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랑하니까 더 알고 싶은 - 머니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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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 빌리 빈, 영화 [머니볼] 中
2001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우수한 성적으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우승을 거두고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한다. 모든 팀들의 염원인,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향하는 관문에서 자신보다 세 배가 넘는 페이롤(선수들의 총 연봉)의 뉴욕 양키스를 만나게 된다. 승자는 뉴욕 양키스. 오클랜드는 분전을 펼쳤지만 끝내 패해 윌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한다. 좌절할 새도 없이 팀을 재정비해 다시 대권에 도전하려 하지만,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는 기존 전력을 유지하는 것조차 벅찼다. 팀을 지탱하는 주축선수들이 부자 구단들에게 거액의 연봉과 계약금을 제안 받았고 오클랜드는 이들을 붙잡을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이하 빌리)은 가난한 팀의 자금 사정을 받아들이고 적은 돈으로 최선의 팀을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에서 자신이 제안한 트레이드를 훼방 놓은 직원, 피터를 오클랜드로 스카웃한다. 피터는 당시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세이버매트릭스를 적극 도입해 선수들을 분석해 빌리에게 추천했고 빌리는 그 제안을 따른다. 그렇게 빌리 빈과 피터는 저렴하지만 평가 절하된 선수들을 끌어 모아 떠난 선수들의 빈자리를 메꾸는 변혁을 시도한다.
이러한 선수 영입의 방식은 기존 야구 상식을 뒤집는 개혁이었다. 필연적으로 빌리의 계획은 온갖 반대에 부딪히지만 그는 자신의 방식을 믿고 고수해 나간다. 이것이 간략하게 소개한 [머니볼]의 줄거리다. 그리고 영화 사이사이에 빌리의 과거 선수생활이나 멀리 떨어져 사는 어린 딸과의 이야기가 적절하게 삽입되어있고, 이는 빌리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머니볼]은 많은 관객과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수작이자, 인생의 이정표를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영화이다. 실패한 자신의 선수생활을 회피하지 않고 또렷하게 직시하여,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발판으로 삼은 빌리의 서사는 한계를 뚫고자 하는 이들에게 분명히 강렬한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장점은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느낄 수 있게 영화속에 수려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작은 문제가 있다면 이 영화를 역경극복의 서사가 아닌, 야구의 본질을 찾아가는 영화로 볼 때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영화 속에서 세이버매트릭스가 무엇인지, 왜 출루율을 중시하는 지 등 세부적인 요소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두 시간의 러닝타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히 야구의 룰을 아는 것만으로는 당시의 오클랜드, 빌리가 추구하는 야구를 이해할 수 없다. 20여 년 전에 메이저리그의 상식을 뒤엎은 빌리의 개혁은, 현재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방식이 되었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이제야 서서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머니볼]과 빌리가 주창한 야구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쓰여졌다. 만약 용어들이 생소하더라도,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예시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승리의 열쇠는 감춰진 지표에 있었다 - 출루율, 그리고 OPS
현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입한 1루수 스캇 해티버그,
볼넷 출루가 장점이며 오클랜드의 20연승을 이끈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야구장에 가서 전광판을 보거나, TV에서 선수가 소개되는 것을 볼 때 선수 이름 옆에 병기된 숫자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최근에는 OPS를 표기 해놓는 경우도 있다- 그 숫자는 타자의 타율이다. 타율은 타자가 안타를 칠 확률을 뜻하는 용어로 타자의 타격실력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이며 타율이라는 개념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여겨져왔다. 그러나 빌리는 타율보다 출루율이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되는 지표라고 보았다. 출루율은 말 그대로 출루, 타자가 낫아웃 삼진, 실책, 야수선택 등 상대팀의 과실로 인한 경우를 제외하고 1루를 밟을 확률을 나타낸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타율은 타자가 안타를 칠 확률이고 출루율은 타자가 출루를 할 확률이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안타를 기록했을 때만 수치가 상승하는 타율과 달리 출루율의 경우 안타와 더불어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을 때도 수치가 올라간다. 즉, 안타를 많이 치지 못해 타율이 낮은 타자일지라도 볼넷을 많이 골라 높은 출루율을 기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랫동안 타율은 타자를 평가하는 가장 훌륭한 지표라고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빌리는 타율 대신 출루율이 더 승리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지표라고 평가했다. 이 평가에 대한 이유가 [머니볼]에서 나타나는 혁신의 핵심이자 야구의 본질이다.
야구는 9회말 쓰리아웃을 잡으면 종료되는 게임이다. 즉,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동안 상대방보다 점수를 더 많이 빼앗으면 된다. 빌리는 ‘점수를 더 많이 빼앗으면 된다’는 세간의 인식 대신 ‘27개의 아웃카운트’에 집중했다. 3개의 아웃카운트가 쌓이면 공수가 교대되는 야구의 특성상, 상대에게 손쉽게 아웃카운트를 뺏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기에 번트와 도루 시도를 선수들에게 자제시킨다. 한 베이스를 더 가기 위해 아웃카운트를 희생하는 댓가를 치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빌리가 선수들에게 도루와 번트를 자제시키고 있다
타율은 타자가 안타를 치는 경우만을 상정하지만, 출루율은 빌리의 깨달음대로 아웃을 당하지 않는 경우를 모두 상정한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아웃카운트를 쌓아 경기를 쉽게 풀어나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훌륭한 지표인 출루율이 타율의 그늘 아래 가려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저평가. 이것이 핵심이다. 출루율이 저평가를 받는다는 말은 출루율만 높은 선수는 상대적으로 타율만 높은 선수보다 낮은 평가를 받기에 몸값이 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오클랜드는 돈이 늘 부족하다는 것이 결부되어, 빌리는 출루율이 높고 저평가된 선수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빌리가 영화 내내 온갖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출루율을 고집하는 이유다.
위 부분만 이해해도 영화를 이해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욕심으로 심화 단계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타자가 배트를 휘두른다. 그리고 공이 맞는다. 이 타구는 어디로 갈까? 안타가 될 수도, 홈런이 될 수도 있지만 땅볼이나 뜬공이 되어 상대방의 아웃카운트를 손쉽게 늘려줄 수도 있다. 즉, 공이 타구에 맞는 순간부터 타자가 1루에 살아나갈 수 있는 확률은 온갖 변수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지는 공을 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쌓은 볼이 4개가 된다면 타자는 어떠한 변수에 휘말리지도 않고 1루로 천천히 걸어나갈 수 있다. 당연히 아웃카운트는 온전하다.
컴퓨터로 분석한, 승리를 향한 변수를 줄이는 행위. 그것을 가장 충실하게 수행한 결과는 볼넷이다. 아웃카운트를 쌓지 않는 가장 확실한 기록이다. 그 다음 순위의 결과는 홈런이다. 이유가 짐작이 가는가? 홈런은 담장 밖으로 공이 넘어갔을 때 발생하는 기록이다. 즉, 상대방 수비가 전혀 개입할 수 없기에 투수의 구위 이외에는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의 다 왔다. 이제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시간이다. 볼넷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지표는 출루율이고, 홈런을 포함한 장타로 상승시킬 수 있는 지표는 장타율이다. 가장 승리에 도움이 되는 두 지표. 단순하게 이것들을 더한 개념을 OPS라 한다. 관계가 거의 없어 보이는 두 지표를 단순히 더한 값인 OPS. 그것은 타자가 팀의 승리에 얼마나 기여하는 지 거의 정확하게 평가한다는 찬사를 받았고 그 평가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왜냐하면 현대통계학의 산물로 다양한 타격지표가 개발되었지만 대부분 OPS와 수렴하는 결과값을 내었기 때문이다.
빌리의 혁신은 현재도 야구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클랜드는 미래는?
현장에서는 빌리의 혁신을 거부했지만, 결국 그것은 보편이 되었다
볼넷과 홈런을 중시하는 빌리의 야구관은 현재까지도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타자들은 홈런을 치고 볼넷을 고르며 OPS를 향상시키기 위한 타격을 수행했고, 그 결과로 리그 평균 타율은 매년 최저치를 갱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20여 년의 전, 빌리가 제안했던 개혁은 결국 보편이 되었다.
가난한 팀, 오클랜드의 우승을 위해 많은 반대와 맞서 싸운 빌리는 지금도 오클랜드의 수석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그렇다면 현재 오클랜드는 스몰 마켓의 한계를 넘어서고 부흥하는데 성공했을까?
아쉽게도, 현재 오클랜드는 최악의 위기를 견디고 있다. 빌리 빈 단장 체제 아래, 적은 돈으로도 꾸준하게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오클랜드는 줄어드는 구단 수입과 새로운 단장 취임 후 번번하게 실패하는 트레이드로 인해 작년과 올해 모두 하위권을 전전하며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부진은 탈출하면 그만이고 오클랜드는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저력이 있는 팀이다. 역경을 극복한 수많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똘똘 뭉칠 수 있는 응집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 오클랜드는 부진한 성적 이외에도 해결해야 할 외부적 요인을 안고 있었다. 연고지인 오클랜드가 과거의 영광을 잃고 쇠락해가는 탓에 불안한 치안, 저조한 관중수와 신 구장 건립 난항 등 다양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오클랜드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다고 판단한 애슬레틱스는 결국 라스베이거스로 연고지 이전을 단행한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분노한 오클랜드의 팬들은 ‘Sell the team’, 구단을 팔라는 의미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며 시위를 벌이지만 애슬레틱스의 라스베이거스 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오클랜드를 떠난 애슬레틱스는 내년부터 삼 년간 새크라멘토를 임시 연고지로 삼은 뒤, 라스베이거스에 새 보금자리를 틀게 된다. 애슬레틱스는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시 혁신을 펼칠 수 있을까. 그리고 갖은 노력에도 월드시리즈 우승까지는 달성하지 못한 빌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마무리하며
당신이 야구의 세계 속으로 빠지길 바라며, 이미 빠졌다면 당신의 세계가 깊어지길 바라며 [머니볼]과 메이저리그, 그리고 야구의 본질에 대해 소개해 보았다.
필자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야구를 접해 현재까지도 열심히 즐기고 있다. 그렇기에 이 운동에 대해 어느정도 통달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럴때마다 한계에 봉착해 종종 슬럼프를 겪곤 한다. 이래서 사람들이 야구에 미치나보다. 알아도 알아도 끝이 없고, 정신 차리면 새롭게 배워야 하는 플레이나 접근법이 생긴다.
종착점이 없는 운동이다. 그래서 영화의 명대사처럼,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운동이다.
[김한솔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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