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겸허하지만 무한히 자유로웠던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 - 사울 레이터 100주년 기념 에디션

글 입력 2023.10.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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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즐겁지만은 않은 하루들을 살아가다 보면 과연 행복이란 뭘까 궁리하게 된다. 행복의 기준이란 생각하기 나름이니 양껏 행복해하면서 살면 될 것 같다가도, 우리의 행복이 주변의 시선에 너무도 쉽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누군가의 평가로부터 유리되어 자력으로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삶, 순수한 열망만으로 삶의 동력을 얻으며 홀로 자족할 수 있는 삶은 내게 아득하게 먼 이상향이다.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이나 명예 또는 사랑을 행복과 동일시하며 그악스레 살아갈 때, 자신만의 작지만 견고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과연 어떨까.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미국의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일생이 내게는 바로 그런 삶처럼 다가왔다. 한평생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며 '일상을 예술'로, '예술을 일상'으로 삼았던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 거리사진 이외에도 추상 수채화나 페인티드 사진, 스케치북 그림이나 누드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 중 대부분은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예술을 향한 본능적인 애착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어떤 무엇도 그의 예술을 막지 못했다.


사울 레이터는 2000년대 중반, 그가 이미 80대에 접어든 뒤에야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2006년이 돼서야 첫 사진집 <얼리 컬러>가 발간됐고, 그가 세상을 떠난 2013년 이후에도 그의 사진들은 더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이번 10월 출간된 공식 회고록 또한 그의 때늦은 유명세를 보여주는 듯하다. 뉴욕 사울 레이터 재단의 설립자 마깃 어브와 부이사장 마이클 파릴로가 사울 레이터의 아카이브를 연대기적으로 집대성했다. 지금껏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수많은 작품들을 비롯해 총 332점의 사진과 삽화가 실렸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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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하는 글(마이클 파릴로)

 

1. 시작 - 사울 레이터의 숨겨진 세계(애덤 해리슨 레비)

2. 거리에서 - 집 가까이: 사울 레이터의 천재성을 이해하는 열쇠(마이클 그린버그) 

3. 패션 - 빗방울로 뒤덮인 창문: 사울 레이터의 패션 사진(루 스토퍼드)

4. 회화 - 작은 그림, 충만한 삶(아사 히라마츠) 

5. 사적인 시선 - 비밀 지키기(마깃 어브)

 

 

책의 띠지를 벗기자 독특한 표지가 눈에 띄었다. ‘LIGHTER’ ‘Leeter’ ‘LEADER’ ‘Lieter’도 아닌 Saul ‘Leiter’. 철자 그대로의 그의 이름이 아닌 다른 수식어로는 그를 설명할 수 없다는 듯 다가왔다. “무언가를 전복하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마음이 끌리기에 했어요.” “나는 대단한 야망이 있지도 목표가 있지도 않았어요. 남들처럼 성공을 열망하지 않지요. 성공하지 않겠다는 야망은 운 좋게도 이루었지만요.” “나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낭만주의자예요. 가장 사소한 순간들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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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도입부가 되는 ‘시작’ 장은 사울 레이터의 청소년기를 다룬다. 어릴적의 가족사진이나 자화상, 성적표나 학생증처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다채로운 문헌들이 총집합된다. 피츠버그의 유서 깊은 랍비 가문에서 태어난 1923년부터 카메라를 처음 구입했던 1938년경, 회화 전시를 열었던 1945년과 랍비가 되길 바랐던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뉴욕행을 택했던 1946년까지 예술에 눈을 뜬 그의 초창기를 살필 수 있다. 


다음 장 ‘거리에서’는 그가 남긴 뉴욕 거리사진을 모았다. 이때 엿볼 수 있는 사울 레이터의 작품관은 거창한 설명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가 카메라를 집어들고 거리에 나서 셔터를 눌렀던 모든 과정은 오로지 ‘마음이 끌리기에’ 벌인 일들이었다. 오늘날 그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1950-60년대 뉴욕의 거리사진들 역시 일상에서 미세한 초 단위로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순간들을 포착한 작품들이다. 눈앞에 주어진 풍경과 인물에 한해서는 어떤 통제도, 어떤 연출도 가미하지 않았다. 


그런 기교 대신 사울에게는 뻔한 일상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었다. 창문처럼 대상을 반사하는 사물이나 고가교의 철골 구조물 같은 지물을 활용해, 무심한 시선을 거두어야만 목격할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을 담았다. 그래서 그가 기록한 풍경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평범하면서도 동화적이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자기가 찍히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모른 채 각자의 순간에 전념하고 있는 일반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카메라 렌즈로 여과된 그늘진 실루엣이나 쇼윈도에 어렴풋이 비친 형상, 순식간에 포착한 비스듬한 옆얼굴은 한 폭의 그림처럼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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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가 한때 몸담았던 패션계에서도 그만의 스타일은 변치 않았다. 세 번째 장인 ‘패션’에서는 1950년대 말부터 1970년 초까지 ‘하퍼스 바자’, ‘에스콰이어’ 등의 패션 매거진에서 촬영한 화보들이 실려 있다. 패션 화보는 그의 주 수입원이 되어주었던 생계 수단이자 상업성의 끝을 달리는 분야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사울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내려놓지 않았다. 

 

“한번은 보그 스튜디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근처 하노버 광장에 가면 그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다. 광장을 몇 바퀴나 돌아다니다가 탈의실로 돌아왔을 때는 아무래도 그를 놓친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 그런데 정작 사울 씨는 결과물에 무척 만족했다고 한다.” (‘보그’ 스타일리스트이자 전직 모델 그레이스 코딩턴의 회고록)


사진의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에서 잘 차려입은 모델로 바뀌었을 뿐 사울 레이터 특유의 꾸밈없고 몽환적인 화면 구성은 그대로다. 패션 화보임에도 불구하고 아웃포커싱된 샷이나 파파라치컷처럼 자연스러운 샷, 모델의 이미지가 거울이나 유리창을 통해 중첩되는 독특한 샷에서 그의 트레이드마크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잇따르는 다음 장 ‘회화’에서도 그의 사진에서 묻어났던 분위기가 오롯이 느껴진다. 마음 가는 대로 흩뿌리고 덧칠한 물감들이 직감에만 의지해 즉흥적으로 펼쳐낸 그의 예술세계를 드러낸다. 마지막 장, ‘사적인 시선’에서는 사울이 카메라에 담은 누드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생생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그답게 사진 속 모델들도 자기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지만 때로는 도전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생전 그는 모델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 대한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도 책에 실린 몇몇 설명을 제외하고 모델들의 구체적인 정체는 비밀에 부쳐져 있다. 


*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사울 레이터만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자기 존재를 숨기는 동시에 스스로를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들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고 그들을 존중하며 카메라를 든 자신의 몸에만 온 신경을 세우는 것. 대상을 향해서는 한없이 소극적이다가도 카메라 안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뜨겁게 임하는 것. 그는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미련 없이 내려놓았지만 홀로 세운 예술 세계 안에서만큼은 무한한 자유를 누릴 줄 알았다. 


그의 사진이 뒤늦게야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유 역시도 마찬가지일 거다. 카메라는 그의 신체 일부에 가까웠다. 사울에게 카메라는 그저 도구나 수단이 아닌 제3의 시신경처럼 움직였다. 스스럼 없었던 사울의 셔터가 남긴 사진을 감상하다 보면 보는 우리의 몸마저도 편안한 호흡을 되찾는 것 같다. 또한 그의 작품은 사진의 힘 역시 여실히 보여준다. 카메라로 남긴 풍경은 당연하고 뻔한 우리 현실의 일부다. 하지만 평범한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일상 속의 아름다움이, 담담하고도 비범한 그의 시선을 거치니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


책의 뒷표지를 덮고서 리뷰를 쓰는 지금, 그가 남겼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나에게 철학이랄 것은 없다. 카메라가 있을 뿐.” 그의 전부를 꿰뚫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난 으레 예술가의 자기표현이란 세상에서 빛을 볼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는 능력이 곧 예술가로서의 성공, 나아가 행복에도 직결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사울 레이터의 생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야욕이나 야망이라는 단어는 그와 거리가 멀었다. 그의 행복을 충족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예술이라는 행위 그 자체였다.

 

물론 그의 삶을 향해 찬사를 보낼 수 있는 것도 그가 그토록 꺼려했던 유명세 덕분이라는 사실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다. 그의 작품세계가 발굴되지 못했다면, 그의 사진과 그림들이 여전히도 그의 서재에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면 난 사울 레이터라는 존재를 영영 몰랐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결국 중요한 것은 명성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다가도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떤 여건 속에서도 예술의 길을 거부할 수 없었던 그가 끝끝내 예술가로서 이름을 떨친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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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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