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들어 버린 꽃다발을 어떻게 해야 할까 -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영화]

글 입력 2023.12.1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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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어느 연애와 다를 거 없이, 시들어가는 사랑을 했다. 하지만 꽃다발을 받았던, 바라보던, 장식하던 그 순간만은 영원한. 그런 사랑을 했다.

 

 

 

내 보폭에 맞춰준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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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을 소개를 하는 게 크게 의미는 없을 거 같다. 그저 20대 초반 두 남녀의 평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연애 이야기이다. 서로가 첫사랑 이지도, 어떤 특별한 장치가 있지도 않다. 그저 말이 잘 통하고 취향과 취미가 겹치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다.

 

최악의 하루라 할 수 있는 날 막차를 놓친 두 남녀, 우연히 함께 가게 된 카페에서 발견한 우연한 취향. 그리고 우연하지 않은 대화들.

 

영화를 보면서 느낀 특이한 점이 있었다. 2시간 동안 두 인물을 계속 보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 둘에 대해서 연애 외에는 알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연애를 하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들의 가족들은 어떤 사람인지, 학교생활은 어땠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정말 이 둘의 연애만을 담아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둘이 사랑을 했다는 것 뿐이었다.

 

그 외의 것들을 빼 버리고 담백하고 현실적으로 이 둘의 연애 서사를 풀어냈다. 헤어지고 난 후에 우연히 재회했을 때도 새로운 애인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동안은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그저 마주친 것이 끝이었다. 흔한 레파토리인 마주친 후 “항상 그리워했어” 이러한 내레이션 없이, 서로를 그리워하지도 않는 결말. 왜인지 모르게 더 마음이 아파졌다. 이렇게 담백한 두 사람의 재회는 나에게는 담백하지 못한 여운을 강하게 남겼다.

 

 


사랑의 죽음을 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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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에 빠졌다.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서로를 놓아줄 수 있었던 이유, 헤어짐에 뼈저리게 아파했지만 금세 일상을 마주할 수 있었던 이유.

 

이 둘의 연애와 삶을 대하는 가치관은 차이가 있었다.

 

무기는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었고, 키누는 함께 ‘즐겁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무기는 지금의 상황이 어떻든 나중을 위해, 흔히들 연애의 최종 목표라 생각하는 결혼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키누는 연애의 목표를 결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키누는 서로가 함께 있을 때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연애의 목표라 생각하고 결혼은 수단에 불과하였다.

 

물론 이러한 표현이 영화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이 둘의 대화와 일을 대하는 태도로 반영되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현실에 부딪혀 취직한 회사 임에도 더 나은 삶을 위해 버티는 무기, 현실에 부응하기 위해 취직했지만 끝내 자신이 즐겁고 원하는 일을 위해 안정적이고 더 나은 수입을 포기한 키누.

 

이들도 이를 알았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즐거웠어”, “행복하게 지내”라는 말로 이별을 고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사랑하지 않고서야 어찌 꽃다발을 선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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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의 결말은 영화 제목에서부터 나와 있다. “사랑을 했다”로 이미 사랑했던 과거를 추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고자 한 마음엔 제목이 끌리는 이유도 있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영화 제목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일까? 영화 속에서는 꽃다발이 중심적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금세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말이 이 영화 속 연애, 어쩌면 흔한 연애 자체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꽃다발은 선물 받는 것만으로도 너무 설레는 일이지만 주는 것만으로도 참 가슴 설레는 일이다. 사랑을 받는 것에 못지않게 주는 것도 가슴 벅차듯 말이다.

 

그렇게 받은 꽃다발을 바라보고, 잘 보이는 어딘가에 두며 간직하고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분명 그 자리에 계속 있었지만 있었는지조차 확실치 않을 때, 꽃은 이미 시들고 있을 것이다. 정작 그때는 알지 못한다. 나중에야 이미 시들어버린 꽃을 마주할 뿐.

 

우리는 이미 시들어버린 꽃을 마주했을 때 선택을 해야 한다. 꽃을 처분할지. 계속 보관할지 말이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가차 없이 꽃을 버릴 수도 있고, 잘 말려 유리병에 담아 새로운 형태로 계속 보관할 수도 있고, 애써 모른 척 가지고 있다가 결국 향기가 악취로 변하고 벌레도 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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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랑은 받는 것도, 주는 것도 가슴 벅찬 일이다.

 

그렇게 사랑을 이어가고, 마음속에 사랑이 확인할 때면 늘 행복으로 가득 찰 테지만 이를 더 이상 확인 하지 않을 때, 사랑이 식어갈 때.  때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간 사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음을 마주할 테다.

 

그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 사랑을 모른 척 해야 할지, 아니면 헤어짐을 고해야 할지.

 

꽃은 시들어가고, 사랑은 식어갈 테니. 꽃은 식어가고, 사랑은 시들어 갈 테니.

 

영화 속 이들은 그 꽃을 처분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차 없이 버리지 않았다. 꽃을 받았을 때, 그 꽃들을 바라보며 간직할 때의 소중한 추억을 남긴 채로 소중하게 처분했다. 꽃다발을 받은 그 소중한 순간들을 지키기 위해.

 

꽃다발은 사라져도 그 순간만큼은 영원하다. 꽃다발을 주고받을 때의 그 설렘은 꽃다발이 사라지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더 이상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아도, 사랑했던 그 순간만큼은 영원하다. 그것은 미련일 수도 있지만 추억일 수도 있다.

  

 

 

이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 막 부스럼같고 떼어내고 싶어져


  

현실적인 영화라는 평이 참 많은 영화이다. 20대 초반에 사랑으로 가득 찬 연애를, 그리고 그 연애를 가로막을 장애물에 하염없이 무너지는 연인을 현실적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은 바로 이 둘의 헤어짐이었다. 열렬하게 사랑했음에도, 오히려 열렬히 사랑해서 담백한 이별을 맞이했다는 것. 우연한 재회에도 아무런 요동 없이 서로를 지나쳤다는 것. 그리고 그 후 또 다른 어떠한 접점도 없었다는 것.

 

영화로서도. 그저 연인으로서도 너무 담백해서 오히려 현실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면서 이별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던 장면은 다름 아닌 이들이 사랑으로 가득 찬 일상을 보내는 장면들이었다. 이미 이들도 남들과 다름없는 이별을 맞이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꽃다발이 생각나서일까?


영화 속에는 신발과 하얀색 데님 바지 등 이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들도 있었지만, 그저 달라진 이 둘의 서로에 대한 태도로 그들의 사랑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현실적이고 평범하지만, 특별한. 누구나 한번 즈음 받았던 꽃다발을 떠올리게 해줄 영화이다. 물론 그 꽃다발을 어떻게 했느냐는 다들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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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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