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10억 개의 세상,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많이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글 입력 2023.12.3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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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상은 왜곡되었다.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보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다. 친구들과 기억 저 편에 묻어 아득해진 10년 전의 여행을 회상해보라. 우기에 여행을 다닌 탓에 비 냄새가 가득한 대만을 떠올리는 나와 달리, 한식을 좋아하던 친구는 길거리에 넘실대던 기름 냄새로 대만을 기억한다.


많은 성현들과 자기계발서에서 우리 모두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데에는 수천개의삶의 지혜가 축적된 바가 틀림없다. 차라리 우리의 눈이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개인의 정신건강과 타인과 조화로운 인생을 도모하는 것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좋다.


그것을 또 한 번 여실히 느꼈던 경험은 맥스 달튼의 그림들을 둘러볼 때라고 말할 수 있다. “화가의 작업실” 연작은 특히 그러했는데, 같은 하늘 아래에서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화가들의 가지각색의 작업실들이 담긴 화폭은 ‘우리 모두가 같은 세상에 태어나..’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으로 다시금 머릿속을 휘저어 두기에 충분했다.


1) 모든 화가는 각자 세상을 다르게 보았다. 2) 맥스 달튼 역시 화가다. 3) 화가가 아닌 대중들도 제각각의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다시,

1) 모든 화가는 각자 세상을 다르게 보았다. 2) 맥스 달튼은 화가들을 보고 있다. 3) 나(를 비롯한 전시회의 사람들)는 맥스 달튼의 렌즈로 화가들을 보고 있다. 4) 나(를 비롯한 전시회의 사람들)는 맥스 달튼을 보고 있다.


나는 시선이 교차하는 경우의 수를 세어 보며 복잡한 심경으로 그림들 앞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서 혼자 전시를 보러 갔다면 절대 알아채지 못했을 사건이 발생했다. “화가들 대표작을 뺀 부분은 누가 봐도 맥스 달튼 그림첸데?” 내 옆에 있던 눈 한 쌍이 그림으로 다시금 훑으면서 말했다.


“화가의 작업실” 연작의 그림 요소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화면 중앙에는 각 화가들의 대표작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 화가들의 모습과 그들의 습관이 묻어난 작업실 풍경으로 나머지 부분이 구성되어 있다.


수십명의 화가마다의 다른 화풍과 작업실에 집중하고 있던 나의 시선을 위로 끌어올린 건 친구였다. 맥스 달튼 역시 화가라는 점을 망각했었다. 그렇다면, 나와 내 친구는 ‘이 연작은 화가들의 화풍이 뒤섞인 것’이라는 동일한 사실을 앞에 두고 같은 감상평을 내놓았을까? 누군가와 함께 작품을 감상해 본 적이 있는 모두가 이 멍청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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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인구가 10억명이라면 10억쌍의 눈이 있다. 그리고 서로의 시선이 교차한다. 교차점은 축적되어 빛이 투과되지 않는 큰 지층을 형성하기도 한다. 또다시, 매일매일 새로 발생하는 n개의 사건에 대한 시선을 셈해보려고 하면, 금세 무수히 많은 시각을 뭉뚱그려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지혜가 발현된다. 지구의 인구가 10억명이라면 세상은 족히 10억개의 10억 제곱개는 넘을 것이다.


화가의 작업실 뿐만 아니라, 익히 유명한 영화들을 재해석한 맥스 달튼의 작품들은 단순히 ‘그들의 열렬한 팬인 달튼’을 넘어선다. 달튼은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고, 예술가들이 드러내고자 했던 물감 한 방울까지도 잡아내어 캔버스 위의 새 한마리가 되어 날아갈 수 있게끔 조명했다.


한 개의 작품은 균등하게 구획되어 있고, 각 영역 안의 구성들은 동일한 수준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어떤 것이 주인공이라고 칭하기보다 다른 위치에 눈을 대면 각각의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 달튼의 특징이다. (각도를 조금만 틀어 본다면, 순식간에 다른 장면이 되기 일쑤다)

 

큰 그림과 작은 것들, 그것들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작은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다 보면, 큰 그림 역시 아름답겠지? – 아니, 슬럼이 거북하다가도, 안쪽의 삶들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듯이, 아름다운 것들의 전체가 아름답지는 않을 수 있지. – 그럼 멋지고 거대한 그림의 모든 것은 아름다웠나? – 그럴리가.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괜히 생겨났을까.


이런 생각들을 거치다 보면 지쳐 떨어져 비관적인 생각들에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땅의 모든 모래가 나를 끌어당기면서 수분을 머금어 짓누른다. 그래서 모든 작은 것들에 큰 그림과 같은 크기의 시선을 부여한 달튼에게, 내 취향이 아닌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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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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