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얇은 책 안에 들어있는 무궁무진한 세계 [미술/전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56th>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6.3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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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아동 도서전, 그중에서도


 

볼로냐에서는 매년 아이들을 위한 도서전을 개최한다. ‘볼로냐 아동 도서전’은 전 세계 80여 개 국가에서 1,500여 개의 출판사와 멀티미디어 업체가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도서전이다. 그중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해당 행사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으로 여겨지며, 기발하고도 재미있는 삽화를 그려내는 세계 각지의 유망주로 촉망받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이다.

 

그리고 해당 행사가 월드투어전시를 통해 한국에서도 접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를 경험 삼아 보러 갔다. 사실 그림책을 읽을 나이가 따로 정해져 있지도 않고, 애초에 연령이 어떻게 되었건 그림책을 읽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것도 없지만, ‘아동’, ‘그림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일차적으로는 어린이만을 겨냥했다고 느껴졌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관람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전시는 항상 생각의 틀을 깨곤 한다. 이번 원화전 역시 마찬가지. ‘‘세계 최대·최고’라는 타이틀이 붙는 명예를 얻으려면 이 정도 퀄리티를 선보이고, 유지해야 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된 전시였다. 이번에 쓸 것은 이번 56번째로 열렸던 원화전을 감상하며 느꼈던 감정, 깨달음, 흥미 등을 담았다. 


 


일러스트의 트렌드와 가치


 

앞에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는 매년 대략 3천 명이 넘는 삽화가들이 공모한다. 그리고 해당 부문에서 저명한 심사위원들을 통해 7~80여 명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추려낸다. 원화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이 얼마나 엄격한 과정을 통해 선발된 것이며, 이를 많은 일러스트레이터가 꿈같은 영광의 자리로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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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성공과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명성에 걸맞게, 눈이 즐거운 전시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수록된 그림들이 그림책 삽화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일러스트의 최신 트렌드를 만드는 재능의 장이라는 사실이다. 실험적이고도 뛰어난 퀄리티를 선보임으로써 어린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일러스트의 흐름을 파악하게끔 만들고,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각지의 수많은 아티스트가 도전장을 내밀은 결과의 산물인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주목했던 것은, 수상자와 심사위원들의 질의응답이었다.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삽화의 가치와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 등등, 삽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및 직업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일러스트라는 분야에 관해 한층 더 이해를 돕는 인터뷰이기도 했다.

 

 

Q.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이것이 일종의 자기 표절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을까요?


A.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스타일이란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 저는 스타일이 감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특정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면 비슷한 책을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 스타일이란 창의적인 상태에 머무르기 위한 우리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올해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이 바로 ‘독자를 따뜻하게 품고, 책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그림책’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작품도 있습니다. 특정 주제를 진정성 있게 다루고, 그것을 독자에게 잘 전달하는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공통된 주제, 다양한 결과물


 

이번 원화전에서는 5가지 주제로 나누어 전시를 진행하였다. 동물, 자연, 일상, 신화 등으로 나누어진 섹션은 그림책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소재들이다. 자칫하면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양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예상과 달리 결과물이 천차만별하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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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화’ 카테고리의 경우,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특성상 진부하게 느껴지기 십상일 수 있으나, 각자의 생각의 전환으로 이를 각색한 것이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같은 주제이지만 작가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문화, 환경에 따라 다른 해석을 제시하기도 하고, 경험과 상상력을 이용해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하였다.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다른 소재들보다 특히 더 구상력의 다채로움을 실감할 수 있는 섹션이었다.

 

이번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여태 봤던 전시 중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볼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자극적인 전시였다. 작가들의 상상력은 보는 이로부터 뇌에서 폭죽이 터지게끔 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관람 내내 매번 색다른 스타일의 삽화가 반긴다는 것은 관객에게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볼 게 많다는 것은 곧 쓸 말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주목할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그로부터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글을 쓴 것 같아서 유감스럽다. 또, 전시가 다 끝나고 나서야 감상을 되짚어봤다는 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다시 한국에서 원화전이 개최되는 등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을 접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꼭 가보길 바란다. 눈은 물론이고 뇌가 활발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껴봤으면 한다. 그림책의 편견을 깨는 것을 넘어, 그림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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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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