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쿠라이 쇼지씨의 어떤 기념일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글 입력 2023.05.1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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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씨네필이 아니다. 매년 영화제에 참석하고 있지만, 절대 영화광은 아니다. 본래 씨네필이란 드넓은 시각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지만, 나는 취향에 맞는 영화만 찾아보며 좋았던 영화만 계속해서 돌려보는 매체 오타쿠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화 편식쟁이에 가깝다.

 

편식쟁이에게 영화제는 자학 행위이다. 티켓팅에 실패하면 전혀 마주할 일이 없던 영화를 보게 되고, 심지어 자의로 영화를 멈출 수도 없다. 끝까지 영화를 보고 손뼉 친 다음 GV까지 착실히 듣고 나간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취향 존중해 드립니다.’

 

그런데도 왜 영화제를 찾는가 하면 그 자학 속 우연 때문이다. 하필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이 아주 마음에 들었고 어쩌면 작년처럼 우연히 좋은 영화를 볼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컸다. 만약 맞지 않는다면 함께 간 친구들과 어떤 점이 맞지 않았는지 대화하는 것만으로 즐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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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4월 27일(목)부터 5월 6일(토)까지 진행되었다. 영화제 기간 영화의 거리를 걷다 보면 영화를 사랑하는 대중들이 많음을 실감한다. 그러나 이는 티켓 예매가 치열했으며 모두 그 경쟁에서 표를 쟁취한 승자들이다. 이 때문에 올해는 예매 사이트 서버가 다운되고 예매 시간이 지연되는 등 여러 사고가 있었다. 나 역시 보고 싶었던 영화 예매에 대부분 실패하고 장바구니에 담은 영화 하나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영화 하나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본래 영화제란 제목만 알고 무작정 뛰어들어도 즐거운 행사 아닌가. 그리고 올해 역시 아주 뛰어난 영화 하나를 만났다. 김성웅 감독의 <사쿠라이 쇼지씨의 어떤 기념일>이다.

 

 

 

불운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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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인 ‘사쿠라이 쇼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장르이다. 게다가 사쿠라이 씨가 영화에 감긴 건 이번 영화가 처음이 아니다. 김성웅 감독의 전작<옥우>에서 다룬 노인 네 명 중 하나였던 그를, <사쿠라이 쇼지씨의 어떤 기념일>은 단독으로 다시 추적하고 있다.

 

사쿠라이 쇼지는 1967년 강도와 살인 용의자라는 누명으로 29년 동안 옥살이를 한 남성이다. 2011년에 재심을 청구하여 모든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그 자신 역시 ‘바늘에 코끼리를 넣은 격’이라는 비유를 들 만큼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사쿠라이 씨는 말한다. 그의 삶이 “불운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라고.

  

영화 내내 사쿠라이 씨는 우리의 흔한 ‘예상’을 완벽히 빗겨나간 삶을 살아간다. 그는 옥중 생활에서도 노래를 만들고, 직접 부르고, 200편이 넘는 시를 썼다. 출소 이후에는 전국을 돌며 강연하고 자작시 낭송 및 자작곡을 연주했다. 또한 그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지지하고 라디오를 진행하는 등의 연대도 이어갔다.

 

‘잘못된 판결과 억울한 옥살이보다 사쿠라이 씨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려고’ 했던 감독의 노력이 잘 담겼으면서도 그의 긍정적인 삶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연출이었다. 그는 불운했으나 잘 웃고, 시와 노래를 직접 쓰는 예술가 유형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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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념일


 

자신의 삶을 불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경이로운 정신력이다. 그러나 그 역시 늘 웃으며 살기란 어려웠다. 어느 날 사쿠라이의 부인 케이코는 그가 창밖으로 뛰어내리려던 걸 말린 적이 있었다. 감독은 그에게 여전히 시를 쓰냐고 묻고 그는 옥중에서 시를 제일 많이 썼다고 답한다. 그리고 이어 “시는 행복해지면 쓸 수 없다.”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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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화 제목에 ‘기념일’이 들어갈까. 심지어 영화의 영문 제목은 My Anniversaries다. 영화가 이어지면서 그 제목의 내막이 나온다. 그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그 밖에도 무수한 불운에 마주해야 했다. 그런 날이면 그는 이를 기념일이라 한 것이다. 절망 속 자신의 기념일은 계속될 것이라는 어떤 선언과 같다.

 

12년의 제작 기간을 거친 이 영화를 보면 사쿠라이 씨의 외양 변화도 눈에 띈다. 그는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투병 중인 그는 전보다 훨씬 말랐고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자작곡을 담은 앨범도 내었다. 영화 마지막에는 그와 비슷하게 억울한 옥살이를 당한 피해자들 명단을 보여주고 그의 자작곡 만리향이 들린다. 노래를 듣고 눈물을 훔치면서 그의 기념일이 오래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GV에서 영화의 자세한 배경을 들을 수 있었다. 김성웅 감독이 사쿠라이 씨를 만난 건 2010년이었다. 그는 사쿠라이 씨의 암 선고 소식을 들은 후 단독으로 영화화 다짐했다. 그는 일본 사법 제도 비판하며 사쿠라이 씨의 근황을 대신 전해주었다. 사쿠라이 씨의 노래를 담은 앨범을 구할 방법을 묻자 직접 메일을 보내면 앨범을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주는 등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개인을 통해 일본 사법 제도를 비판하면서도 개인의 특별한 삶을 놓치지 않은 그의 시각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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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영화의 의미를 다시 고민했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를 떠올렸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대부분 몇 인물을 추적하며 그들의 삶을 그저 담아내고 있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개인 뒤편의 배경이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도쿄의 쿠르드족>이 일본의 난민 문제를 목격했다면 이번 <사쿠라이 쇼지씨의 어떤 기념일>은 일본의 사법 문제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 두 영화 모두 배경이 일본이지만, 이는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욱더 섬뜩한 건 이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인물을 영상화하여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것, 그리고 영화관에서 타인과 함께 목격하는 것. 이는 영화만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짬을 내어 간 영화제에서 아쉽게 놓친 영화도 많았고, 관람했으나 미처 담을 수 없었던 영화도 있었다. 내 식견이 좁은 탓이다. 언젠가 영화제 기간 내내 전주에 머물며 가능한 많은 작품을 보고 싶은 은근한 희망을 품으며 내년을 기대한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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