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를 환영하는 사회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10.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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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향형 인간이라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일에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뺏긴다. 그래서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거의 만나지 않는 편이다.

 

처음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내가 이 일을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다. 아이들은 성인들보다 훨씬 시끄럽고, 제멋대로일 것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자체가 안되는 존재들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런데 약 석 달간 아이들을 가까이 접하며 생활해 온 지금, 나는 이 일이 ‘힐링’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감동하게 되는 때가 꽤 자주 온다. 예를 들어 ‘선생님은 무슨 색 좋아해요?’라고 물어보고는 그 색의 종이를 오려서 나에게 갖다준다거나, 제법 서늘한 계절임에도 ‘선생님 더워요?’라고 물어보고 옆에서 부채질을 해준다거나. 물론 너무 어린아이들이라 조준도, 힘 조절도 되지 않아서 나에게 바람은 전혀 오지 않지만 물어봐 주고 챙겨주려는 그 마음이 너무나 예쁠 따름이다.


만두 인형과 아이스크림 모형을 챙겨와서는 나에게 어떤 걸 더 먹고 싶은지 물어보는 아이도 있다. 둘 다 좋아한다고 대답해 보았다. 아이는 요리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손바닥만한 모형 찜기를 내어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말랑말랑한 만두 인형이 있었다. 뜨거운 척 호호 불어가며 먹는 시늉을 했더니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다.


그다음엔 아이스크림을 맛 종류별로 꺼내놓고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물어본다. 바닐라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모형 콘 위에 아이보리색 동그라미를 얹고, 그 위에 빨간색 토핑을 얹어서 나에게 가져다준다.

 

녹기 전에 먹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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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이들을 싫어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30년 넘게 살며 어린 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어 본 적이 올해가 처음인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들을 접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뭘 알아야 좋아할 수 있는데, 아이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 그들에 대해 알 수도, 좋아할 수도 없던 것이다.

 

고작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자극적인 TV 프로그램들뿐이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세상 모든 아이들이 금쪽이로 보여 두려워지곤 한다. 그런 시각을 반영이라도 하듯 한국에는 노키즈존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나이 불문하고 누구든 제약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더욱 많아져야 혐오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형견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린아이들은 나에게 기피 대상 1호이기도 했다. 무슨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난 수년간 아이에게는 나의 강아지에게 인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편견도 조금씩 깨지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한없이 부드럽고 여리고 조심성이 많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아이를 환영하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나의 미미한 심경의 변화가 과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 뿐일 것이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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