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8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되었던 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매년 8월에 개최되며, 정동초등학교와 예술극장 신영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매년 가보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는 꼭 가보리라, 라고 생각하며 정동진 독립영화제를 무려 3번이나 다녀온 친구와 함께 정동진행을 결정했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라는 슬로건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영화제다. 여름날, 해 질 무렵 바닷가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도란도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낭만! 이 때문에 매년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나 또한 이러한 낭만을 기대하고 정동진행을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영화제 기간 내내 화창했던 날씨 예보가 태풍 탓인지 전부 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동진으로 가기 전에는 ‘그래도 비가 그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정동진에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내렸고, 심지어 바람까지 불어 굉장히 추웠다. 역에 내려 나를 집어삼킬 듯 덮쳐오는 거센 파도를 보고 있으니 ‘하필 왜 이런 날에’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상황 속에서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비가 와도 영화제는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갈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정동초등학교로 향했다.
정동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총 33명인 작은 학교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자체의 크기도 아담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학교 앞에는 너른 논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싱그럽게 느껴졌다. 정동초등학교 학생들은 이 논길을 따라 등교하겠구나 싶었다. 매일 이 길을 오갈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낯선 풍경이 한층 더 정겹게 느껴졌다.
다행스럽게도 입장할 때쯤엔 비가 조금 그친 상태였다. 운동장 한가운데의 스크린을 보고 있으니 내가 영화제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친구와 먹을 것을 이것저것 사 들고 영화를 볼 채비를 했는데, 왠지 소풍 온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영화를 본다니, 그리고 심지어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다들 우비 하나 걸치고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니. 왠지 이 상황이 웃겨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8시가 되어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다. 총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단편 섹션 두 개와 장편 섹션 한 개를 볼 수 있었다.
정동진 독립영화제에서 봤던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영화는 마지막 세션의 <철들 무렵>이다. 철들 무렵은 가족의 이야기를 블랙코미디 느낌으로 다룬 영화였는데,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이 많아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 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고민들을 재치있게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무래도 관객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다 함께 웃었고, 영화 속 인물이 비호감 행동을 하면 바로 뒤에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부분들이 영화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야외 상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땡그랑 동전상’ 투표가 진행됐다. 각자 좋았던 작품에 동전이나 현금을 넣어 후원하면서 동시에 투표하는 방식이었다. 관객이 곧 심사위원이었던 셈이다! 나도 주섬주섬 동전 하나를 꺼내 재미있게 봤던 영화에 투표했다. 경쾌한 땡그랑 소리를 뒤로하고 정동초등학교 교문을 나섰다.
비가 오는 대로 낭만이 느껴졌던 정동진독립영화제였다.
비 맞으며 영화를 봤던 것도, 바람 탓에 우산이 뒤집혔던 것도, 편의점을 다녀오기 위해 마구 뛰었던 것도 여름날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언제 또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익스트림한 영화제를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잊지 못할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된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
내년엔 부디 날씨가 좋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