체적으로 이방인의 입장에서 작업을 서술해요.

 

그게 편해요. 어디에 소속된다는 건 사실 이상한 것 같아요.

 

사진을 오래 해왔고, 사진 기반으로 회화와 영상으로 넘어가다 보니 작업 속에 주인공을 두고 배경 또는 세계와 분리 시키는 것이 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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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루틴이 구체적으로 정해져있지 않아요. 다만 하루에 4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꼭 지키려고 해요. 무너지지 않으려면 작업을 해야하더라고요.

 

산발적으로 작업을 진행해요. 동시에 통제형이라 스트레스 받을 때가 많지만요. 예로 들면 개념을 완성하다가 재료의 물성에 꽂혀 새로운 작업을 파생시키고, 그 과정에서 저의 주축을 이루는 키워드를 다시 발견하고 본래 작업으로 돌아와 이어가요. 정리가 잘 되지 않지만 마감 기한이 없거나 말리는 사람이 없는 한 혼자서 재밌게 해나가요.

 

‘과정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순간에 작업을 멈춰도 보기에 괜찮아야 해요. 반대로 생각하면요. 괜찮지 않으면 작업을 멈추지 못한다는 뜻이고... 비슷한 맥락으로 작업하는 도중에 주변이 어질러져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예술을 지속하는 동력은 어디서부터 나오나요?


 

무조건 사람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없었다면 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살아가고 사랑 받기 위해 시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까 예술은 제가 살아가는 이유와 같아요.

 

사람에게 상처 받고, 사랑 받고, 그런 게 끝이 없고, 그렇게 사람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하고,

사람을 찍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니까 저에게 동력은 사람이 맞아요

 

 


앞서 싱가폴에서 7년을 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셨다고 하셨는데 보편적으로 이주에서 오는 정서들은 계속하여 문제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와 현재의 신체가 놓인 곳이 크게 달라진다는 게 사람의 가치관을 바꾼다고 생각해요. 채린님의 작업에서도 디아스포라에 대한 고민을 작업에 풀어낸 것을, 저희가 같이 진행했었던 〈motherland: 大地〉 전시에서 엿볼 수 있었어요. 현재 채린님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성별과 국가적 정체성에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은 제가 꾸준히 가지는 혼란이에요. 종착지에서 성별이든 국가적이든 모든 게 결국 의무를 갖게 되면서, 뭔가 미래를 생각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저는 또 그건 아닌 것 같아 미래가 상상이 안 돼요.


그러니까 엄청 오랫동안 매일매일 싱가포르 가는 꿈을 꾸는데,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 공항에 딱 내려서 내리는 수속 밟는데 딱 깨요. 공항 밖을 나가지 못하고 그게 저한테 좀 되게 상징적이었어요. 그래서 공항이라는 걸 키워드로 그때 바다로 수영장 만들기 영상으로 했던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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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싱가포르 사람들이 더 친절했어요. 거기를 그리워하는 이유 중 하나도 오히려 이방인으로서 거기서 받아들여졌을 때의 기분이 그나마 나았어요. 한국에 왔을 때, 갑자기 똑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들한테 배제당하는 그 경험이 저는 너무 고통스러웠거든요. 한국 오자마자 막 교복을 입어야 했어요. 근데 제가 제일 큰 사이즈를 입었는데 안 맞는 거예요. 싱가포르 교복이 엄청 사이즈가 많아요. 그리고 한국말 못한다고 갑자기 욕하면서 가요. 저는 욕 아예 할 줄도 몰랐었어요. '바보'라고 말하면 싱가포르에서는 교장실에 간단 말이에요.


싱가포르에서 돌아왔을 때, 제가 되게 퇴화해 있다고 느꼈던 게 받아쓰기를 계속하는 줄 알고 초등학교 6학년 때도 혼자서 받아쓰기 연습을 한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는 제 여권이 왜 한글로 쓰여 있는지도 의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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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린, 전생 serie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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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린, 전생 series, 2024

 

 

 

국가 간의 간극과 차별에서 정말 많은 혼란을 겪으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채린님 말씀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그냥 요즘 정체성을 정체성 짓기를 포기했어요. 어찌 보면 정체성이라는 걸 소속되고 싶다는 감정 같거든요. 하지만 소속된 정체성에서 모순을 더 많이 느낀 것 같아요.


 

비슷하게 성적 정체성 모호함이 그렇죠. 근데 또 마냥 퀘스처너리로 남는 것도 그냥 진짜 내 인생이 퀘스천이 되는 것 같아서 싫어요. 계속 퀘스처너리로 살면 내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내가 변하는 것 같아요. 내 정체성이요. 

 

그러니까 만약에 지금 여자를 만나면 그냥 난 지금 레즈비언인 것 같고 만약에 내가 싱가포르에 가 있으면 나는 싱가포리안이 된 것 같고 한국에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한국인 것 같고 약간 이런 거 있잖아요.

 

 

 

결국 정체성도 결과물로서 보일 때 사회에 승인받는 것 같아요. 그 정체성에 따라 행동하고 그것이 관계적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그렇네요. 그러니까 계속 뭔가 엄청 진심이 있어야지만 인정받는 사회가 예술도 그렇잖아요. 내가 이만큼 연구를 했고, 나 이만큼 책도 읽고, 이만큼의 그림도 그렸고, 이 분야에서 진짜 이만큼 깊이 팠고, 약간 이런 지표들 같은 게 분명하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지기가 너무 쉬운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어떤 진정성, 제도권에서 인정을 받고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진정성이라고 해야 되나요? 인정받을 수 있는 진정성이라고 해야 되나요? 진정성 자체보다는 입증에 가까운데, 사람들이 봤을 때 그게 진정성이라면 그런 것같아요. 그러니까 진짜 그 마음에 뭐가 담겼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닌 것같아요. 대중들한테.

 

스스로 제가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진짜 사이에 발만 살짝 걸치고, 진짜로 발을 못 담고 그래서 한 발 정도만 담그고 다리를 벌리고 있는 느낌같아요.

 

 

 

아까 종착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사실 저도 미술 하면서도 이제 맞는지 모르겠고 이 작업이 결국 미술관, 제도권 미술에 포섭되는 게 최종장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또 정답은 아닌 것 같고요.



저는 불안감에 계속 작업을 하는 것 같거든요. 지금 작업 안 하고 놀면 작업 못할 것 같은 느낌이고, 인정 못 받을 것 같은 느낌. 포트폴리오를 이렇게 꾸준히 쌓아왔다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고, 지금이 아니라 계속 최종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그 최종은 이제 미술관에 들어갔을 때고, 거기까지 들어가는 길이 너무너무 막막하거든요.


결국 거기 안에서 내 위치를 생각한다면. 솔직히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미술을 엄청나게 빨리 시작한 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잖아요. 대학교 끝날 때까지 미술을 하잖아요. 그 기간 매일매일 열심히 예술을 했는데 학부가 끝나야지만 진짜 예술 경력이 시작되는 느낌이라 그게 저는 되게 싫어요. 불합리하다고 느껴져요. 

 

 

 

그렇다면 좀 더 저희의 현재에 집중한 질문을 해볼게요. 현재 하고 싶은 작업이나 기획의 구상이 있으신가요? 저는 엄청 커다랗고 동그란 조형물을 만들어서 우리 학교 밑에서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는 퍼포먼스가 하고 싶어요.


 

재밌겠다. 저는 그거 하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제일 높은 데에서 수동 샤워하기. 그러니까 친구들이 위에서 물을 부어주고, 저는 샤워부스 안에서 샤워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눈물이 이 학교 밑에까지 흘러가는 그런 걸 찍고 싶은데 이제 추워져서 안 돼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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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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