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최고의 작품을 창조하는 분자 예술가들의 여정 - 분자 조각가들

화학계의 미켈란젤로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23.05.1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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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를 조각한다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비유적인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몸에 유익한 신약을 만드는 화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제목이 화학과 거리가 먼 나를 끌어당겼다. 화학, 신약과 같은 다소 생소한 분야의 책을 읽게 만들만큼 매력적이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들처럼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간 우리의 일상을 멈추게 한 코로나19도 이 책을 선택하게 한 이유 중 하나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백신 개발 회사에 투자가 급증했다는 등의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신약이 있었고, 이 신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궁금했다. 이 과정과 원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었다. 호기심을 안고 분자 조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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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 미켈란젤로가 최고의 원석을 고르기 위해 로마 근교의 대리석 산지를 돌아다니고 잘 손질한 조각 기구와 함께 작업장에 들어선 것처럼, 나는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시약회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고 플라스크와 시약을 가지고 실험대 앞에 선다. 그리고 하루하루 열심히 분자를 다듬는다. 나는 분자 조각가다. 


책의 첫 머리에 나온 문구이다. 이 책이 어떻게 펼쳐질지, 저자의 업이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최고의 신약을 탄생시키기 위해 다방면의 방법을 찾는 조각가들의 이야기. 마치 예술가들이 최고의 작품을 창조하기 위한 여정 같았다.


그 여정에서 조각가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병의 원인 단백질을 이해해야했고, 분자를 이리저리 합성하고, 활성을 찾고 결합하며 최적안을 찾아야 했으며,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해야 했다. 짐작은 했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일련의 과정이었다. 최상의 결과물 즉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조각가들의 노력이 경이로웠다.

 

 

p.136 마치 소속사가 있는 아이돌이 재기를 위해 오디션에 참가한 것처럼, 항바이러스제 오디션이 다시 열렸다. 이 오디션에서 1등을 차지한 물질이 지도부딘이다. 


‘지도부딘(zidovudine)’은 암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화합물이다. 암세포의 성장을 막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효과가 좋지 않아 실패한 화합물로 분류된 물질이었다. 그런데 에이즈가 창궐하며 지도부딘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역전사효소를 강하게 억제하는 힘이 있어 암세포를 죽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역전사효소가 핵심인 에이즈에는 아주 효과적인 물질이었던 것이다. 


약을 개발하는 그 과정이 유의미함을 느꼈다. 암에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에이즈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처럼 무조건적으로 무의미한 약은 없음을 알았다. 환경이 변하면서 우리는 또 새로운 질병에 맞닥뜨리는데, 실패한 물질, 획기적이지 않은 물질로 분류된 약들이 또 저마다의 질병에서 역할을 해낼지도 모른다.


아까 에이즈 치료제 우리가 근래에 마주한 코로나19의 치료제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코로나19 치료제로 꺼내든 니르마트렐비르(nirmatrelvir)는 효과적인 수선효소 저해제였는데 우리 몸에서 너무 빠르게 분해된다는점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래서 연구진들은 이 분해효소를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물질을 투여했는데 이 물질이 에이즈 치료를 위해 사용하던 리토나비르(ritonavir)였다. 에이즈 치료 과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코로나19치료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것이 바로 팍스로비드(paxlovid)다.


비록 긴급 승인된 약이지만 현재로서는 최선의 치료제로 분류된다. 팍스로비드도 간에 치명적이라는 특징이 있어 간 손상 환자들에게는 권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해서 분자 조각가들은 또 다시 최상의 약을 탄생시키고자 화합물을 연구한다. 완벽한 치료제를 탄생시키고자 조각가들은 긴 시간동안 정성과 애정을 쏟고 있었다.

 

 

p.305 화학과 생물학이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서로가 상대방의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힘을 합칠 때 엄청난 시너지가 일어난다는 것은 지금껏 여러 차례 증명이 되었다. 


더 획기적인 약이 개발되고, 더 나은 치료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화학자들의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생물체를 세포 차원이 아닌 유기화합물로 인식하는 순간 신세계가 열린다. 다각도로 질병을 이해하고 새로운 눈으로 원리를 파헤친다면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화학자들은 생물학자들뿐 아니라 공학자들과도 협업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근래 대두되는 인공지능은 화학자들에게 합성법을 제안할 수도 있고, 약이 될 구조도 제시할 수도 있다. 방대한 정보를 토대로 인공지능이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화학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무수한 경험이 인공지능을 만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예측한다. 물론 생명과 직결된 분야이기에 조금 더 세심하게 접근하고 수차례의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

 

분자 조각의 세계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 했다. 딱딱한 신약 개발이라는 개념을 넘어 분자를 조각한다는 비유적 접근은 화학의 높은 벽을 조금이나마 낮추게 했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답을 찾아내는 원리는 약 개발의 세계에 재미를 느끼게 했다. 또한 앞으로 다양한 기술이 분자 조각에 힘을 더하는 것을 보며 희망찬 신약계를 꿈꾸게 했다.


최고의 작품을 향한 분자 조각가들의 여정을 존경하고 응원하고 싶다.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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