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 처음으로 영화제에 다녀왔다. 어떤 영화를 볼지보다 중요했던 건 영화제 참석 가능 여부.
노력을 들여 시간을 마련한 후 1박 2일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가 유명한지, 어떤 연예인이 출연하는지 등은 하나도 모른 채로 프롤로그를 읽고 끌리는 영화 순으로 티켓팅을 했다. 평소 티켓팅 똥손이라고 불리는 나의 실력과 서버 폭발로 그 과정은 처참한 실패 그 자체였지만 어찌저찌 5개의 표나 움켜쥐었다. 잡고 보니 5개 중 영화 4개가 GV가 있었고 그중 영화 2개는 맨 앞줄이었다. 돌이켜 보니 A열에서 본 그 두 영화는 심지어 리클라이너 좌석이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영화관에서 실제로 감독과 배우를 만난 건 몇 년 전 이병헌 감독의 영화 ‘드림’ 무대인사가 전부다. 그래서 GV가 뭔지, 무대인사와 뭐가 다른지도 잘 몰랐다. GV가 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던 차에 같이 가는 언니에게서 온 연락, “우리 00영화 GV있는데 A열이야! 그리고 뒷좌석이지만 다른 것도 GV가 있네!” 그제까지 불티나는 티켓팅으로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좌석을 지정했는지 확인해 볼 정신도 없었던 터라 연락을 받고 그제야 예매 성공한 표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번 영화제에 GV가 4개나 있잖아!!’ 연예인을 보는 것보다 설렜던 건 직접 연출한 감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GV란?
‘Guest Visit’의 약자로 ‘관객과의 대화’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그저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를 만든 이들과 직접 만나서 대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으로 보통 상영이 끝난 후에 마련된다. 1:1 팬미팅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원활한 소통을 위해 사회자가 같이 자리한다. 2시간에 달하는 영화를 보고 단번에 연출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애초에 모두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마저 다양하기에 의도가 의도로 전해지는 것이 과연 의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GV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제작진의 이야기를 들으면 관람한 영화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고, 제작인의 입장으로서는 관객의 목소리를 들으면 영화를 만들며 한쪽으로 고여있던 물이 다른 곳으로 틔어 더 큰 생각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단순히 관객이 제작인들에게 질문만 하는 인터뷰의 형식이 아니라 제작인들도 관객에게 영화에 대해 질문하고 관람평을 나누면서 서로의 사고의 폭을 더욱 넓혀간다.
영화제에서 처음 본 영화였던 프란체스코 소싸이 감독의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라는 영화의 GV 현장에서 질문하고 적어 내리고 미소를 지었던 현장을 나눠보고자 한다.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 다 본 김에 딱 한 질문 더!
2025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 영화를 예매한 이유의 8할은 제목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떤 줄거리인지 등장인물의 성격은 어떤지 영화의 분위기도 모른 채로 관람을 시작했다. 사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꽤 졸았다. 영화가 재미없어서는 분명히 아닌 것이, 새벽 기차를 타느라 전 날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고 1박 2일밖에 없다는 압박감에 촘촘하고 살인적인 스케줄로 여행 계획을 짜놓았었기 때문에 영화관 좌석에 앉는 순간 긴장이 풀렸던 듯하다. 거기엔 리클라이너 좌석이 주는 내 방 같은 편안함도 한몫했으리라고 핑계를 대본다. 그리고 핑계의 종지부, 일장일단의 A열. 영화를 볼 때 A열은 단연코 단점이었다. 열띤 티켓팅 때문에 좌석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어서 어느정도 감수는 했지만, 영화 보는 내내 목을 치켜들고 눈동자를 눈꺼풀 위쪽에 철썩 붙인 상태로 2시간 동안 영화를 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외국 영화여서 영어자막이 가운데 뜨고 한글 자막은 오른쪽 위에 세로 형식으로 번역되어있었다. 무거운 눈꺼풀에 눈이 감기는 와중에 눈동자도 바쁘게 움직이느라 눈에 내려앉은 피로감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단점이 있다면 장점도 있는법. A열의 장점은 영화가 끝난 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게스트와 만남] 스크린이 뜸과 동시에 사회자, 감독, 통역사가 등장했다.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해서 영화의 중반부를 날려버린 터라 질문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었지만, 초반부와 후반부에 열심히 적어내렸던 코멘트를 근거로 질문거리를 떠올렸다. 사회자님의 간단한 질문이 끝난 후 시선은 관객석으로 옮겨졌다. 너도나도 손들 줄 알았던 분위기와는 달리 얼마간 적막이 흘러서 나까지도 민망해질 뻔했다. 그때 나는 뭐라도 질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내 차례가 오기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Q. 영화 제목이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인데, 평소에 ‘딱 한 잔’을 좋아하는 편이라 생긴 궁금증입니다. 저는 술 자체를 더 먹고 싶다기보다는 이어지는 그 분위기를 누이고 싶어서 ‘한 잔 더’를 외치고 싶은 경우가 많은데 감독님이 ‘딱 한 잔 더’에 담고 싶었던 분위기나 의미가 있으실까요?
A. 한국어로 제목이 그렇게 번역이 되었군요. ‘Last Drink’는 일종의 화법이에요. 이 자리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쉬워서 못 가게 말리려는 말장난의 화법인거죠. 지금 한창 재밌는데 상대를 붙잡아두기 위한 것이에요.
(*정확한 딕션이 아닐수도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질문을 하려고 마이크를 잡는 순간 생각보다 더 떨려서 놀랐다. 말을 하기 직전에는 떨려도 마이크를 손에 쥔 순간부터는 긴장이 덜한 편인데, 하필 내 순서에 마이크 음향에서 삑소리가 많이 나서 잘못 쥐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과 짧은 시간 안에 감상평과 심층적인 질문을 모두 하고 싶은 마음에 급해졌다. 하지만 A열이었기 때문에 1:1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감독님과 눈을 맞추며 대화할 수 있었다. 눈을 맞추니 자연스레 마음은 진정이 되었고 그때만큼은 감독 한 명에 대응하는 다 인원 중 한 명이 아니라 감독과 나, 그 공간 안에서 둘이서만 가만히 앉아 대화하는 것 같았다.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지금껏 갈고 닦아온 리스닝 실력으로 어떻게든 원어 의미 그 자체가 내 귀를 통해 머리에까지 온전히 닿길 바랐다. 물론 통역가분의 도움을 받았지만 감독과 나 둘 사이의 직접적인 대화인만큼 답하는 이의 말투와 언어에서 비롯되어지는 원초적인 언어 전달에 집중하고 싶었고 그 결과, 통역 전 감독이 말을 전할 때 스스로 어느 정도는 의미를 파악했다.

질문 순서가 끝나니 내가 할 일은 다른 이의 질문에 경청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질문을 할지 궁금해졌다. 감독께서 어떤 술의 종류를 좋아하는지부터 해서 촬영에 쓰인 카메라, 빈티지한 색감을 내는 방법 등 개인의 관심사와 영화가 합쳐져 저마다의 질문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거창한 질문이라는 건 없다는 것을. 질문 속에 박혀있는 알맹이의 진심 정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한들 질문의 퀄리티가 더 좋아질 리는 없다는 것을. 나는 떨리는 마음에 내 질문지를 쓸 때 좀 더 있어 보이는 방식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내 궁금증을 멋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동시에 어떻게 하면 영화에 대한 진중한 마음을 간략하고도 알맞은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영화 중반부를 잠으로 통째로 날려버린 것을 그런 마음으로나마 충당하고 싶었던 걸까. 이런 마음은 답하는 사람보다 질문하는 사람을 빛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부끄러운 속사정이다.
부끄러움에도 밝히는 이유는 이것을 인정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물음표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에게 좋은 질문과 좋은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지, 있을지는 아마 평생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질문을 꿈꾸며 노력할 것이라는 다짐만은 어떤 때에도 잃지 않겠다고 분명히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여럿이 모였을 때 발휘해내고 수집하며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아마 감독님과 1:1로 인터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나는 신이 나서 질문지를 짰을 것이고 꽤 멋들어진 이야기를 얻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게스트가 되어 관객들 앞에 초대된 입장으로서 나는 질문하는 관객 중 한 명에 불가한 시간이 바로 GV이다. 그리고 GV의 방식으로만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힘이 있다. 감독 입장의 설명으로만 입체적으로 영화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과 관객의 입장이 고루 섞여서 세상의 눈을 가지고 다면적으로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봐도 저마다 다른 색깔의 눈으로 영화를 바라보고 다르게 해석해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그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아예 새로운 우리만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는 소비하면서 그 뜻이 만들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GV시간 덕분에 내 졸음이 잡아먹은 부족했던 영화의 부분이 채워질 수 있었고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어도 이 영화에 얽힌 나만의 컷을 수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