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의 행복을 좇는 화가 [미술/전시]

라울 뒤피 : 색채의 선율
글 입력 2023.06.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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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보는 세상


 

 같은 것을 경험하더라도, 어떤 부분을 인식하느냐에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풍요의 세상을 맞이하더라도 그 속에서 우울을 포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격변과 고난의 시간 속을 유영하는 와중 빛나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포착하는 사람이 있곤 하다.

 

요컨대, 어떠한 대상에 관한 관념, 의식, 기억, 기분 등이 개인마다 상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피사체를 예술적 감각을 발휘하여 표현하는 화가는, 그 직업의 특성상 이러한 특징이 더욱 현저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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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 소개하는 전시의 주인공인 라울 뒤피는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 고초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평생에 걸쳐 삶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그려낸 화가로, ‘기쁨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라울 뒤피의 그림은 항상 나를 행복하게 한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거트루트 스타인은 “라울 뒤피는 즐거움 그 자체이다.”라고 말했듯이, 여러 작가는 물론이고 세간에도 ‘희망을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정평이 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그의 회고전이 얼마 전 국내에서 개최되었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전시로, 국내 대형 회고전이다. ‘회고전’이니만큼,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같이 걸어가며, 생전 그려온 다양한 분야의 작업물을 머금을 수 있었던 뜻깊으면서도 재밌는 시간이었다.

 

전시의 내용이 꽤 길고 심도 있기에, 관람하면서 흥미를 느꼈던 부분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기쁨의 모양새


 

앞서 말했듯, 그는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와 유복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일상의 환희를 발견해내고야 마는 작가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중에는 소소한 일상이나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다룬 그림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작품을 둘러보다가 주목한 부분 중 하나는, 그는 자신이 발견한 인생의 행복을 표현하는 데에 수단과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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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다. 그는 자신이 찾아낸 기쁨을 그려내는 것에 있어서는 다양한 재료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형식의 변주를 서슴지 않는 면모를 보였다.

 

그는 유화와 과슈, 수채화, 드로잉, 판화 등 수많은 재료 및 소재를 통해 삶의 찬란함을 세상 밖으로 표출해내려고 하였다. 또한 표현 기법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했다.

 

인상주의 – 야수파 – 입체파 순으로 묘하게 작풍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일상의 찬란함을 발굴해내는 능력은 물론이고, 타 예술가들의 기법을 본받아 예술적 재능을 한층 더 발전시키는 뒤피에게 경이로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기쁨의 화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뒤피는 생활 속 다양한 분야에서 행복을 포착하는 작가였고, 이에 따라 주제와 소재 역시 폭넓어졌다. 오케스트라, 인물, 도시, 해변…. 우리가 살면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기쁨의 소재로 여기고, 그것을 망설임 없되 결코 가볍게 그려내지는 않는 그의 작품들을 보며, 그에게 붙은 긍정의 칭호의 타당성을 다시금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삶을 아끼다 못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부분.

 

 

 

예술의 한계


 

전시를 관람하며 뒤피가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그가 일러스트 작가와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한 흔적을 보게 됐을 때다.


그의 예술혼은 회화에 국한되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선보였다는 의미이다. 일러스트 작가로 활약하는 순간 안에서도 그는 끊임없는 도전을 했는데, 단순히 삽화를 그리는 수준을 넘어 텍스트에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또한, 도화지 위에 그리기로만 끝내는 것이 아닌 동판화, 석판화, 목판화 등 표현 기술에서도 다양하게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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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뒤피 역시 눈길을 끌었다. 그가 직물 제조업체와 협업하면서 제작한 직물 디자인과, 유명 디자이너 폴 푸아레와 함께 일하며 작업한 드레스들을 관람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사실 이유는 다소 단순한데, 예술적으로 탐미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았기 때문. 그동안 관람했던 회화 작가의 전시 중 이렇게나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의 작품세계와 그 내용은 매우 재미있고, 뛰어났고,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댄 것을 보며, 인생의 흥미가 참 많고, 행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가 이러한 특성에서 나오는 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인간의 문명사를 총망라하다



뒤피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중 유난히 세간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전기의 요정> 시리즈. 개인적으로 위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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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파리 민국 박람회의 ‘전기와 빛 관’의 벽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그림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전기와 관련된 모든 역사와 인물 110여 명을 모두 담았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리즈 앞에서, 유난히 발걸음이 오래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림으로부터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뒤피가 살던 시대는 당시 인류의 발명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임과 동시에 여러 전쟁이 발발하여 불안하고도 우울한, 모든 게 급변하는 세상이었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 화려하고 경쾌한 리듬으로 거대한 역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가히 기쁨의 화가라고 불릴 만한 작가이다. 어지럽고 괴로운 시간이지만 그로부터 추출되는 우울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삶에 대한 즐거움과 환희, 그것에 대한 기대감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깊은 고찰을 요구하지 않고, 보는 내내 눈과 마음이 즐거운 전시였다.

 

어쩌면 그가 살아왔던 시간 내내 행복을 찾고, 이를 표현하려는 마음에 내게 확실히 전달된 걸 수도. 예술의 전당 외에도, 더현대 서울에서도 라울 뒤피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여건이 된다면 보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행복감을 충만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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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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