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의 짐을 짊어지다 -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세계평화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글 입력 2023.07.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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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 학살에 가담해서는 안 되고, 적이 대량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고 늘 가르친다."

 

- 커트 보네거트, <제5 도살장> 中

 

 

제 2차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 폭격의 현장에 있던 커트 보네거트의 자전적인 SF 소설에서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도대체 이야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의 글에서도 이 문장이 기억에 문신처럼 남았다. 그는 또한 사람들은 뒤돌아봐서는 안 되며, 그 자신도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상흔은 그의 삶을 어안이 벙벙하리만치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고, 그가 거기서 배운 것이라곤 이 끔찍함이 절대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을 읽던 중 보네거트의 그 유명한 소설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책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량 학살이라는 주제가 꼭 겹친다. 보네거트는 (물론 이러한 의미는 아니지만) 뒤돌아봐선 안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뒤돌아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제삼자인 내가 눈물이 나 잊고 싶을 잔혹한 현장들이더라도, 어떻게 뒤돌아보지 않을 수가 있는가? 이름 모를 이들의 발자취가, 숨결이, 초라하게 남은 참상의 흔적이 도처에서 잊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데. 아니, 명령하고 있는데 말이다.

 


평면 표지.jpg

 

 

초등학생 때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은 적이 있다. 최초로 접한 나치의 만행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그 책은 초등학생이 읽기엔 버거운 편이었고, '증언'이 아닌 '소설'이 되었다. 나와는 너무나 먼 비극이었다. 가난하고 질병이 만연했던 20세기 초중반의 일이기 때문에 그 시기 고유의 야만이 세상 사람들을 잘근잘근 씹어먹은 줄 알았다.

 

나이가 들었다. 그러한 야만은 과거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머나먼 이국땅에서만 입을 벌리고 있는 것도 아님을 배웠다. 언제나 우리의 도처에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변한 야만이 발치에 웅크리고 있고, 고개를 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야만을, 비극을, 수많은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존엄 한 줌 없이 땅속에 또 물속에 묻히는 일을 멈출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긴 할까?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의 양재화 작가는 그의 기나긴 여행을 통해 그 방법을 알려준다. 기억하라는 것이다. 아르메니아, 독일의 아우슈비츠, 캄보디아 킬링필드, 보스니아 내전,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데사파레시도스, 그리고 제주. 어떤 것은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또 어떤 것은 아주 생소할 역사 속 재앙 같은 사건들을 되돌아보고, 추모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은 아주 쉬운 것처럼 들리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타인이고,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혐오하고, 무서워하고, 종국엔 없애거나 무시하려 들지 않는가? 종교가 탄생한 이후로 종교 박해가 사라지지 않듯, '다름'에서 기인한 감정은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도록 돕는다. 당장 내가 관용적인 사람일지라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그럴지는 알 수 없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흘릴지, 또 누가 휩쓸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다크투어, 과거의 어두운 사건들을 몸소 접하는 것의 의미가 크다. 우리가 모두 다를 수는 있겠으나, 그 다름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그 극단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나 보기에 좋은 것만 눈에 담아도 짧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보기 나쁜 것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에 벌어진 어떤 일들은 너무나 무섭고, 무거운 기억들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우리는 뒤돌아보아야 한다. 그 기억을 좇고, 무게를 함께 지어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들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 다크투어로 대변될 일련의 사건들 속 희생자들에게 우리는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러한 과거를 거쳐 우리 세대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빚을 지지 않았더라도(물론 말이 안 되는 가정이다), 그들을 안타까워하고, 기리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책의 가장 끝자락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본다.


 

"그제야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다크투어는 기실 잊힌 이름들을 부르고 잊힌 얼굴들을 마주 보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익명과 숫자와 망각에 맞서 그 뒤로 사라져 가는 수많은 개인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이었음을 나는 깨달았다."

 

 

본문을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아우슈비츠나 기껏해야 제주 4·3 사건만을 알고 있을 뿐인 우리에게 작가가 소개하는 다른 문화권의 제노사이드 사건들은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캄보디아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크메르루주'라는 조직을 처음 알게 되었을뿐더러, 그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농업개혁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상황에 맞지도 않는 호미와 쟁기의 머나먼 회귀에, 이런 억압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지금까지도 그 나라의 사람들의 집단기억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자체가 놀랍고도 속이 쓰렸다. 그들의 가난이 단순히 현대화의 흐름을 타지 못한 국가의 결과가 아님을 이제야 깨닫게 됐다.


책에는 "학살에는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라는 구절이 쓰여있다. 사례로 소개된, 작가가 방문한 국가들의 대부분이 미국 등 강대국이 유리한 정세를 위해 사주하듯 만들어 낸 학살이라는 점이 더욱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힘이 강한 나라는 사람의 목숨에 정당한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불합리함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미국이 세 차례 정도 언급될 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까지 났다. 이제껏 세계 역사를 영국이 바꾸어놨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미국도 만만치 않았던 셈이다.

 

학살의 폭풍이 한차례 가시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가담한 이들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현상은 거의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도 짚어야겠다. 명확한 이상과 절반도 닿지 못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어쩌면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절반도 닿지 못하는 현실에는,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이 인구수에 비해 너무 적거나 - 혹은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잘못된 방식으로 기억을 재구성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해 시체들이 생산됐던 것이다."

 

 

결국은 기억의 문제다.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기억을 안고도 어떤 유대인들은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침묵하고 옹호한다. 그리고 아우슈비츠 이전에도 학살의 역사가 있었다. 아르메니아가 있었고, 중세 시대 서구 각지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이 있었다. 지지부진하게 길어진 십자군 전쟁이, 그리고 차마 더 나열하지 못한 수많은 사건이 있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전진하는 듯 후퇴하는 것만 같다. 과거로부터 우리는 아직도 덜 배운 것일까. 아니면 배웠음에도 당장의 이익때문에 배움을 원론적인 말로 치부하는 것일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당신의 여행길에 가슴 아픈 가르침까지 추가하라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당장 나도 반짝반짝 아름다운 유럽의 대도시 대신 한참 떨어진 조용하고 암울한 장소를 여행지로 점찍을 여유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 반짝반짝 아름다운 유럽의 대도시를, 그리고 수많은 여행지를 아무런 걱정 없이 언제까지고 방문할 수 있길 바란다면- 그러니까 세계의 평화를 바란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큰돈을 들일 필요도, 몇 박 며칠을 꼬박 내다 버릴 필요도 없다. 그저 차 한 잔 마시면서 몇 장 넘기는 것만으로도 평화에 기여하는 행위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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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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